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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금·전세보증금 어디서 구하라고…‘대출 난민’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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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당국의 대출 죄기에 주택 중도금·잔금 대출이 마르자, 실수요자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인천 연수구 아파트 단지. [뉴시스]

당국의 대출 죄기에 주택 중도금·잔금 대출이 마르자, 실수요자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인천 연수구 아파트 단지. [뉴시스]

“한 달 뒤에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갑자기 대출이 안 된다네요. 중도금 갚느라 신용대출까지 끌어썼는데 당장 2억원을 어디서 구할지 막막합니다.”

오는 11월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입주를 앞둔 직장인 이모(46)씨는 요즘 대출금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9월 초만 해도 금융사 한 곳에서 2.95% 금리에 잔금 대출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잔금 대출이 어렵다고 통보를 해왔다. 이 씨는 “어렵게 마련한 내 집을 전세로 주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이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자 찾아온 ‘대출 한파’에 내 집 마련을 준비하던 실수요자 불안감이 커진다. 최근 분양시장에선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30일 마이홈포털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인천검단 AA13-1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모집공고에서 “금융권의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인해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함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

이곳에 청약한 김모(45)씨는 걱정부터 앞선다. 84㎡ 분양가가 약 4억2000만원인데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금과 중도금 합쳐 최소 현금 2억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해서다. 김씨는 “대출이 막혔는데 현금 2억을 마련하려면 지금 사는 전세보증금을 빼고 월세로 이사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9억원 이하 단지는 건설사가 금융사를 통해 집단대출을 알선해주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의 압박이 커지면서 금융사들이 집단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 글이 잇따른다. 한 청원인은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 데 집단대출을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라고 지난달 27일 올렸다.

실수요자 마음은 타들어 가지만 금융사의 대출 죄기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미 지난달 29일부터 집단대출 관련 잔금대출취급 시 담보가치 산정기준을 ‘KB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꿨다. 하나은행도 이르면 10월부터 국민은행과 동일한 정책 도입을 검토 중이다. 〈표 참조〉

예를 들어 2억원의 전세대출이 있는 세입자가 계약갱신하며 전셋값이 4억원에서 6억원이 됐다고 하자. 그동안은 4억8000만원(전체 임차보증금의 80%)에서 기존 대출금(2억원)을 제외한 2억8000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보증금 증액분인 2억원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30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10월 중 추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겠다”며 “가계부채 증가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대출이 꼭 필요한 수요자들이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추가대책으로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줄이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전면적인 대출 규제에 실수요자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금융기관 등과 협의를 통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실수요자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모주 청약 손질, 카뱅은 마통 중단=한편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도 검토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대형 공모주 청약 때마다 돈이 몰리고 신용 대출이 급증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또 카카오뱅크는 10월 1일부터 올해 말까지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모두 중단한다고 이날 밝혔다. 마통 대출 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축소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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