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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공 만들어 학위 딴다…학교 텃밭서 삽든 서울대생,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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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을 전공하는 양승훈씨와 한국학을 전공하는 정영훈씨(왼쪽부터)가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학관 옥상 텃밭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 텃밭은 정씨가 직접 가꾸는 곳이다. 김성룡 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을 전공하는 양승훈씨와 한국학을 전공하는 정영훈씨(왼쪽부터)가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학관 옥상 텃밭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 텃밭은 정씨가 직접 가꾸는 곳이다. 김성룡 기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전공을 만들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대학생들이 있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재학 중인 양승훈(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학ㆍ16학번)씨와 정영훈(한국학ㆍ17학번)씨다. 이들이 색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건 서울대에 있는 ‘학생설계 전공’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전공 이름부터 교과 과정 및 지도 교수까지 모두 학생이 계획하는 전공제도다.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총 53명이 이 과정을 이수 중이다.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의 가장 큰 특징은 학칙에서 제한하고 있는 일부 전공을 제외하고 모든 전공의 선택이 가능하며,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서 학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을 전공하는 양승훈씨가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학관 옥상 텃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을 전공하는 양승훈씨가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학관 옥상 텃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양승훈씨는 “입학하고 나서 아무것도 없이 전공 두 개를 선택하라고 하니 고민이 많았다”며 “친구들이 ‘너 먹는 거 좋아하니까 음식 공부해봐’라고 제안한 데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식품 분배의 불균형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음식과 환경에 대한 강의뿐만 아니라 국제 개발, 지속 개발 등을 다루는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지난 학기 ‘지속 가능한 푸드 시스템’으로 학과명을 정했다고 한다. 그는 “전공 이름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외국에 실제로 있는 전공(sustainable food system)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정영훈씨는 “대학교에 들어와서 친구들이 사투리를 고치려고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갔다”며 “사투리도 각각의 정서가 있고 정감이 가서 이런 류를 연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호기심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문화, 문학, 역사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무엇이 한국을 규정하는가를 연구하고 싶어서 ‘한국학’이라는 전공을 만들었다”며 “학기마다 무엇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전공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고 말했다. 정씨는 주로 ‘주류로 엮이지 않는’ 부분을 연구한다고 한다. 그는 “예를 들어 문화인류학과의 민속학, 국문학과의 방언학 등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것 같은 학문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맨땅의 헤딩’…교수부터 외부 전문가까지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지난 2019년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했을 당시의 사진. 우상조 기자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지난 2019년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했을 당시의 사진. 우상조 기자

이들의 전공 만들기는 ‘맨땅의 헤딩’이었다. 주로 학교 교수님에게 도움을 받고 외부 전문가도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양씨는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정관 스님을 찾아갔고, 정씨는 고등학생 때 읽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명예 교수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동기는 물론 선ㆍ후배 없이 혼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보통 수업을 들으면 저 혼자만 타과생이고 가끔 교수님들도 ‘자네가 여길 왜’라는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며 웃기도 했다. 졸업 후의 진로도 정해져 있지는 않다. 기존에 있던 과가 아니기 때문에 과의 특성과 자신의 전문성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씨는 “포기하고 기존 과에 스며들까도 고민했지만, 교수님 등 여러 도움과 지지로 계속 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국제기구부터 한국 문화까지 이바지

양씨는 현재 서울대 바이오모듈레이션 학과와 함께 당귀와 새싹 삼을 이용한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는 “식물 단백질로 만드는 건강 기능 식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이후 결식 등 식품 공급에 대한 불안정한 상황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양씨는 “개발도상국의 굶주림과 선진국의 영양 불균형 비만 현상을 해외기관 인터뷰 등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살려서 졸업 후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정영훈씨가 30일 관악산 계곡에서 민물 물고기들을 탐사하고 있다. 정씨는 "자유전공학부의 차주항 교수님과 국어국문학과의 정승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성룡 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정영훈씨가 30일 관악산 계곡에서 민물 물고기들을 탐사하고 있다. 정씨는 "자유전공학부의 차주항 교수님과 국어국문학과의 정승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성룡 기자

정씨는 최근 경상남도 함양의 읍면동을 돌아다니며 물고기 60종의 이름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민물고기인 ‘피라미’를 옆 동네에서는 ‘피래미’라고 부르는 걸 듣고서는 세대별 방언과 단어나 문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씨는 물고기의 이름을 보면 그 지역의 환경, 습성, 문화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인식도 많이 반영돼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생태학, 인류학 그리고 방언학으로 계속 연구를 하고 싶다”며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주류로 여겨지지 않는 부분을 부각해 한국 문화의 다양성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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