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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민 10명 중 7명, 생활화학용품 불안하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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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재욱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소장·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위원장

최재욱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소장·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위원장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2년째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감염병과의 싸움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지난해 1월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은 특별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라는 현대 문명의 특성과 맞물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졌고, 질병과 경제적 피해가 극대화됐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감염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의 오남용 위험성에 관한 피해와 그로 인한 대중의 두려움이다.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DDT와 같은 화학 살충제의 오용이 인류와 자연계에 끼치는 위험을 경고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적 환경 운동이 대두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다른 모습이다.

과학적 정보와 인식 부족이 큰 원인
신뢰 통한 ‘위험 소통’에 나서야

한국사회도 화학물질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와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작업장에서 발암물질 노출로 인한 백혈병 발생 사건 등을 겪었다. 최근에는 특정 산업 현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화학용품에 대한 위험성 때문에 소비자의 우려가 더 커지는 양상이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조사에서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생활화학용품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에는 생활화학용품의 위험성에 관한 과학적 정보 제공과 인식 부족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구체적으로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화학제품의 위험성과 건강에 관한 정보 제공원의 종류를 살펴보자. 포털사이트 및 기사 검색이 60%, 제품설명서 42%, 블로그와 카페 후기 36%, 주변 지인 30%, 유튜브 27%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제조사의 공식 홈페이지는 9%, 정부 홈페이지는 5%로 매우 낮았다. 말하자면 많은 소비자가 제조사나 정부 홈페이지 등 공식적 정보가 아니라 포털·블로그·지인 등 비공식적 정보 제공원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제조사 및 정부 관련 기관에 대한 현저히 낮은 소비자 신뢰도(12%, 39%)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정부기관을 신뢰한다는 답변은 52%, 소비자·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50%로 나타났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위험 소통(Risk communication)’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위험성 인식은 정부나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과 결이 상당히 다르다. 수용자 즉,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어떻게 위험 소통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불신은 커지고 두려움이 발생한다. 과학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 공포증(Chemophobia)’을 동성애 공포증이나 외국인 공포증(Xenophobia)과 같은 ‘비임상적 편견’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공포증이며 ‘학습된 혐오’라는 설명이다.

문제 해결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과학적 분석과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 과학자와 정부에 대한 낮은 대중의 신뢰도를 어떻게 정상화할 수 있는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과학기자협회는 공동으로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관련 보도 준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언론 보도부터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케모포비아와 같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과학적인 위험 소통 체계를 관리하기 위해 과학계와 언론계가 함께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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