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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이미자, 달걀·두부값 좔좔 꿰고 헌 금빛 구두 애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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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16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1〉전설의 여가수

나는 지금 자못 근엄한 상태다. 왜냐하면 이번엔 음악평론부터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음악평론이냐. 지난주에 나는 한국 근대 대중 가수를 통틀어 우리의 가요사에서 몇 손가락 꼽을 때 패티김을 썼으면 당연히 이미자에 관해서도 써야 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똑같은 대중가요 가수지만 패티김과 이미자는 묘하게 다르다. 전혀 다르다. 앞에서 나는 근대사 대중가요라고 썼다. 왜냐하면 대중가요는 일제 말기부터 일본식 트로트 가요와 우리네 한국식 트로트 가요가 분리되어 생성해왔기 때문이다. 해방 전부터 지금까지 대중(혹은 민중)가요는 우리네 대중의 삶 속에 삶의 일부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런 도도한 음악 역사의 와중에 필자인 조영남은 해방 이후 생겨난 윤심덕, 고복수식 초기 가요에서부터 오늘날의 BTS 방탄소년단식의 최신 현대 가요까지 직접 두 눈을 뜨고 보아왔다. 본 정도가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며 감동을 해왔다.

하! 이건 갈갈갈 웃기는 얘기다. 뭐가 그리 웃기냐. 웃기는 이유를 밝힌다. 정말 웃긴다. 50여 년 가수생활에 내가 직접 몸담아오며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 갑자기 미친놈으로 보이겠지만 생전 처음 음악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봐도 정말 웃긴다. 뭐냐. 지금까지 나는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계속 뭔가를 썼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란 책을 썼고, 지난 5년 동안 미술재판을 받으며 또 미술에 관한 책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란 제목의 책도 썼다. 생각해 보시라. 나 조영남은 세상이 다 아는 가수다. 뭐 그리 대단한 가수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나가는 가수였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어디까지나 가수다. 멀쩡한 가수가 미술에 관한 법정 재판도 받고 미술에 관한 책도 썼다. 뭐가 갈갈갈이냐 하면 그러는 동안 정작 음악에 관해선 뭐라 단 한 줄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중요한 콘서트 때 관례적 인사말 수준의 음악에 관한 코멘트 이외엔 본격적으로 쓴 적이 없다. 마치 음악은 내 분야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하여간 어쩌다 그렇게 됐다.

두 누님과 TV·지방서 여러 번 함께 공연

이미자씨는 토크쇼에 잘 출연하지 않는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 조영남씨와 함께 출연해 서민적인 면모를 보였다. [사진 조영남]

이미자씨는 토크쇼에 잘 출연하지 않는다. 2003년 KBS 아침마당에 조영남씨와 함께 출연해 서민적인 면모를 보였다. [사진 조영남]

그럼 왜 이런 괴상망측한 현상이 벌어졌는지? 그렇지 않아도 미술에 관한 책을 쓸 때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음악에 관한 책은 언제 쓸 것인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곤 했지만 늘 나는 시큰둥했다. 반응을 안 보였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패티김 얘기를 쓰면서 음악에 대한 얘기를 쓰게 되었다. 독자 제위께선 필자가 미대 출신은 아니지만 적어도 멀쩡한 음대 출신이라는 걸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패티김 얘기를 썼으면 당연히 이미자 얘기를 써야 한다. 안 그런가? 참 기기묘묘하다. 뭐가 기기묘묘하냐. 두 사람의 이름 석 자부터가 예술이다. 한 분은 패티김, 또 한 분은 이미자! 원칙적으로는 똑같이 열아홉에 가수가 됐지만 이미자가 먼저 우리 대중에게 알려져 이미자를 패티김 앞에 둬야 하지만 나 개인한테는 그렇지가 않다. 내 입에 붙은 습관은 패티김 이미자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순으로 부르는 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패티김이 여든세 살이고 이미자가 세 살 밑이다. 평소에도 이미자가 패티에게 늘 ‘언니’라는 칭호를 쓰곤 했다.

이제 진짜 갈갈갈이 시작된다. 그 두 명의 여자 사이에 천하에 못생긴 조영남이가 끼어 들어가 그룹 트리오를 이룬 것이다. 그룹 트리오라는 이름은 그때도 지금도 없었다. 내가 지금 회고록을 쓰면서 급조해낸 명칭이다. 하나 분명한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까탈스러웠던 두 명의 여자 전설 사이에 내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미안하지만 조용필 남진 나훈아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조합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갈쓰일(갈갈거리다 쓰러질 일)이냔 말이다. 둘 다 까탈스럽다기보다 우선 둘은 무섭다. 둘이 뿜어내는 위엄이 무섭다는 얘기다. 자랑이 아니라 내가 그들한테 ‘누이’라는 칭호를 쓴 건 순전히 선천적인 나의 넉살 때문이었다. 옆에 사람들이 왜 조영남한테 ‘누이’라는 칭호를 허락하느냐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두 분 다 똑같이 그랬다.

“영남이는 노래를 잘해서 괜찮아.”

직사게 욕먹을 일이지만 대한민국 어느 대중음악 평론가도 나만큼 두 사람에 관한 차이점을 정확히 밝혀낼 수는 없다. 왜냐면 나는 두 누님과 함께 여러 번 TV에서나 지방무대에서 함께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름부터 완전 다르다. 패티김은 외국제, 이미자는 순국산 신토불이의 이름이다. 겉모습, 평소 말투나 행동도 다르다. 패티는 말의 억양부터 버터 냄새가 좌르르 흐르고 이미자는 말투가 묵은 한국 된장식 말투다. 묘하게 공통점이 있는 건 두 분 다 말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내가 두 분 누님한테 가장 많이 한 타박(?)은 바로 “누님들, 말 좀 빨리빨리 해봐요”다.

