[더오래]종로서적 앞 ‘만남의 장소’…아련했던 광화문 추억

중앙일보

입력 2021.10.04 11:00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15)  

광화문은 늘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스무 살 무렵에는 종로서적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요령 있게 잘 만나곤 했는데, 종로서적 앞은 늘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그들 대부분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의 손을 맞잡고 반가워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나서 주로 종각에서 놀았다. 그렇게 종로, 종각, 그러니까 광화문은 우리의 추억 속에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인 곳은 아련했고, 처음 와본 곳은 오랜 시간이 떠오른다. [사진 전명원]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인 곳은 아련했고, 처음 와본 곳은 오랜 시간이 떠오른다. [사진 전명원]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의 옛 자리를 지나고, 그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종각 거리를 걸었다. 함께 종각에서 만나던 내 친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일없이 안부를 전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이가 어렸던 시절에는 몇 번 경복궁에 왔다. 햇살을 피할 곳 없는 궁궐에서도 아이는 잘 뛰어놀았다. 역사를 가르친 것은 아니었으나, ‘임금님이 살던 집’에서 아이는 즐거워했고, 한참 빠듯하던 살림에 돈 안 드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에 와본 것은 여러 해 전 아빠와 둘이서였다. 젊은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빠는 종로 3가에서 매달 모이는 엄마의 동창 모임에 따라가고 싶어 했다. 결국 엄마가 친구들 모임에 간 동안 나는 아빠와 둘이 경복궁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알츠하이머였고,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했다. 아빠와 둘이 엄마 모임이 끝나길 기다리며 경회루 앞에 앉아있었다. 아빠는 몇 번이나 엄마 모임은 언제 끝나는지 물었다. 그 이후 경복궁을 생각할 때마다 경회루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빠를 생각했다.

가을볕이 뜨거웠고, 가을바람이 소슬했다. 그리고 경회루는 아련했다.[사진 전명원]

가을볕이 뜨거웠고, 가을바람이 소슬했다. 그리고 경회루는 아련했다.[사진 전명원]

광화문에 가자고 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도 그래서 경회루였다. 나는 그 경회루에 가보고 싶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으므로, 그날의 경회루는 나만이 떠올릴 뿐이다. 가을볕이 뜨거웠고, 가을바람이 소슬했다. 그리고 경회루는…. 아련하고도 아련했다.

운현궁에서는 왠지모를 소박함이 느껴진다. [사진 전명원]

운현궁에서는 왠지모를 소박함이 느껴진다. [사진 전명원]

경회루를 나와 운현궁으로 향했다. 익히 알고 있는 대로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다. 한때 궁궐에 견줄 만큼 큰 규모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 몇 개의 건물만이 남아있다. 그렇더라도 운현궁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둘러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 큰 규모에서 소박함이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절대 소박한 규모가 아닌데 말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단청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을 지나온 길이었다. 궁궐의 그 화려한 단청이 운현궁에는 없었다. 그래서 큰 규모임에도 소박한 느낌이 들었던 것 아닐까.

익선동의 좁은 골목 사이를 걸었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들 사이에는 독특한 음식점, 카페가 많았다. [사진 전명원]

익선동의 좁은 골목 사이를 걸었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들 사이에는 독특한 음식점, 카페가 많았다. [사진 전명원]

북촌이 한옥마을로 먼저 유명해졌지만, 요즘은 익선동 역시 잘 알려졌다. 운현궁에서 나와 익선동의 좁은 골목 사이를 걸었다. 상하이의 티엔즈팡처럼 좁고 미로 같은 골목들 사이에는 독특한 음식점, 카페가 많았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좁은 골목을 지났다. 사진을 찍었고, 웃었고, 그렇게 다들 각자의 하루를 만들고 있었다. 간혹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에게 낯선 나라의 한옥 거리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떤 느낌으로 남을까. 내가 여러 해가 지난 이후에도 가끔 티엔즈팡을 떠올리듯이 그들 역시 또 다른 어느 나라의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의 익선동 좁은 거리를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이 내린 후 밤의 조계사에 갔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도심의 절은 도통 가게 되지 않는데, 늘 지나가기만 하던 조계사에, 그것도 밤의 조계사에 간 느낌은 너무 독특했다. 어둠 속에 조계사는 아름다운 조명을 두른 채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대웅전에서 끊임없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 인적사항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므로 절에 제례를 맡기면 그렇게 해주시는 모양이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기일이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위령미사를 신청하는데, 아마도 절 역시 비슷한 방식인 듯했다.

밤의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참 오래도록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사진 전명원]

밤의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참 오래도록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사진 전명원]

비록 내가 천주교인이지만 무언가를 기원하는 마음은 어느 종교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 담긴 스님의 독경 소리가 밤 공기 사이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경건하게 대웅전 앞마당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밤의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참 오래도록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졌다.

어느새 가을이다. 오랜만에 이렇게 광화문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 와본 곳도, 오랜만인 곳도 있다. 오랜만인 곳은 아련했고, 처음 와본 곳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오늘을 떠올릴 때마다 함께 떠오를 것이다. 어쨌거나 한 번도 같은 가을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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