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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첫 여성 총리 나왔다…'정치 초짜' 투입한 튀니지 속셈

중앙일보

입력

아랍 첫 여성 총리인 나즐라 부덴 롬단(63) 튀니지 총리가 29일 튀니지 대통령실에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과 만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랍 첫 여성 총리인 나즐라 부덴 롬단(63) 튀니지 총리가 29일 튀니지 대통령실에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과 만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수적인 아랍 국가에서 첫 여성 총리가 배출됐다.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63)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나즐라 부덴 롬단(63) 총리를 임명했다고 CNN 등이 이날 보도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히셈 메시시(47) 전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를 정지시키는 등 행정부를 장악한 지 2개월 만이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롬단 총리와 면담을 갖고 “튀니지 역사상 여성이 정부를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여성 총리 배출은) 튀니지와 튀니지 여성들에게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부패에 맞서 보건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만큼 수일 내로 새로운 내각을 제안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 경험 전무한 지질학자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왼쪽)과 롬단 총리가 29일 대통령실에서 만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왼쪽)과 롬단 총리가 29일 대통령실에서 만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롬단 총리는 지구과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튀니지 국립 공과대학 교수다. 프랑스 명문 파리국립고등광업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튀니지의 지진 위험도를 주로 연구했다. 2011년부터 교육부에서 세계은행(WB) 관련 프로젝트와 고등교육개혁 업무를 맡았지만, 정치 경험은 전무하다. 최악 위기를 맞닥뜨린 사이에드 대통령이 반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역시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헌법학자 출신이다.

롬단 총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새 정부는 당장 지난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의 의회 정지 이후 보류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재정 지원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튀니지는 수년간 이어진 경기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국내에 만연한 부패 문제와 민심 통합, 코로나19 방역도 그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의회 동의 없는 ‘불법’ 임명 지적도  

사이에드 대통령과 롬단 총리. EPA=연합뉴스

사이에드 대통령과 롬단 총리. EPA=연합뉴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튀니지에서 대통령은 외교ㆍ국방권을, 총리는 행정 등 그 외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롬단 총리가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지난주 대통령령을 발표하면서 총리의 역할과 권한이 이전 정부보다 축소됐기 때문이다. ‘비상 상황에 대통령은 내각 장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헌법의 상당 부분이 이를 통해 정지됐다.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기한은 없다.

롬단 총리의 임명 자체가 불법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번 인사가 일방적으로 발표된 대통령령에 근거했고, 의회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의회의 제1당인 엔나흐다는 성명을 통해 의장의 의회 업무 재개를 촉구했다. 엔나흐다 소속인 사미르 딜루 전 인권장관은 페이스북에서 “새 정부는 국가가 겪고 있는 엄청난 재정위기와 팬데믹의 상황에서 취약한 위생환경으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사이에드 대통령은 TV 등에서 헌법 전문가로 인지도를 쌓다가 2019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직선적인 말투로 ‘로보캅’이란 별명을 얻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경제침체 등으로 곳곳에서 반정부시위가 발생하자 지난 7월 총리 해임, 의회 중지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대통령이 총리와의 권력 다툼에 국민의 불만을 이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사회에선 2011년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의 발원지로 민주주의를 정립해나가던 튀니지가 다시 독재 국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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