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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무인도 생활뒤 도시로...82세가 푹 빠진 '반전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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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서쪽 해상 부델리섬에서 32년 간 홀로 살아온 마우로 모란디(82). 지난 5월 인근 마델라섬으로 이주했다.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이탈리아 서쪽 해상 부델리섬에서 32년 간 홀로 살아온 마우로 모란디(82). 지난 5월 인근 마델라섬으로 이주했다.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32년이란 긴 세월을 지중해 무인도에서 나 홀로 살아온 82세 이탈리아 노인이 있다. 주인공은 마우로 모란디(82). 사람들은 그를 ‘로빈슨 크루소’라고 부른다.

그는 1989년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사람과 도시에 환멸을 느껴 이탈리아 서쪽 해상 부델리섬으로 들어갔다. 사유지였던 그곳엔 섬 관리인 한 명이 살고 있었는데, 때마침 도착한 모란디가 그 뒤를 잇게 됐고 그렇게 나 홀로 섬 생활을 시작했다.

부델리섬에서는 자고, 먹고, 읽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다. [페이스북 캡처]

부델리섬에서는 자고, 먹고, 읽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다. [페이스북 캡처]

몇 해 전 SNS에 올린 섬 사진이 주목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먹고, 자고, 읽는 것 외에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일상에 사람들은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지난 5월, 그가 섬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탈리아 당국의 섬 보수 사업에 떠밀려 쫓겨났다고 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났다. 32년 만에 도시 문명에 다시 발을 들인 노인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자연인’ 모란디가 CNN을 통해 근황을 전해왔다. 인생 2막을 아주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공개된 그의 인터뷰를 전한다.

벽걸이 책장이 있는 작은 집이 생겼다  

지난 5월 부델리 섬을 떠나 바로 옆 마달레나 섬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들이 있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로 갈까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대도시에 섞여 복잡하게 살긴 싫었다.

마델라나 섬에 들어오자마자 처음으로 구매한 집.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마델라나 섬에 들어오자마자 처음으로 구매한 집.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이곳에 와 처음 한 일은 ‘집 구하기’다. 편히 몸 뉠 곳이면 됐다 싶었다. 관광지에 위치한 작은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과 욕실에 신식 시설이 설치된 집이었다. 교사였던 내 앞으로 쌓인 연금을 털어 집을 샀다.

오두막에 살던 나에게 집은 신세계였다. 30년 만에 산 가구와 집기류도 들여놨다.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와 마음껏 책을 꽂을 수 있는 벽걸이 책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바깥 소음이다. 고요함에 익숙한 나에게 오토바이와 차 소리는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편한 게 더 많다. 오두막에서 태양열 발전기로 전기를 끌어모아 살던 때와 비교하면 모든 게 호화 생활이다.

가족들이 있는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시 대신 인근 마델라나 섬에 정착했다. [구글 캡처]

가족들이 있는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시 대신 인근 마델라나 섬에 정착했다. [구글 캡처]

다시 시작된 로맨스, 그리고 생선 요리  

무엇보다 가슴 뛰는 건 옛 연인과의 로맨스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젊은 시절 연인과 연락이 닿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덕분에 난 혼자가 아니다. 아침이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점심이면 함께 장을 보고, 저녁엔 함께 음식을 만든다. 이제 무엇을 하든 둘이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때는 ‘식사 시간’이다. 무인도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진귀한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생선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살았으면서, 왜?”라고 묻는데, 섬에 있을 땐 생선 요리 구경도 못 했다. 물론 바다로 나가면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다만 배도, 낚시 도구도, 요리 도구도 없었던 게 흠이었다. 가끔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져온 식료품과 생필품이 전부이다 보니 풍족하지 못했고, 생선 요리는 꿈도 못 꾸었다.

식사 시간, 그중에서도 생선 요리를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모란디.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식사 시간, 그중에서도 생선 요리를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모란디.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도시에서는 몇 분만 걸어나가면 모든 걸 구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바삭하게 튀긴 생선구이를 원 없이 먹고 있다. 음식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저녁 식사는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 좋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 그리고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인생의 맛’을 즐기는 중이다.

변화를 두려워 말라…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 겨울은 나에게도 악몽이었다. 이동제한조치로 관광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몇 달간 고립 생활을 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힘겨웠다. 춥고 외롭고 배고픈 시간이었다.

모란디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동네 이웃들과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낸다.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모란디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동네 이웃들과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낸다.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불만은 없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이 나에겐 가장 소중했으니까. 지난해 3월 인터뷰 때만 해도 “부델리섬이 가장 안전하다. 섬을 벗어난 삶은 상상할 수 없다”던 나다. 코로나19 봉쇄령으로 많은 사람이 답답해한다는 말에는 “고독을 즐기라”고 조언했었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한 공간에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일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부델리 섬에서의 모란디.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부델리 섬에서의 모란디. [mauro dabudelli 페이스북 캡처]

나는 일찌감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리고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지난여름 알프스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알프스에서 보낼 계획이다.

앞으로 많은 것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우선 두 번째 책 집필에 들어간다. 32년간의 섬 생활을 영화로도 만든다. 나를 통해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80세가 넘어도, 우리는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그러니 언제나 변화에 도전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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