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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도 남군과 똑같이 행군·철야훈련, 정신력은 더 강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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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호 12면

전·현 여군 4인 ‘병영 토크’ 

지난달 9일 나흘 밤낮 동안 교전하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에 참여한 여군 부사관이 적진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육군]

지난달 9일 나흘 밤낮 동안 교전하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에 참여한 여군 부사관이 적진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육군]

“국민으로서 여자만이 안일하게 국난을 방관하는 태도로 있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므로(중략) 남녀를 막론하고 최후의 평화를 획득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1950년 8월 23일 여자의용군 모집 담화문 중)

한국전쟁이 터지고 두 달도 채 안 된 1950년 8월, 전선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까지 몰렸다. 총 들고 싸울 힘만 있다면 남녀노소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여성으로 구성된 군 조직인 여자 의용군교육대는 그렇게 창설됐다. 창설 3일 후, 500명의 여성이 입소했다. 이 중 491명이 훈련 교육을 마치고 장교·부사관 등 계급을 달고 총을 들었다. 이를 계기로 매년 9월 6일은 ‘여군의 날’이 됐다. 현재 한국군에는 1만 3000여명의 여군이 복무 중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군 수는 20배 넘게 늘었지만 ‘여군은 꿀 빤다’ ‘완전군장도 못 멘다’는 식의 여군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제자리다. 24년간 육군 최전방을 오가며 복무한 권지영(46) 상사, 해군 통역장교로 복무했던 ‘3대 군인가족’ 이가회(28) 중위, 육군 인사장교 출신 양세연(가명·27) 중위, 현역 육군 중대 소대장인 김가영(가명·25) 소위 등 4명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 여군의 생활

“남자들이랑 똑같이 훈련받아?”

여군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권지영씨는 “(남군과 여군의 체력검정표) 기준이 다른 것이지, 훈련이 다르진 않다. 훈련은 교육 성적에 반영되고, 진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자라고 특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세연씨도 “신체적 구조가 달라서 ‘여군은 모두 남군보다 약할 것이다’라고 오해하는데, 남자라고 해서 모두 여자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특히 철야 훈련이나 행군을 할 때 여군의 정신력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일반 사회조직보다 특수한 면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직장이나 다를 바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훈련을 제외하면 (생활은) 일반 회사원과 다를 바 없다”고들 한다. 이가회씨는 “군인은 다 최전방에서 몸을 써가며 나라를 지키는 모습일 거라고 상상하지만, 직장인들처럼 출퇴근도 하고, 잦은 야근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병사가 불침번을 서듯, 간부인 여군들은 당직 근무를 선다. 전역하기 직전까지 한 달에 5~6번씩 당직했고, 평소에도 업무가 많아 밥 먹듯 야근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여군 수가 매년 늘어나는 것에 비해 시설은 여전히 열악한 부분도 많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군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군 중 15.7%가 편의시설 관련 문제로 차별을 받는다고 답했다. 이씨는 “여자 화장실이 없는 부대도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권씨 역시 “새 건물을 지을 때도 여자화장실은 단 한 개만 설치하겠다는 말을 듣고 지휘관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경험을 들려줬다.

# 2.4%로 산다는 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여군은 전체 군 병력 중 2.4%(간부 중에선 7.4%)에 불과하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수치지만, 여전히 소수다. 여군을 ‘어항 속의 금붕어’라고 부르며 유리천장을 거론하기도 한다. 양씨는 “2018년 여군 보직 제한이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있다. 사실 어느 부대도 여군을 반기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도 “해군에선 아직 여군이 잠수함에 탈 수 없고, 전역한 여군이 예비군에 가면 난감해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현역인 김씨는 “여군이 있는 소초에서 사고가 나자 그 소초에는 여군을 보내지 않는 게 규칙이 됐다. 남군이 잘못하면 개인의 문제지만, 여군이 잘못하면 여군 전체의 문제로 치부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전방인 양구에서 근무했던 권씨는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떠올렸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2주 동안 훈련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어요. 500명 규모의 훈련이었는데, 혼자 여군이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엉망진창이 된 아이를 본 순간, 처음으로 군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사회에는 워킹맘을 위한 보육 시설이 있지만, 훈련이나 비상상황에 군 자녀들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남군들은 이런 고충을 모른 체하더라고요.”

