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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매출 급감, 월세도 못 내…이럴 때 써먹는 임차인 권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47)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그중 자영업자가 입은 타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건물을 임차해 영업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월세는 계속 내야 하니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2020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2020년 9월 29일부터 2021년 3월 28일까지 총 6개월 동안 연체한 차임은 임대인의 계약갱신 거절, 권리금 회수 방해, 차임 연체를 이유로 한 계약 해지 등에 있어서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일평균 1000여개 매장이 폐업했다. 사진은 15일 서울 명동에서 폐점한 한 상점 모습. 2021.9.15. [뉴스1]

코로나19 이후 일평균 1000여개 매장이 폐업했다. 사진은 15일 서울 명동에서 폐점한 한 상점 모습. 2021.9.15. [뉴스1]

다음으로는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른 제1급 감염병을 명시함으로써 코로나로 인해 영업 손실을 본 임차인이 차임 감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위와 같은 법 개정과 별도로, 지난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임차인의 사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임차인이 영업을 중단하고 내용증명을 통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 임대인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법원에서는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했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긴다고 하면서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비록 하급심 판결이지만 계약 당시 예견할 수 없었고, 당사자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도 없는 사유(코로나 사태로 인한 매출 급감)가 계약 해지 사유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결이 있었다고 해서 다른 유사한 사안에서도 임차인의 계약 해지권이 무조건 인정된다고는 볼 수 없고,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일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무래도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계약 내용에 구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 조건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 창업을 하는 경우처럼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임대차 계약을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사진 pxhere]

처음 창업을 하는 경우처럼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임대차 계약을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사진 pxhere]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임대차 계약 체결 시 계약 기간을 너무 장기간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이다. 영업하기 위해 건물을 임차할 때 영업을 위한 시설 공사를 하거나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주는 등 초기에 큰돈을 투자할수록 안정적인 영업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차 기간을 장기로 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차인에게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약갱신 요구권을 인정하고 있고, 3기 이상의 차임 연체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임대인이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 기간을 굳이 장기로 정하지 않더라도 임차인은 최대 10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임차인으로서는 처음부터 4년 혹은 5년과 같은 기간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과연 유리한지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처음 창업을 하는 등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임대차 계약에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당초 기대와 달리 사업이 잘 안 되더라도 월세는 계속 내야 하므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생각하여 임대차 기간을 정하거나 아니면 임차인이 중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특약을 넣어두는 것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영업과 관련된 인허가, 투자 유치 등 외부적인 사유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만일 처음 계획했던 조건이 성취되지 않으면 영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면 이런 요인 역시 계약 해지 사유로 명시해 두는 것이 좋다.

물론 임대차 계약에서는 임차인이 을의 입장이 될 수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임차인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계약을 체결한다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종합하면 이미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어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데 매출 급감으로 인해 기존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차임 감액 청구 또는 계약 해지 등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아직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라면 표준계약서 등 기존 관행에만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조건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계약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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