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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 소리에 분노한다? 그런 당신 이 장애 있을수도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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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곳에서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이. [중앙포토]

시끄러운 곳에서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이. [중앙포토]

최근 국내에서 층간소음 갈등이 살인으로 번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소음(騷音, Noise)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끄러운 소리, 원하지 않는 소리를 말합니다.
아무리 큰 소리라도 내가 원해서 듣는 음악은 이어폰으로 듣다가 청각이 상하더라도 소음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또, 평소에 내가 즐겨 듣던 음악이라도 원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낸다면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소음이 될 때가 있다

소음 크기의 비교: 단위 데시벨(dB)

소음 크기의 비교: 단위 데시벨(dB)

같은 소리라도 개인의 성격, 심신 상태에 따라서도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소음이란 게 이처럼 복잡합니다. 층간소음 갈등에서 윗집만 탓하기도, 아랫집만 탓하기도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선 일정 수준 이상으로 큰 소리는 대부분 싫어합니다.
그래서 소음 기준이란 게 있습니다.

국내 소음 환경기준을 보면, 도로변 전용·일반 주거지역 기준은 낮(오전 6시~오후 10시) 65데시벨(㏈) 이하, 밤(오후 10시~오전 5시) 55㏈ 이하입니다.
도로변이 아닌 일반지역 중에서도 전용주거지역은 낮 50㏈ 이하, 밤 40㏈ 이하로 기준이 가장 엄격합니다.

이 기준과 실제 소음을 비교해볼까요.
세탁기를 돌릴 때 나는 50~60㏈의 소음은 잘 못 느끼지만, 탈수할 때 나는 60~70㏈의 소음은 기준치를 웃돌기도 합니다.
밤에 세탁기를 돌리는 게 신경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죠.

듣기 싫은 소리는 존재한다

칠판 소음.

칠판 소음.

소리 크기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대체로 싫어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병을 칼이나 자로 긁는 소리, 유리잔을 포크로 긁는 소리, 칠판을 분필이나 손톱으로 긁는 소리 등입니다,

또, 여자의 비명, 아기 울음소리, 앵글 그라인더(갈고, 광을 내는 데 사용하는 휴대용 전동 공구) 작업 소리,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 전기 드릴 소리 등도 싫어하는 소리입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범위는 16㎐~20㎑(2만㎐)인데, 앞에 나열한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보통 2000~5000㎐ 주파수 범위에 있습니다.

물론 100㎐ 이하의 저주파 소음도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보통 ‘우웅~’하는 소리로 귀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몸은 반응합니다.

저주파는 공장이나 사업장에 설치된 송풍기·공조기·발전기·변전기·집진기나 펌프, 풍력발전기 등에서 발생합니다. 기차나 버스를 오래 탈 때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이 저주파 소음 탓입니다.

소음 내성이 낮아진 청각과민증

청각과민증은 소음에 대한 내성이 낮아져 일어난다. [중앙포토]

청각과민증은 소음에 대한 내성이 낮아져 일어난다. [중앙포토]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소음인데도,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각과민증이나 소리 혐오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청각과민증(Hyperacusis)은 소음에 대한 내성이 일반인들에 비해 낮아 불편함이나 통증을 느끼는 경우를 말합니다.
소음에 전반적으로 예민할 수도 있고, 특정 주파수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각과민증은 한쪽 귀 또는 양쪽 귀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청각과민증을 인구의 2%라는 보고도 있고, 5만 명 중의 한 명꼴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민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약물 노출이나 질병, 수술 후유증 등으로 청각이 과민해지기도 합니다.

이명(耳鳴)은 귀에서 지속해서 소리가 울리는 장애인데, 청각과민증을 가진 사람의 90%는 이명을 갖고 있습니다.
이명 환자 가운데 약 30%가 청각과민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이명은 귀 자체가 아니라 뇌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명과 청각과민증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각과민증도 뇌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청각과민증 환자는 소리 치료(Sound Therapy)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리 치료는 걸쳐 환자의 청력을 둔감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치료법인데, 소음 발생기를 사용해 환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소음 수준을 몇 달에 걸쳐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식입니다.

씹는 소리가 싫은 소리 혐오증

소리 혐오증 환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이 먹고 마시는 소리에 대해서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느낀다. [뉴스1]

소리 혐오증 환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이 먹고 마시는 소리에 대해서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느낀다. [뉴스1]

이에 비해 소리 혐오증(Misophonia)은 다른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숨 쉬는 소리와 같은 일상적인 특정 소리에 반응하여 분노와 불안의 강한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장애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는 먹는 소리, 씹는 소리, 마시는 소리, 호흡 소리도 분노·짜증·혐오·불안을 일으키는 ‘방아쇠 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방아쇠 소리’를 듣는 소리혐오증 환자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 때문에 격렬한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인구의 6~20%가 약하거나 심한 소리혐오증을 갖고 있다고 보고도 있습니다.

