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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人들]한옥에 진심인 독일 남자… 텐들러 다니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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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처마의 곡선, 장지문 넘어 스며드는 따사로운 빛, 은은한 나무 향으로 가득한 대청… ‘한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예스러운 상태에만 머물러있는 한옥은 분명 ‘살기에’ 불편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최근 주거로서의 한옥은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반영하며 ‘불편함’을 덜어내고 있다. 독일에서 온 건축가 텐들러 다니엘 소장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분 좋은 불편함’을 담아내는 한옥을 짓고 있다.

텐들러 다니엘 소장이 자신이 설계한 은평한옥마을에 위치한 서희재 누마루에 자리했다. 이 집의 건축주는 텐들러 소장에게 본인이 살고싶은 집처럼 지어달라 부탁했다. 누마루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장진영 기자

텐들러 다니엘 소장이 자신이 설계한 은평한옥마을에 위치한 서희재 누마루에 자리했다. 이 집의 건축주는 텐들러 소장에게 본인이 살고싶은 집처럼 지어달라 부탁했다. 누마루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장진영 기자

“할머니 옷장의 나프탈렌 냄새, 친척들과 뛰어놀던 마당, 마루에 이불 깔고 누워 바라보던 별빛…  어린 시절 광주에서의 추억이 많아요. 할머니가 독일로 오셔서 같이 살기도 했었고. 우리 세대의 평범한 유년 시절 기억이죠”

텐들러 소장은 독일인 아버지와 파독 간호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8남매의 막내였던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다. 독일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서울에 머물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했다. “그때 경제학이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에서, 어린 시절 뛰어놀던 한옥을 짓고 싶었어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마친 그는 독일로 돌아가 아헨공과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 계획'을 전공했다. 졸업 논문도 '도심 속의 한옥'으로 정했다. 그가 설계해가면 지도교수가 공간, 동선, 비율을 파악하며 함께 한옥을 연구했다. 건축의 뼈대 위에 한옥의 생활 방식을 쌓아 올리는 시간이었다. 졸업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에 정착해 한옥을 전문으로 짓는 건축사무소에서 5년간 경력을 쌓았다. 현재 어번디테일 건축사사무소를 최지희 소장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텐들러 소장이 정승호 현장소장과 신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텐들러 소장이 정승호 현장소장과 신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왜 한옥인가?
어릴 때 자주 찾던 이모의 한옥집은 삐걱거리는 마루에, 화장실도 밖에 있고 솔직히 불편했거든요. 춥기도 했고. 그래도 재미있고 좋았어요. 같은 정서를 가진 또래라면 이해할 거에요. 기분 좋은 불편함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한옥에는 따뜻한 재료, 자연, 미학, 조상의 지혜 등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본능적으로 ‘아 이거 좋네!’ 인거죠.  
그는 소박한 고택을 좋아한다고 했다. 각 지역을 답사하며 기록한 스케치. 장진영 기자

그는 소박한 고택을 좋아한다고 했다. 각 지역을 답사하며 기록한 스케치. 장진영 기자

한국 말고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한 이유는?
‘아직은 한옥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이 없으니 독일에서 건축의 기초를 단단하게 쌓고 와라’. 한옥 전문가들의 조언이었어요. 한옥문화원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방학 때마다 한국에서 인턴을 하고 서울대학교 한국 건축사 연구실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도 했어요.    
현재 작업중인 신축 한옥 설계. 4인 가족의 생활을 고려해 일부분을 2층으로 설계했다. 장진영 기자

