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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분의 '007 작별' 크레이그 “영웅·악당 구분 쉽지 않네”

중앙일보

입력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007 노 타임 투 다이' 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007 노 타임 투 다이' 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6대 제임스 본드’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53)의 마지막 007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감독 캐리 후쿠나가)가 29일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해 하루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1위에 올랐다. 본고장 영국에서 30일, 북미에선 다음달 8일 개봉에 앞서서다.

'6대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007 은퇴작 #'노 타임 투 다이' 한국서 세계 최초 개봉

‘007 카지노 로얄’(2006)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007 스카이폴’(2012) ‘007 스펙터’(2015)를 잇는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007 영화다. 원래 지난해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로 밀리면서 15년만의 은퇴가 됐다.

최근 공개된 다큐멘터리 ‘빙 제임스 본드(Being James Bond)’에서 스태프들에게 고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비쳤던 크레이그는 29일 한국 취재진 질문에 답변한 영상에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며 “007로서의 기간을 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전편) '007 스펙터' 끝나고 007로서 할만큼 다했다 생각했다”면서 007 출연작 중 가장 애착 가는 영화로 첫 출연한 ‘007 카지노 로얄’을 꼽았다. “그때만 해도 순수하고 순박했죠. 그 처음 스릴이 마지막 작품까지 이어졌습니다.”

“요즘은 영웅과 악당 구분이 쉽지 않네” 

007 시리즈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사상 최장수 시리즈다. 1962년 개봉한 ‘007 살인번호’ 숀 코너리가 1대 제임스 본드 맡은 뒤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가 바통을 이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후속작은 새로운 얼굴의 주연배우와 함께 돌아온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007 시리즈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사상 최장수 시리즈다. 1962년 개봉한 ‘007 살인번호’ 숀 코너리가 1대 제임스 본드 맡은 뒤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가 바통을 이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후속작은 새로운 얼굴의 주연배우와 함께 돌아온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작별의 아쉬움 탓일까. 상영시간이 5편 중 가장 긴 2시간 43분에 달한다. ‘007 스펙터’에서 연인 매들린 스완(레아 세이두)과 애마 ‘애스터 마틴’에 유유히 몸을 실은 MI6 최정예 요원 제임스 본드는 은퇴 후 사상 최악의 적과 맞닥뜨린다. 영국 고전 ‘제인 에어’를 재해석한 동명 영화로 주목받은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공동 각본을 겸해 ‘007 카지노 로얄’로 시작된 크레이그표 본드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익숙한 007 주제곡 선율과 함께 등장한 눈 덮인 호숫가 외딴집. 일본 전통극 ‘노’ 가면을 쓴 괴한에게 엄마를 잃은 소녀가 권총을 드는 첫 장면부터 불길하다. 연인과 가족이란 새로운 고뇌 속에 놓인 본드는 애국이란 명목하에 무수한 적들을 죽여온 살인면허 번호 ‘007’의 업보에 시달린다. 새로운 악당 사핀(라미 말렉)과 DNA 정보를 활용한 사상 최악의 생화학 무기에도 가족과 핏줄이란 주제가 흐른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새 악당 '사틴'은 '보헤미안 랩소디'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라미 말렉이 연기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새 악당 '사틴'은 '보헤미안 랩소디'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라미 말렉이 연기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MI6와 미국 CIA는 더는 공조하지 않고 러시아와 일본의 영유권 분쟁지역에선 새로운 문제가 터진다. 강대국의 뒤얽힌 이해관계 속에 본드의 비극은 과연 악당 조직만의 탓일까. “요즘은 영웅과 악당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극 중 본드의 오랜 친구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 그 자체다. 어느 때보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본드의 이번 여정은, 전쟁 중 민간인 학살 문제와 국제 무기 개발 경쟁 속에 대두한 윤리적 쟁점을 첨예하게 건드린다.

6대 본드 마지막 액션…발목부상‧물리치료 투혼 

이번 영화로 007 시리즈에서 은퇴하는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는 촬영 1년 전부터 마지막 본드 액션을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이번 영화로 007 시리즈에서 은퇴하는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는 촬영 1년 전부터 마지막 본드 액션을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국‧노르웨이‧이탈리아‧자메이카 4개국 로케이션도 화려하다. 특히 영화 초반 이탈리아 남부 암석 도시 마테라의 추격전이 장관이다. 로마 유적의 잔해와 구릉지의 가파른 계단 사이로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제임스 본드표 액션을 우아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펼쳤다. 매들린과 본드가 애스터 마틴 DB5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에선 고풍스런 클래식카에서 튀어나온 연막 장치, 지뢰 매설기, 기관총이 볼거리다. 특수 제작한 스턴트 맞춤형 차량을 동원했다.
매들린의 호숫가 집은 노르웨이, 본드의 은신처 장면은 실제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살았던 자메이카에서 촬영했다. 초반 촬영이 진행된 자메이카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크레이그는 극중 대규모 군중이 동원된 쿠바 파티 장면의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강도 높은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단다.
이번 영화에서 본드는 잦은 폭발 사고 속에 ‘방탄’을 넘어 ‘방폭인간’이 된 듯한 강철 생존력을 과시한다. 후반 클라이맥스 장면에선 3건의 폭발이 카메라에 달려들 듯 일어나는데 첫 번째 폭발은 카메라에서 230m, 그 다음은 130m, 마지막은 불과 30m 거리에서 40㎏의 고강도 폭약을 터뜨렸단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군인들이 훈련했던 영국 솔즈베리 평원의 국방부 부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차세대 007‧악역 아쉽지만, 레아 세이두 강렬 

'007 스펙터'에서 본드와 유유히 떠났던 연인 매들린 역의 레아 세이두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한층 다층적인 고민을 껴안은 캐릭터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007 스펙터'에서 본드와 유유히 떠났던 연인 매들린 역의 레아 세이두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한층 다층적인 고민을 껴안은 캐릭터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그러나 ‘차세대 007’에 관한 단서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에 비해 주변 캐릭터들의 존재감은 아쉽다. 흑인 배우 라샤나 린치가 본드 은퇴 후 ‘007’ 살인면허 번호를 물려받은 현역 요원 노미 역을 맡아 노련한 활약을 펼치지만, 본드의 후계자라기보단 조력자에 그친다. 미모의 금발 ‘본드걸’ 대신 쿠바에서 본드 못지않은 액션을 선보이는 또 다른 인물 팔로마 역 쿠바 배우 아나 디 아르마스도 탄탄한 내공이 아까울 만큼 출연 분량이 짧다.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로 사랑받은 라미 말렉이 연기 변신한 악당 ‘사핀’도 화상을 입은 듯한 피부 분장 등 공들인 것에 비해 본드에게 무게감이 밀린다. 말렉은 “사핀은 그 자신조차도 악당인지,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인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누구의 편도 아닌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캐릭터의 모호함을 설명했다.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크레이그의 역대 007 영화 중 세 번째로 높은 신선도 83%(30일 집계 기준)에 그쳤다. 영화매체 ‘로저에버트닷컴’은 “기존 크레이그 영화보다 나은 구석이 없는 007”이라 혹평했다.
다만, 매들린 역 프랑스 배우 레아 세이두의 감정 연기는 눈길을 끈다. 주연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배우는 본드의 연인을 넘어 반복되는 운명의 비극 속에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는 캐릭터를 깊이 있게 구축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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