방아쇠 소리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라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신경 네트워크를 말하는데, 씹는 소리 같은 방아쇠 소리가 이 거울 뉴런을 과도하게 활성화하고, 그에 따라 구강 안면 운동 영역이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씹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방아쇠 소리 탓에 씹는 행동을 따라 하도록 계속 자극을 받을 경우 사람들은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행동에 대한 간섭·혼란 등으로 인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소리 혐오증 환자는 소리 치료와 더불어 인지 행동 요법을 병행하면 도움이 됩니다.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방아쇠 소리에 대해 덜 인식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전문가들은 방아쇠 소리가 들리면 참지 않고 그 소리를 크게 흉내 내는 것도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

특정 소리만 골라 듣는 '칵테일 파티 효과'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칵테일 바. AP=연합뉴스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칵테일 바. AP=연합뉴스

특정한 소리에 민감한 것은 사람의 보편적인 특성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시끄러운 파티에서도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골라서 듣는 재주가 사람에게는 있습니다.
바로 ‘칵테일 파티’ 효과입니다.

2013년 3월 미국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뉴런(Neuron)’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경쟁하는 소리를 무시하면서 관심 있는 소리만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최근에 수술을 받은 뇌전증 환자들에게 두 개의 비디오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중 한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이라고 주문했습니다.

연구팀이 소리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청각 피질을 모니터링한 결과, 뇌는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말과 무시하는 말을 모두 듣지만, 주의를 기울인 말이 더 강한 신호를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언어와 집중력 제어를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주의를 기울인 연설만이 신호 감지가 가능했고, 칵테일 파티 대화가 계속될수록 뇌는 다른 문장은 무시하고 그 문장에만 점점 더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다

쿠바 아바나에 있는 미국 대사관 옆을 클래식 컨버터블 자동차를 탄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미국 외교관, 정보 장교, 군인들 사이에는 에너지 파동을 방출하는 장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하바나 증후군'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쿠바 아바나에 있는 미국 대사관 옆을 클래식 컨버터블 자동차를 탄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미국 외교관, 정보 장교, 군인들 사이에는 에너지 파동을 방출하는 장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하바나 증후군'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어쨌든 사람들은 소리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소리가 무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은 군중 통제용으로 ‘지향성 음향장비(LRAD, Long Range Acoustic Device)’를 사용했습니다.

이 '음향대포'는 2.5㎒의 고음을 최대 125㏈까지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 경찰 시위진압용으로 이 장비를 도입하려다 반대 여론 때문에 백지화했습니다.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들 2016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뇌 손상과 청력 손실, 메스꺼움, 두통, 이명 등 괴증상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아바나 증후군’입니다.

2018년 5월에는 중국에 주재한 미국인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러시아와 콜롬비아·우즈베키스탄·베트남·오스트리아·인도·세르비아 등지에서 최근까지도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고,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보고가 됐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쿠바나 중국 측에서 도청하는 과정에서 극초단파(microwave)를 발사한 탓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쿠바나 중국 정부도 강력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소음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인근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인근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 [중앙포토]

사람은 소음을 싫어하지만, 항상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백색 소음(White Noise)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백색소음은 다양한 주파수 대역에서 동일한 강도를 갖는 혼합된 소리를 말합니다.
빗소리, 폭포 소리, 시냇물 소리, 진공청소기나 공기정화기 소리처럼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뒤섞인 소리입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보호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 백색소음은 아주 고요한 상태보다 오히려 공부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일부 대학생들의 경우 조용한 집이나 도서관이 아닌 다소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백색 소음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실험을 통해 백색 소음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의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약간 향상했다는 것입니다.

또, 백색소음이 있을 경우 미묘한 음조의 차이를 구분하는 뇌의 지각 능력이 조용할 때보다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백색소음은 청각 피질의 신경세포(뉴런) 흥분을 억제하기 때문에 특정 소리를 더 잘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봤던 칵테일 파티 효과와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층간소음 역지사지로 해결해야

층간소음 주된 발생 원인은 ‘발소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층간소음 주된 발생 원인은 ‘발소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사람은 개나 고양이, 박쥐나 나방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소리에 민감합니다.

특정한 소리, 특히 아기 울음소리나 포식자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됐고, 진화를 통해 우리 유전자에 저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대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예민한 청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위층 사람의 발걸음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처럼 특정 소리가 귀에, 머릿속에 한 번 꽂힌 뒤에는 같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갈수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바로 층간소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니까요.

층간소음은 아파트 바닥을 두텁게 시공하고, 매트를 깐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웃에 대한 이해와 소통, 배려가 중요합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이웃에게, 항의해도이해를 못 하는 이웃을 보면서 '내가 너무 큰 소리를 내는 건 아닐까', '내가 소음에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상대를 이해하고,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까요.
소리만 주고받는 이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주고받는 이웃이라면 층간소음 갈등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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