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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수트·리본타이…2030 ‘골린이’ 필드 패션 틀 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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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19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골프웨어 변화 바람

카레이서 출신 사업가 서주원(오른쪽) 대표와 56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아옳이’ 김민영(왼쪽) 부부가 기획한 ‘로드로아르’. [사진 각 브랜드]

카레이서 출신 사업가 서주원(오른쪽) 대표와 56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아옳이’ 김민영(왼쪽) 부부가 기획한 ‘로드로아르’. [사진 각 브랜드]

1997년 칼라가 없는 붉은 목 폴라 셔츠를 입고 나타난 타이거 우즈, 2017년 등이 파인 민소매 셔츠를 입고 등장한 미셸 위. 이들은 당시 골프 패션의 ‘룰 파괴자’로 화제를 모았다. ‘신사의 스포츠’로 불렸던 골프는 그만큼 패션에서도 원칙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재킷을 입지 않으면 지금도 입장이 안 되는 안양CC의 복장 규정은 유명하다.

지난 5월 열린 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선 박주영 선수가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를 입고 나타나 찬반 논쟁이 붙었다. “프로 골퍼로서 골프의 전통을 해쳤다”는 의견과 “신선하다”는 의견이 아직도 팽팽하다. ‘JTBC골프매거진’ 10월호에선 20대부터 60대까지 골프 동호회·업계 종사자 등 남녀 아마추어 골퍼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프로 골퍼의 파격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69.2%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라는 대답은 30.8%. “프로 골퍼에게 적용되는 복장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에는 63.4%가 “점차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골프장에서 가장 비호감 패션은?”이라는 질문에는 “조거팬츠·레깅스 등 트레이닝복”이라는 대답이 38.2%로 가장 많았다.

짧은 상의에 긴 스커트로 날씬한 실루엣

긴 스커트와 넉넉한 크기의 아노락 집업 셔츠로 실루엣을 강조한 ‘르쏘넷’. [사진 각 브랜드]

긴 스커트와 넉넉한 크기의 아노락 집업 셔츠로 실루엣을 강조한 ‘르쏘넷’. [사진 각 브랜드]

이렇듯 골프 패션은 큰 변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그 변화는 급물살을 탔다. 이른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골린이(골프+어린)’들의 출현 때문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골프복 시장 규모는 5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대비 약 10% 늘어난 숫자다. 이 시장을 견인하는 소비자는 골프 경력 3년 이하인 ‘골린이’들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골프 인구는 515만명. 이 중 ‘골린이’ 숫자는 65%에 이른다.

남들과 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이고 보니 골프 패션 역시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골프 패션에선 볼 수 없었던 아노락(바람막이 점퍼) 티셔츠, 점프수트(상하의가 붙은 멜빵바지), 조거팬츠 등이 필드에 등장했다. 초록색 잔디 위에서 하는 경기인 만큼 기성세대는 눈에 띄는 원색을 선호해 일명 ‘신호등 패션’을 보여줬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골퍼들은 무채색 또는 뉴트럴 컬러에 네온 컬러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을 선호한다.

올해 4월 론칭 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브랜드 ‘르쏘넷’의 전효진 대표는 “정형화된 골프복은 싫고, 남들과는 다르게 입고 싶은데,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없어서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패션 잡지 부편집장 출신의 전 대표는 멋진 스타일을 제안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그가 가장 신경 쓴 아이템은 바로 스커트. “기존 골프 스커트들은 너무 짧아서 엉덩이·허벅지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게 싫어 길이를 좀 늘리고 날씬해 보이는 실루엣의 스커트를 만들었다. 상의는 길어진 스커트에 어울리도록 길이는 조금 짧게, 어깨는 부풀린 디자인으로 만들었더니 다리는 길어 보이고 뒷모습도 예쁘게 보이더라.”

