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그 후 30년

독, 나토·미 ‘외교 우산’ 접고 국제사회 역할 확대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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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27면

독일 통일 그 후 30년 〈12·끝〉 

독일 연방 해군 소속 구축함 바이에른함이 한국과 호주, 일본을 방문할 예정으로 출항했다. 바이에른함은 대북 유엔 제재 감시 업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독일 연방 해군 소속 구축함 바이에른함이 한국과 호주, 일본을 방문할 예정으로 출항했다. 바이에른함은 대북 유엔 제재 감시 업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지난 8월 초 독일 연방 해군의 구축함인 바이에른함은 동아시아를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바이에른함은 올해 말에 한국에 입항할 예정이며 대북 유엔 제재 감시 업무를 지원할 계획이다. 바이에른함은 남중국해를 통과함으로써 해당 지역 항해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려고 한다. 바이에른함은 일본과 호주에도 기항할 예정이다. 바이에른함의 이러한 행보는 독일의 외교정책이 통일 이후에 크게 변화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대개 독일의 적극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접국과 동맹국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통일 이전에는 서독과 동독 모두 완전한 주권을 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현재까지도 독일에는 공식적으로 참모본부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2차 대전 결과에 따른 것이다. 프로이센시대의 참모본부와 최고사령부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최고사령부 조직으로 이어지자 전승국들은 이것을 군국주의의 온상이라고 여겼다. 통일이 될 때까지 서독의 전시작전권은 전적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귀속돼 있었다. 1990년 독일의 외교 주권을 마련했던 2+4 조약을 통해 전후 상황이 종결됐지만 독일은 계속해서 나토의 틀 안에서 서방 동맹국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 정책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방예산 비중 감소, 병역의무 폐지

독일 본의 유엔 캠퍼스. 기후사무국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독일 본의 유엔 캠퍼스. 기후사무국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사진 독일연방문서보관소]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함으로써 나타난 장점이 존재했는데,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의 감소가 그것이었다. 1961년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세운 직후에 GDP 대비 5%가 넘었던 서독의 국방 예산은 최고치에 달했다. 장벽이 붕괴됐던 1989년에는 2.5% 수준이었으며 2015년에는 1%를 약간 상회했다. 그 사이 병역 의무가 폐지됐으며 나토와 유럽연합(EU)이 동유럽 국가들로 확대됨에 따라 독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접국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독일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독일은 헬무트 콜 총리 시절에 인도주의 지원 차원에서 최초로 연방군을 해외에 파병했다. 이후 독일군은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여해 터키의 대공미사일 부대를 지원했으며 발칸 지역 독립전쟁 땐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발칸반도와 아드리아해에 파병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외교정책도 내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처음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슈뢰더 정부는 그러나 나토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상호방위규정을 발동한 후 공개적으로 독일의 이라크전 참전을 거부했다. 슈뢰더는 2002년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전쟁 선택’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독일의 길’을 언급하며 독일을 평화국가로 규정했다.

2차 대전 이후 완전히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로 탈바꿈한 독일에서 위와 같은 입장 표명은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출 챔피언’인 독일은 더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배경에서 독일은 특히 국제기후협약 또는 개발정책 분야에서 적극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해 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취임 이후 독일은 2008년~2009년 국제 금융위기와 2015년 난민위기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전에는 언제나 프랑스가 그 역할을 맡으려 했으며 적어도 독일과 긴밀하게 협력해 해결하려 했지만 최근 몇 년간 프랑스의 내치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게 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독일 또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건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난민들로 인해 사회 통합에 큰 문제가 발생했으며 우파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이 득세하면서 정치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생겨났다. 게다가 독일 통일의 여파로 독일의 민주주의가 누렸던 안정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은 측면이 있다.

외교에 있어서도 독일의 새로운 지도적 역할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이 그러한 역할을 함에 있어서 예측 가능한 외교정책의 근거가 될 만한 바탕이 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부족한 것은 외교정책 분야의 전문 지식이다. 독일은 ‘지정학’이라는 개념의 탄생에 일조한 나라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에 정작 독일에서 그것은 잘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 돼 버렸다. 국제 경제나 국제 정치와 같은 여러 분야에서 개별 주제에 관한 연구는 여러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역 연구에 관한 전문 지식들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외교 업무는 독일에서 늘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된다. 대개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독일은 거드는 식이었다.

정보기관도 언제나 미국에 심하게 의존해 왔으며 통일 이후에는 늘 새로운 법적 규제들로 인해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 독일 연방군도 독일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국제적 임무들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정비하는 작업을 지체해 왔다. 따라서 독일은 외교 분야에 있어서 마치 사상누각과 같은 허약한 상태이다.

정보기관·연방군 ‘이빨 빠진 호랑이’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다섯째). [연합뉴스]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다섯째).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바뀔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회피 성향의 평화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와 덴마크에서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린 이슬람 테러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며 감수하는 분위기이다. 슈뢰더 총리 시절에 개정한 국적법에 따라 2001년 이후 이슬람 유권자가 수백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어느 정치인도 해당 유권자 그룹과 상반되는 입장을 잘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슬람 테러에 대해 섣불리 비판했다간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기 때문이다. 수차례 처벌을 받은 범죄자들조차 자신들의 고국으로 추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독일 대사관 직원들과 현지 채용인들의 탈출 작전 장면들을 보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얼마나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독일로 데리고 온 수백 명의 아프간인 중 실제 현지 채용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반면에 몇 명은 경찰의 수배명단에도 포함돼 있는 범죄자들이었다. 그중에는 독일에서 아프간으로 추방된 적이 있는 강간상해 범죄인들도 있었다.

독일 외교정책은 통일이 되고 30여 년이 지난 현재 정상화됐다. 하지만 일반 독일 국민의 인식 속에서는 외교적 참여를 위한 비용이 어느 정도이며 자유로운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가에 관한 관념이 실질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1992년부터 실시된 독일 연방군의 해외 파병과 관련해 지금까지 군인 114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37명은 적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대중에게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의 독일 외교정책은 평화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더 많은 독일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독일은 이에 부응해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야만 국제적으로 안정을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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