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SPECIAL

[남승률 曰] 주방에서 일하려면 열기 견뎌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2 00:28

지면보기

756호 30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위협은 무엇인가? 아동의 85%가 백신 접종을 받았다면 국가가 나머지 15%에게, 심지어 이들이 백신 접종에 의심을 품고 있거나 반대하더라도 백신 접종을 요구할 권리가 생기는가? 다른 사안에서처럼 신념이나 양심을 근거로 백신 접종을 거부할 수는 없는가?’

백신의 역사와 논쟁 등을 다룬 『두 얼굴의 백신』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불거진 논란과 갈등의 단면과 이면이 잘 나타난 대목이기도 하다.

어려운 선택, 비판 따르게 마련
백신 접종률 더 높일 방안 필요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 백신 의무화 정책을 도입한 미국은 도처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9월 초 직원 100인 이상의 민간 기업에까지 백신 의무화를 지시했고, 여기에 많은 주와 기업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성인 5명 중 1명은 여전히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남부 12개 주에서는 완전 접종률이 50%를 밑돈다.

미국의 한 비영리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중 53%가 ‘코로나19 감염’보다 ‘백신 부작용’을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해고 사태까지 발생했다. 미국 3대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은 백신 접종을 끝까지 거부한 직원 593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의료법인에서도 직원 3만5000여 명 가운데 백신 접종을 거부한 175명이 결국 짐을 쌌다.

단기간에 백신 접종률을 급격히 끌어올린 국내에서도 접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의 하나로 이른바 ‘백신 패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미접종자들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백신 패스의 기본 전제가 미접종자들에게 다중이용시설 출입 제한 등의 불이익을 주는 네거티브 방식이라서다.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백신 패스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30일 기준 95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런 반발 분위기에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내일(10월 1일) 발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안에 백신 패스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요일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단계적 일상 회복 카드를 꺼내려면 백신 접종률을 더 높이는 게 중요하다. 관건은 570만 명에 이르는 미접종자다. 이들의 접종 예약률은 5%대에 불과하다. 미국의 백신 의무화 후폭풍을 두고 ‘백신을 맞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그런 사람을 해고할 자유도 있다’는 감정적 반응도 나오지만 반대론자들을 몰아세우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백신 패스의 경우도 미접종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접종 완료자의 이익을 늘리는 포지티브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게 신념이나 종교적 근거가 아니라 백신에 대한 불신이나 접종 과정에서의 불안감 탓이라면 이를 해소할 대안을 더 마련하거나, 기존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 현실은 딴판이다. 예컨대 지난 4월 ‘사지마비 40대 간호조무사’ 사례 이후 백신 접종과 부작용 사이의 의학적 인과관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더라도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생겼지만 혜택을 본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백신과 이상반응 사이의 인과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넓혀 백신 접종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면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말한 대로 “열기를 견딜 수 없다면 주방에서 일할 수 없는 법”이다(『두 얼굴의 백신』의 저자 스튜어트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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