점프수트·베레모 등으로 젊은 감성을 살린 ‘왁’. [사진 각 브랜드]

점프수트·베레모 등으로 젊은 감성을 살린 ‘왁’. [사진 각 브랜드]

코오롱FnC가 진행하는 젊은 골프 브랜드 ‘왁’은 최근 점프수트 골프복으로 화제다. 올해 봄·여름 시즌 첫선을 보였는데 3차 리오더까지 완판됐다. 왁의 오인화 디자인 실장은 “차별화를 고민하면서 ‘실루엣에 변화를 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점프수트를 내놓게 됐다”고 했다.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는 너무 몸에 달라붙으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오 실장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원들이 직접 스윙 연습을 하면서 몸매는 예뻐 보이고 움직임은 편한 실루엣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옷 좀 입는다’는 패피들이 말하는 패션의 제1원칙은 디자인이나 색깔보다, 내 몸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잡아주는 ‘핏(fit)’이다. 뚱뚱한 사람은 날씬하게, 빼빼 마른 사람은 균형감 있는 체격으로 보이게 하는 실루엣의 마술을 아는 자가 진정한 패션계의 ‘위너’다 . MZ세대에서 몸에 밀착되는 레깅스, 몸에 달라붙지 않는 조거팬츠 등 각각 다른 실루엣의 골프 패션이 환영받는 이유다.

골프복 위에 재킷 걸치고 비즈니스 미팅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는 에몽 by 더카트골프. [사진 각 브랜드]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는 에몽 by 더카트골프. [사진 각 브랜드]

개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실용성도 따지는 MZ세대는 합리적인 소비자답게 골프·테니스는 물론 일상복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패션’을 추구한다. 실제로 초록색 필드에서 펼쳐지는 골프와 테니스는 피케셔츠(폴로셔츠), 주름 스커트 등 아이템이 비슷하다. ‘라코스테’ 송현귀 이사는 “매장 구매 고객들을 살펴보면 필드용 아이템에서 골프·테니스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운동복이 아닌 일상복으로 구매하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일상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골프복은 몇 년간 꾸준히 패션 업계를 장악해온 ‘애슬레저 룩’ 트렌드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일상과 필드, 겸용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골프복은 디자인·기능면에서 일반 캐주얼 룩이나 스포츠 룩보다 디테일이 조금 더 섬세하다.

지난달 론칭한 골프복 ‘로드로아르’는 카레이서 출신의 젊은 사업가 서주원 대표와 구독자 56만명의 유튜버 ‘아옳이’로 활동하는 김민영 부부가 기획한 브랜드다. 젊은 세대의 취향에 예민한 두 사람이 함께 잡은 브랜드 컨셉트는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브리티시 감성의 골프웨어’다. 칼라에 레이스·리본이 달린 블라우스 셔츠, 금색 버클 벨트로 허리를 조인 주름 스커트 등이 눈에 띈다. 로드로아르의 권미화 상무는 “젊은 세대라고 마냥 발랄한 캐주얼 스타일만 선호하진 않는다”며 “오히려 여성은 더 여성스럽고, 남성은 더 남성스러운 클래식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소재 등에서 활동성을 추구한다는 데 디자인·기능의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는 필드에서 막 빠져나와 그 위에 재킷 하나만 걸치면 바로 데이트를 가고 비즈니스 미팅을 갈 수 있는 하이브리드 패션의 필수요소다. 일명 T·P·O(시간·장소·상황)를 맞출 줄 아는 패션이다.

고품질의 기능성 추구 역시 당연하다. ‘타이틀리스트’ 김현준 홍보팀장은 “감성적 취향뿐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을 유용하게 돕는 다양한 기능성까지 까다롭게 제품을 체크하는 게 요즘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이라고 했다. 이제 갓 시작한 골린이들을 위한 골프복이지만 방풍·방수·투습 기능이 뛰어난 고급 원단들을 사용하는 이유다.

아이템 자체도 기능성을 강조한 것들이 각광받는다. ‘힐크릭’은 일교차가 심한 간절기에 티셔츠처럼 가볍게 입기 좋은 ‘세미 오버 아노락’과 다양한 룩에 매치가 가능한 버킷 햇을 출시했다. ‘캘러웨이 어패럴’ 역시 후드 집업, 카고 팬츠 등 스트리트 웨어에 골프 웨어의 기능성을 더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로 인정받는 것은 단순히 스포츠를 즐기는 것뿐 아니라 사교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등산이나 조깅처럼 혼자 즐길 수 없고, 반드시 멤버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만큼 룰도 매너도 중요하다. 인간의 사회성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인 패션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MZ세대도 다르지 않다. 다만,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선택의 스펙트럼을 훨씬 넓게 두고 있다. ‘격식은 지키되 정형성은 거부한다’는 이들의 자유로운 마인드 덕분에 시장은 훨씬 더 조밀하게, 더 신중하게, 더 다양하게 제품을 고민하고 있다. 내가 어느 세대에 속했든, 선택의 폭이 넓어진 시장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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