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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행 8차선 고속도로’…이재명 시장 때 ‘무늬만 공공’ 완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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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02면

‘의혹의 바다’ 대장동 개발 흑역사

서울 강남 접근성이 좋고 녹지가 많아 최적의 주거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지구 전경. [연합뉴스]

서울 강남 접근성이 좋고 녹지가 많아 최적의 주거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지구 전경.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지구(이하 대장지구)는 판교신도시에서 남쪽으로 1㎞가량 떨어져 있다. 서판교에선 차로 5분여 거리고, 용인~서울고속화도로가 인접해 있어 서울 강남권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광교산 자락에 위치해 녹지도 풍부하다. 주거지로서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대장지구에 눈독을 들였던 공공·민간 부동산개발회사(시행사)나 이른바 개발업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들이 서로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대장동은 개발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역사도 꽤 길다. 최근 터진 대장지구 특혜 의혹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관련 인물이 섞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 1기] 첫 삽도 못 떠보고 좌초

대장지구 개발이 시작된 건 2004년 즈음으로 한나라당 소속의 이대엽 성남시장 시절이다. 당시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대장동 등 일대 128만㎡에 중대형(전용면적 84㎡ 초과) 고급 주택을 지어 한국판 비버리힐즈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때는 중대형 주택 수요가 많았던 데다 입지여건이 뛰어나 그럴 듯 해 보였다. 성남시도 ‘2020 성남도시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했다. 그런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개발 계획이 유출되면서 중대형 고급 주택을 노린 빌라(다세대주택 등)가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엔 신도시 개발 도면까지 나돌았다.

대장지구 개발과 동시에 공공기관발(發) 투기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권력이 개입했고, 당시 공무원 등 22명이 부동산투기 혐의 등으로 입건됐다. 동시에 대한주택공사는 개발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대장지구 개발은 이렇게 허무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선 또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토지주와 시행사, 개발업자들이 자신들이 대장지구를 개발하겠다며 토지를 사들이는 등 이른바 ‘땅 작업’에 나선 것이다. 언젠가는 개발할 수밖에 없는 땅이라는 소문에 전국 각지에서 투기꾼이 몰렸다. 대장지구는 말 그대로 투기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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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2기] 민간개발 vs 공공개발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토지주와 시행사, 업자들은 대한주택공사가 손을 뗀 뒤로 계속해서 민간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성남시는 민간개발이 탐탁지 않았다. 난개발이 될 수 있는 데다 개발 이익이 민간에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남시는 택지개발사업(공공개발)을 타진했지만, 개발 정보 유출 사태를 겪은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는 동안 택지개발사업을 위해 2004년 설정한 개발행위제한구역 지정 종료가 다가왔다. 개발행위제한구역은 지정한 지 5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고 다시 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성남시는 2009년 대장지구 면적을 97만여 ㎡로 축소해 도시개발사업지구로 지정한다. 100만㎡ 이하 도시개발사업지는 국토부를 거치지 않고 자치단체장이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성남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공공개발을 추진했지만, 토지주 등 민간의 반대에 부딪혔다. 민간 주도의 개발을 원하는 토지주 등은 LH가 민간의 영역을 침범했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도시개발사업지는 택지개발사업과 달리 민간·공공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다. 민간과 LH 간 힘겨루기가 격화하면서 급기야 정치권이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은 LH 국정감사에서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과 주거환경 개선에 힘써야 할 LH가 중대형 주택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LH는 대장동에서 손을 떼라는 주장이었다. 대통령도 거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0월 7일 “LH가 민간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LH는 대장동에서 손을 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장지구는 또 다시 오명을 뒤짚어 쓴다. 정치권과 연계된 민간 사업자가 자신이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LH 등에 금품을 뿌리다 붙잡힌 것이다. 이 사건으로 LH 간부 등 6명이 구속됐는데, 이 민간 사업자가 한나라당 연관 인물이었다. 이재명 지사가 이번 사건을 두고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 지사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돈 냄새를 맡은 국민의힘 전·현직 관계자들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얽혀있다는 사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장지구는 그저 업자와 투기꾼 등이 뒤엉킨 투기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개발 3기] 이 지사의 등장과 화천대유

