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다이소'도 못견딘 인플레…35년만에 1달러 포기선언

중앙일보

입력 2021.09.30 17:17

업데이트 2021.09.30 17:21

지난 6월 미국 메릴렌드주의 한 달러트리 매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미국 메릴렌드주의 한 달러트리 매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공포가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은 인플레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발 경기둔화 우려 속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플레 우려가 실감 나는 건 ‘미국판 다이소’인 달러트리가 신성불가침처럼 여겼던 ‘상품 가격 1달러’ 정책을 35년 만에 포기하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트리가 1달러에 팔던 제품을 1.25달러 또는 1.5달러 등으로 올려 판매하기로 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86년 문을 연 달러트리는 식품과 각종 공산품을 1달러에 판매하며 서민들이 많이 찾았다. '1달러 판매' 정책에 힘입어 미국과 캐나다에 1만50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커졌다.

2019년부터 매장 수백곳에 ‘달러트리 플러스’라는 코너를 따로 만들어 일부 품목을 3~5달러에 팔기는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판매가 인상 압력에도 상품 대부분의 가격은 1달러 정책을 고수했다. WSJ이 “달러트리에 1달러 정책은 신성불가침이었다”고 보도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 인상으로 달러트리의 '기본 가격=1달러'란 공식이 깨지게 됐다.

달러트리 주가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달러트리 주가 변화.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투자자의 압력도 버티던 달러트리도 인플레에는 무릎을 꿇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제품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운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 인력난으로 임금도 오르면서 한계가 온 것이다. 마이클 위틴스키 달러트리 최고경영자(CEO)는 “공급망 차질과 운임·임금 상승 등에 따라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달러트리의 1달러 정책 포기는 소비자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지만 투자자는 반색했다. 올해 들어 약 20% 떨어지던 달러트리 주가는 이날 뉴욕 증시에서 16.49% 급등했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29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상승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왼쪽부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앤드류 베일리 영국 영란은행 총재.[파이낸셜타임스 캡처]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29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상승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왼쪽부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앤드류 베일리 영국 영란은행 총재.[파이낸셜타임스 캡처]

달러트리의 선택은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도 '공급망 병목 현상'에 따른 인플레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공급망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당황스럽다”며 “내년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물가 상승이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지난 몇 달간 경험한 공급 병목 현상이 일부에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며 “화물 선적·하역에 문제가 있는 가운데 임금 인상 등 2차 혼란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세계 각국이 (이에 대해) 조처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자제품과 식품, 연료 등 필수품 부족이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가가 들썩이면 중앙은행의 선택지는 금리 인상 등 긴축으로 쏠리게 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에도 “물가 급등이 예상치를 넘어선다면 정책수단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11월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을 개시해 내년 중반에 끝낸 뒤, 곧바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물가 상승세 속 더 큰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재현 가능성이다. 최근 전력난을 겪는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다. 영국계 경제 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최근 몇 달간 미국과 유럽, 중국의 회복세가 둔화했지만, 상품 가격은 중고차부터 레스토랑 음식까지 모두 오르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중앙은행의 골칫거리”라고 지적했다.

공급 병목 현상 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의 대응만으로는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고 트럭 운전사를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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