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농촌마을 장례식에 1000명 몰렸다, 80세 백인女 누구길래

중앙일보

입력 2021.10.02 05:00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리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리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8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카세가온의 한 농촌 마을에서 치러진 장례식장. 80세를 일기로 숨진 한 백인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1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대부분 인도 카스트의 최하위층인 불가촉천민 ‘달리트’였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옹호하며 반(反) 카스트 운동을 벌인 사회학자 게일 옴베트다.

옴베트는 지난 8월 25일 자택에서 숨졌다. 유족은 그의 사망 사실을 밝히면서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인도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솜나스 와그메어는 28일(현지시간) 가디언에 “옴베트는 인도 달리트를 위해 미국인으로서의 사회 문화적 특권을 모두 버렸다”며 “달리트들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추모했다. 와그메어는 옴베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달리트 위해 특권 모두 버려”    

젊은 시절의 게일 옴베트(오른쪽)와 남편 바라트 파탄카르. 사진 유튜브 캡처

젊은 시절의 게일 옴베트(오른쪽)와 남편 바라트 파탄카르. 사진 유튜브 캡처

옴베트는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위해 일했다. 칼튼 대학을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인도 농촌 지역사회 연구를 위해 1963년 처음 인도를 방문해 1년 넘게 살았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던 그는 1970년 카스트 제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려고 인도로 돌아왔다.

인도에서 저임금 섬유노동자의 권리투쟁을 위한 행진을 하다가 현지 인권운동가인 바라트 파탄카르를 만나 1976년 결혼했다. 이후 남편과 함께 설립한 ‘노동자 자유리그’ 단체를 통해 노동자 권리 운동과 반카스트 운동, 여성 인권 운동 등을 주도했다. 옴베트는 제3자로 남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 직접 뛰어들었다. 1983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인도 국적을 취득했다. 힌디어와 현지 언어인 마라티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라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라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연구도 활발히 했다. 인도 푸네대학교 등에서 사회학 교수와 뉴델리의 네루기념박물관 선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와 비영리단체에서도 컨설팅을 했다. 집에선 카스트에 반대하는 인물들의 글과 작품을 수집하고 번역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이렇게 남긴 책은 12권이 넘는다. 간디와 맞섰던 인도 민중의 대부로 한국에도 소개된 『암베드카르 평전』이나 『인도의 불교-브라만주의와 카스트에 대한 도전』, 『달리트와 민주주의 혁명』 등이다.

“독창적 연구…세계적 영향”

인도 작가이자 시인인 신디아 스테펀은 옴베트의 지적 유산은 비교 불가한 독창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도 학자들이 브라만교의 세계관과 좌파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완전히 무시했던 반카스트 연구가 옴베트 같은 학자 덕분에 주목받게 됐다”며 “보통의 사람들이 영국 식민지 독립운동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그들을 착취했던 사회·정치·종교적 구조와 투쟁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라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미국 국적을 버리고 50년 넘게 인도에서 살면서 불가촉천민 달라트와 함께 어울렸던 게일 옴베트. 사진 유튜브 캡처

옴베트는 페미니즘에도 세계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니샤 드사이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옴베트는 가난한 여성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를 만나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옴베트의 책으로는 『베굼푸라를 찾아서』를 꼽았다. ‘베굼푸라’는 고통 없는 인도의 유토피아를 뜻한다.

옴베트의 딸 프라치는 그의 삶과 철학을 계승한 수제자다. “인도 시골에서 엄마 목말을 타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행진가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는 현재 미국에서 페미니즘 및 사회정의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보면서 계급과 젠더 정의, 카스트와 인종 정의를 잇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어디에 있든 평생 ‘베굼푸라’라는 공동의 꿈을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