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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코로나치료제"라더니…환자 속여 실험한 브라질 병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브라질의 한 대형 병원에서 코로나19 노인 환자를 상대로 검증되지 않은 약물 실험을 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와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병원과 정부 간 모종의 협약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의료계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 중단을 권고한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AP=연합뉴스]

의료계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 중단을 권고한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상원 조사위원회(CPI)는 브라질 최대 대형병원 체인 ‘프리벤트 시니어’를 둘러싼 ‘인간 기니피그 실험’ 의혹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이번 스캔들은 지난달 이 병원 의료진 12명이 익명으로 관련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1000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에는 병원 측이 코로나19 환자를 속여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투여했고, 사망자 수를 축소 발표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날 열린 청문회에는 의료진 측 변호인 브루나 모라토가 출석해 제기된 의혹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와 추가 혐의를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이 병원은 2020년 3월부터 4월 사이 코로나19 노인 환자 636명을 대상으로 치료제 효과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는 말리라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 클로로퀸(HCQ), 동물용 구충제인 이버멕틴 등이 포함된 ‘코로나 키트’라 불리는 약품이 사용됐다. 모두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고, 부작용 우려가 있어 의학계에서 코로나19 치료제 사용 중단을 권고한 약이다.

지난 3월 브라질 상파울루 스포츠 센터에 마련된 간이 코로나19 치료 응급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브라질 상파울루 스포츠 센터에 마련된 간이 코로나19 치료 응급실. [AP=연합뉴스]

그러나 병원 측은 의사들에게 “좋은 코로나19 치료제가 있다”는 말로 환자와 가족을 유인해 약을 처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모라토는 “환자들은 자신이 ‘인간 기니피그’가 됐다는 사실을 모른 체 약물을 투여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실험으로 인한 피해자도 있었다는 것이다. 의료진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실험이 진행된 기간에 숨진 코로나19 환자 9명 가운데 6명은 HCQ등을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병원은 사망자 수를 0명으로 발표해 사망 원인을 은폐했다는 게 의료진의 주장이다.

병원이 비용 절감을 위해 환자 치료를 거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모라토에 따르면 병원은 입원 치료보다 약물 치료 수익률이 높다며 ‘코로나 키트’ 사용을 압박했다. 또 “10~14일 이상 집중 치료를 받고도 차도가 없으면 산소 치료를 중단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모라토는 “병원은 ‘죽음도 병상을 비워주는 한 방법’이라는 말로 중증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이 실험에 보건부 등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HCQ의 효과를 입증해 정부 정책에 힘을 보태려는 병원과 정부 간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7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효과가 좋다고 선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7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효과가 좋다고 선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무시하며 느슨한 방역 조처를 해 왔다. 특히 과학적 근거 없이 HCQ를 ‘기적의 치료법’이라고 소개하며 사용을 부추겨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난 22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HCQ 등을 통한 “조기 치료”를 지지한다는 주장을 고집해 구설수에 올랐다.

병원 측은 의료진이 제기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병원 소유주인 페드로 바티스타 대표는 지난주 청문회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했으며, 오히려 HCQ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들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또 코로나19 사망자 수 은폐, 의사들 해고 협박 등도 사실무근이라며 명예훼손으로 의료진을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상원은 이번 사건에 정부가 개입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검찰에 대통령을 코로나19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하라고 요구해 놓은 상태다. 상파울루 대학 공중보건 전문가인 다니엘 두라도는 “이번 사건은 전례 없는 의료 스캔들”이라며 “브라질 정부와 의료 기관이 합작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린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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