배려를 명목으로 시행되는 제도에 대한 불만도 거세다. 양씨는 양성평등 군대를 목표로 주 1회 실시하는 양성평등상담관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름은 ‘양성평등’이지만 여군만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할뿐더러, ‘여자니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식의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 모든 여군이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씨 역시 “사건이 터져도 상담관을 믿고 얘기할 수 있겠다는 느낌은 없고, 상담 결과는 상부에 보고되니 신뢰도 없다”고 털어놨다. 양성평등상담관이 도입된 지 오래지만, 여군 대상 성범죄는 2018년 70건, 2019년 72건, 2020년 73건으로 매년 줄지 않고 있다.

# 미디어 속의 여군

“예능 ‘진짜 사나이’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무릎을 꿇고 팔굽혀펴기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부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봤는데, 다들 어이가 없단 반응이었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여군에 대한 왜곡된 모습들이 노출되니까 여군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이들은 여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왜곡된 미디어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훈련 중간에 열외를 요청하거나, 교관에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실제 여군의 행동인 것처럼 묘사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미디어의 왜곡 때문에 군 내부에서도 ‘여군은 약하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외부는 오죽할까. 향후 드라마에 씩씩하고 멋있는 엘리트 여군이 나온다고 해도 아마 대부분 ‘저런 여군은 현실에 없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라며 “미디어가 ‘일반 여군’의 생활에도 주목한다면 인식 변화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권씨는 “‘군대’라고 하면 ‘강철부대’처럼 육체적인 어려움과 강인함에만 집중하다 보니 여군은 뒷전이다. 보고 듣는 것들이 ‘힘들게 애쓰는 군인’에 편중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여군은 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여군이 바라는 변화는

“남군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잖아요.”

양씨는 ‘여군’을 지칭하는 용어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말고, 동등한 군인으로 인식해달라는 취지에서다. 그는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싫었던 단어가 ‘여군’이었다”면서 “남군은 군인, 여군은 여군이라고 불리는 것부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특전사에서는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군가에 등장하는 ‘사나이’라는 말을 ‘전사들’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권씨는 여군뿐만 아니라 군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군대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유지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며 “군 밖에서도 무작정 ‘군대 가면 고생만 한다’, ‘여군은 편하지 않냐’고 생각할 게 아니라, 군대 내에서 남자, 여자 모두가 조화롭게 생활할 방법을 개척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투 스타’ 나오고, 비행대대장·초계함 함장 등 전투병과서 맹활약

강선영 소장

강선영 소장

여군은 올해로 창설 71주년을 맞았다.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인 1948년 5월, 육군병원이 창설되면서 군의관을 보조하기 위한 간호인력을 모집해 31명의 간호장교가 임관한 것이 현 여군의 시초다.

여군은 남군과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됐으나 1990년대에 들어 남군과 동일한 군인으로 인정받으며 성별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990년 1월 기존의 여군 병과가 해체되면서 보병, 기갑 등 남군과 동일한 7개 병과로 통합돼 여군들의 전투병과 진출이 용이해졌다. 1997년에는 공군사관학교에 처음으로 여생도가 입학하면서 여군 장교의 길이 넓어졌다.

31명으로 시작된 여군은 현재 전체 병력의 2.4%, 간부의 7.4%를 차지하며 국방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과거에는 여군의 보직이 간호·행정 병과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나, 2018년 7월 ‘국방 인사관리 훈령’이 개정됨에 따라 여군의 보직 및 배치 제한 부대가 사라졌다. 지금은 해군특수전전단(UDT), 잠수함 승조원 등 일부 병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과에 여군이 진출한 상태다.

해안 경계에 관한 여군 보직제한이 없어진 2019년에는 정희경 육군 대위가 해안경계부대 최초 여성 중대장으로 임명됐고, 공군사관학교 최초 여성 사관생도였던 편보라·장세진·박지연 중령은 공군 여군 최초로 비행대대장에 올랐다. 해군에서는 지난해 12월 홍유진 중령이 여군 최초로 초계함(원주함) 함장에 배치되는 등 전투병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불리한 진급 체계로 ‘유리천장’이란 지적을 받았던 보직 기준도 변화하는 추세다. 2001년 간호병과에서 첫 여성 장군(양승숙 준장)이 배출됐고, 2010년에는 전투병과에서 첫 여성 장군(송명순 준장)이 탄생했다. 2019년엔 강선영(사진)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이 여군 최초로 ‘투 스타’를 달았다. 강 소장은 취임 당시 “내가 최초로 이룬 것들이 여군의 기준이자 한계가 됐다”며 “군 조직의 배려가 많아진 만큼 우리 여군들도 희생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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