패티의 말을 처음 듣게 될 때는 반드시 ‘아! 저분은 외국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저렇게 우리말을 빨리 못하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 말투가 너무너무 멋스럽게 들려서 보통 사람들은 아예 그러려니 오히려 높이 우러러보게 만든다. 남자 디자이너 앙드레김과 흡사한 경우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랩송을 들어보시라. 전부 패티김이나 앙드레김식으로 한국말도 미국말도 아닌 제3의 뉴 언어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걸 패티김과 앙드레김이 출발시켰던 것이다.

이미자는 어떠한가. 간단히 말하면 정 반대다. 정반대도 이만저만 정반대가 아니라 토털리 정반대다.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이미자는 내 타입이다. 평소 말투나 행동에서 전혀 패티김과 거리가 멀다. 똑같은 직업의 연예인이지만 패티김은 패티김, 이미자는 이미자다. 이름 그대로 이미자다. 나는 어느 일본 신문기자가 한국의 미소라 히바리(1937~1989,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가수)인 이미자에 대해 쓴 인상기를 찾아냈다. 이렇게 썼다.

“처음 만난 한국의 대가수 이미자는 수수했다. 세련된 복장을 했지만 전혀 가수 같지 않았다.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주부 같았다. 말씨도 매우 겸손했고 일반적으로 스타가 지니는 교묘한 모습도 없었다.”

이건 깜놀할 일이다. 외국 기자지만 우리네 기자보다 이미자의 본 모습을 똑바로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마지막 줄에 적어놓은 “일반적으로 스타가 지니는 교묘한 모습도 없었다”는, 어찌 스타인데 스타다운 교묘한 모습을 안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자 누님한텐 누구나 있기 마련인 교묘한 모습이 그냥 통째로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스타 소리는 일찍부터 들어왔으면서도 내 경우는 일부러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기자한테 온갖 짓을 다 한다. 때로는 과장도 떨고 때로는 필요 이상의 겸양을 떨기도 한다. 그 점에서 패티김은 역설적으로 매우 자연스럽다. 교묘함이 몸에 이미 배어 있다는 의미다. 이미 행색이나 말투나 적당한 과장이 몸에 딱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자한텐 그런 게 없다. 나는 이미자 누님과 심심찮게 연주 여행을 많이 했다. 공항 대합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나를 더 빨리 알아본다. 내 차림새야말로 별 볼품도 없는데 이미자는 나보다 더 수수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만큼 이미자는 순수무쌍하다.

함께 공연하는 이미자·패티김·조영남씨(왼쪽부터). 조씨는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했다. [사진 조영남]

함께 공연하는 이미자·패티김·조영남씨(왼쪽부터). 조씨는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했다. [사진 조영남]

언젠가 나는 무대 뒤 대기실에서 무심코 이미자 선배의 무대용 금빛 구두를 내려다보고 가슴 뭉클했던 적이 있다. 수상했다. 무대에서만 신는 구두라는데 어딘가 모르게 고물 구두 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그랬다.

“누님! 이젠 돈도 많이 벌어 놨을 텐데 명품 구두 하나 사신지 그러우”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얘! 이것도 비싼 거야.”

그리고 이미자는 말하는 것이었다. “너나 빨리 미끄러지는 운동화 신지 말고 새 구두 하나 사서 신어.” 본전도 못 건진 셈이다.

언젠가 TV 아침마당에 이미자 누님과 함께 출연했는데 사회자가 묻고 이미자 누님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걸 보고 전 국민이 깜놀했었다. 상상해보시라. 스타 중에 스타가 쌀 한 가마니 값, 달걀 한 판 값, 콩나물 두부값을 좔좔 꿰뚫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 기자 “스타의 교묘한 모습 없어”

한 때는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 쇼’를 함께 하면서 두 누님의 공통점은 말씨가 느리다는 것과 어딘가 모르게 두 분 다 띨띨하시다는 거라고 한 적 있는데, 이미자 누님은 금방 띨띨함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지만 패티 누님은 실로 띨띨함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띨띨함을 설명하느라 땀깨나 뺐다. 띨띨함은 단연 패티 누님이 압권이었다. 이런 거다. 언젠가 무대에서 바리톤 최현수가 인사를 했다.

“저 바리톤 최현수입니다.”

패티가 인사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최현수씨 우리 자주 만나요” 하고 헤어졌다.

이튿날 패티김은 또 다른 바리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 바리톤 김동규입니다.”

패티 왈 “네 반가워요. 그런데 그렇게 빨리 콧수염을 기르셨네요” 하니까 “아! 그건 바리톤 최현수고 전 원래부터 콧수염이 있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최현수를 만나게 되어 인사를 하니까 패티 누님의 멘트.

“어머! 그새 콧수염을 또 밀으셨네요.”

패티김 매니저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이미자 누님은 남편에 관한 일과 자식에 관한 가정생활로 충분히 바쁘시다. 어느 날 무대 뒤에서 내가 직접 ‘아! 이 모습이 진짜 이미자구나’ 하고 느낀 건 따로 있다.

여러 후배 여가수들이 온갖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무대에 나서는 모습을 보시면서 옆에 있던 나한테 넋두리처럼 “어머! 그러고 보니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쟤네들처럼 가슴 파이고 양팔 드러나는 드레스를 못 입어봤구나!”라는 거였다.

나는 가수 패티김과 2004년 한·러 수교 120주년을 맞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공연과, 이미자 누님을 따라 2013년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부를 위한 콘서트도 함께 다녀왔다. 땡큐 패티. 당케 쉔 미자 누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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