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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압박에…‘미국판 다이소’도 35년 만에 1달러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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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2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의 한 달러트리 매장 밖에 ‘모든 물건이 1달러’라는 글이 붙어 있다. 이 회사는 각종 인상 요인에 그간 고수했던 1달러 정책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의 한 달러트리 매장 밖에 ‘모든 물건이 1달러’라는 글이 붙어 있다. 이 회사는 각종 인상 요인에 그간 고수했던 1달러 정책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공포가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은 인플레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발 경기둔화 우려 속에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 대표 저가제품 매장 달러트리가 신성불가침처럼 여겼던 ‘상품 가격 1달러’ 정책을 35년 만에 포기하면서 인플레가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트리가 1달러에 팔던 제품을 1.25달러 또는 1.5달러 등으로 올려 판매하기로 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86년 문을 연 달러트리는 식품과 각종 공산품을 1달러에 판매하며 서민들이 많이 찾았다. 이에 힘입어 미국과 캐나다에 1만5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커졌다.

2019년부터 매장 수백곳에 따로 만든 ‘달러트리 플러스’코너에서 일부 제품을 3~5달러에 팔기는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판매가격 인상 압력에도 WSJ이 “달러트리에 1달러 정책은 신성불가침”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기본 1달러 정책을 고수했다.

달러트리 주가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달러트리 주가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투자자 압력에도 버티던 달러트리도 인플레에는 무릎을 꿇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제품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운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에 미국 인력난으로 임금도 오르면서 한계가 왔다. 마이클 위틴스키 달러트리 최고경영자(CEO)는 “공급망 차질과 운임·임금 상승 등에 따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달러트리의 선택은 최근의 공급 병목 현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도 일제히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공급망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당황스럽다”며 “내년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물가 상승이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지난 몇 달간 경험한 공급 병목 현상이 일부에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며 “화물 선적·하역에 문제가 있는 가운데 임금 인상 등 2차 혼란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세계 각국이 (이에 대해) 조처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자제품과 식품, 연료 등 필수품 부족이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가가 들썩이면 중앙은행의 선택지는 금리 인상 등 긴축으로 쏠리게 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도 “물가 급등이 예상치를 넘어선다면 정책 수단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11월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을 개시해 내년 중반에 끝낸 뒤, 곧바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물가 상승세 속 더 큰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다. 최근 전력난을 겪는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다. 영국계 경제 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최근 몇 달간 미국과 유럽, 중국의 회복세가 둔화했지만, 상품 가격은 중고차부터 레스토랑 음식까지 모두 오르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중앙은행의 골칫거리”라고 최근 지적했다.

공급 병목 현상 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의 대응만으로는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통화 정책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고 트럭 운전사를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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