현재 작업중인 신축 한옥 설계. 4인 가족의 생활을 고려해 일부분을 2층으로 설계했다. 장진영 기자

첫 설계에 ‘인연’이 담겨있다고?
영문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었어요. 당시 건축주가 미국에 있는 화상영어 선생님과 한옥을 짓고 싶다는 대화를 했는데 그 선생님이 한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제 글을 찾아내 건축주에게 전달했대요. 두 아이를 품은 따듯한 집을 지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지난 2017년 은평 한옥마을에 ‘ㄷ자’구조 한옥을 지었습니다. 대문 위 다락은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 되었다네요.  
텐들러 소장이 신축 현장에서 도면을 체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텐들러 소장이 신축 현장에서 도면을 체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설계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통과 밸런스입니다. 전통적인 한옥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살기 편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한 집을 지어야 해요. 그런데 간혹 건축가 입장에서 보기에 좋지 않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해요. 최선의 공간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죠. 그 안에서 한옥의 특성을 살려야 합니다. 서로 순환하며 개방하고 소통하는 온돌방, 대청, 마당처럼요.
계동 골목끝에 위치한 한옥을 일부 증축 설계하여 진행한 프로젝트, 증축된 부분이 기존 부분과 어울리도록 철거된 한옥의 목재를 구해서 작업한 것이 특징. 최지희 소장과 공동 설계 작업들이다. 사진 hooxme 이상훈

계동 골목끝에 위치한 한옥을 일부 증축 설계하여 진행한 프로젝트, 증축된 부분이 기존 부분과 어울리도록 철거된 한옥의 목재를 구해서 작업한 것이 특징. 최지희 소장과 공동 설계 작업들이다. 사진 hooxme 이상훈

경복궁 서북쪽 지역은 해방 직후 대표적인 도시한옥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보완한 작업. 사진 hooxme 이상훈

경복궁 서북쪽 지역은 해방 직후 대표적인 도시한옥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보완한 작업. 사진 hooxme 이상훈

체부동에 위치한 한옥. 기존 한옥이 대지 경계선을 넘어가 철거 후 신축했다. 기존 골목 경관을 고려해 2층인데도 골목에서 바라보면 1층처럼 보이는것이 특징이다. 사진 hooxme 이상훈

체부동에 위치한 한옥. 기존 한옥이 대지 경계선을 넘어가 철거 후 신축했다. 기존 골목 경관을 고려해 2층인데도 골목에서 바라보면 1층처럼 보이는것이 특징이다. 사진 hooxme 이상훈

건축생물학 컨설턴트도 겸한다고?
과거 독일에서는 유독성을 가진 건축 자재 사용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건축과 건강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재료를 써야 하고, 건축물이 수명을 다했을 때 처리 방법도 고려해야 하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살아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집을 짓는 개념입니다. 한옥과 양옥 설계에 구분 없이 지향하고 있어요.  
어번디테일은 한옥만 짓지 않는다. 광교에 위치한 현대주택 작업. 3개의 마당이 특징인 작업. 사진 hooxme 이상훈

어번디테일은 한옥만 짓지 않는다. 광교에 위치한 현대주택 작업. 3개의 마당이 특징인 작업. 사진 hooxme 이상훈

독일 사람의 한옥 설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호기심은 분명 장점이에요. 한옥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더 주의 깊게 관심을 가져주시거든요. 저는 독일 태생이지만 한국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이 한옥을 하는 건 당연한 거죠. 우리 문화유산이니까.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텐들러 소장이 서희재 마당에 앉았다. 은평한옥마을에는 2층 한옥집이 많은데 이곳은 1층 한옥으로 마당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장진영 기자

텐들러 소장이 서희재 마당에 앉았다. 은평한옥마을에는 2층 한옥집이 많은데 이곳은 1층 한옥으로 마당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장진영 기자

그의 외모로 인해 너무 많은 질문을 들은 탓이었을까? 텐들러 소장은 묻지 않았음에도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언급을 먼저 말했다. 그리고 대화 중간중간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5년 후, 10년 후, 그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제야 인정 하시는 거 같아요. 버틸 거에요. 그리고 한옥을 재해석한 살기 편한 집, 한지·서까래·대청 등 한옥의 요소가 군데군데 쌓인 집, 어떤 공간이든 우리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적용하고 싶어요. 후대의 사람들에게 ‘한옥에 조금은 도움이 됐네’ 그 말만 들어도 바랄게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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