노른자위 땅인 줄 알았던 대장지구가 알고 보니 ‘비리’와 ‘투기’의 땅이었던 것이다. 당시 부동산 시장에선 대장지구를 두고 ‘교도소행 8차선 고속도로’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비리·투기의 땅 대장지구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 건 이 지사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2010년 6월부터다. 시장 취임 직후 이 지사는 대장지구와 성남시 신흥동 제1공단과의 결합개발을 들고 나왔다. 당시 이 지사는 “대장지구에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짓고, 직선거리로 10㎞ 떨어진 성남1공단 부지는 근린공원 등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성남1공단을 주민 휴식을 위한 번듯한 공원으로 조성하고, 이를 통해 신시가지와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게 이 지사의 구상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 지사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대장지구는 ‘공공개발’ 탈을 쓰게 된다. 정부가 2007년 관련법을 고쳐 공공이 50% 이상 참여하면 도시개발사업지에서도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성남시가 이를 적극 활용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지구 시행사인 ‘성남의뜰’ 주식을 50% 외에 1주 더 갖고 있는 이유다.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장지구 개발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는 “본인들이 개발하겠다고 이미 땅 작업을 한 시행사나 업자가 많았기 때문에 강제수용이 아니었다면 대장지구 개발은 불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선 토지 강제수용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사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직접 개발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 지사 측은 예산·경험 부족을 이유로 직접 시행은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대장지구 ‘공공개발’을 위해 이 지사 취임 이후 설립된 곳이다.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대장지구 개발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지사가 설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사도 지난달 14일 기자회견에서 “사실 (대장지구) 설계는 제가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지사는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2010년 제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후 대장동 개발사업을 ‘성남시 공영(공공)개발’로 바꿨다”며 “공영개발 포기 로비를 하던 민간사업자들은 닭 쫓던 개가 됐지만 성남시민들은 수천억대 이익을 확보할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 이 지사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국정감사나 특검을 통해 이번 사건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다. 국민의힘은 이 지사가 민간사업자에게 유리한 사업 구도를 설계했고, 이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특검 거부는 범죄연루 자인(自認)이자 자가당착”이라며 “떳떳하다면 특검을 수용하라”고 강조했다.

[개발 그후] 수천억원 개발 이익, 어디로

이 지사는 대장지구가 공공개발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아파트 분양 때는 민간택지였다. 관련법상 대장지구 시행사인 성남의뜰은 민간회사여서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성남의뜰과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 등이 대장지구에서 수천억원의 이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남시와 화천대유 측은 사업 초기엔 수천억원의 수익이 날지 몰랐다고 하지만, 토지를 강제수용한 공공개발이라면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초과 개발 이익에 대한 환수 장치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게 관련 업계와 정치권의 지적이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관계자는 “공공개발이라면서 초과 개발 이익에 대한 환수 장치를 두지 않은 건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지사나 주변 인물들이 민간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야권의 의혹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 같은 사업 구조 덕에 수천억원의 이익이 발생했고, 이 이익이 성남시가 아닌 민간 투자자의 주머니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사 측은 이 점에 대해 다르게 해석한다. 성남시의 이익을 사전에 확정했고, 이에 따라 성남시는 돈 한 푼 투자하거나 위험 부담 없이 인·허가권 행사만으로 성남1공단 공원 조성비 2561억원 등 총 5503억원 상당의 개발이익을 환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범적 공익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야권은 “민간개발을 한다고 해도 기부채납 등으로 환수가능한 규모”라고 비판한다. 추가 이익 환수 문제나 화천대유의 수익 배분 구조 등과 관련된 각종 의혹은 이제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대장지구에서만 3번째 공식 수사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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