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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리코더로 ‘오징어 게임' 결투음악 만든 정재일”337박수가 기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음악을 만든 정재일 감독은 직접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를 이용해 만든 테마로 '오징어 게임'의 유년기 느낌을 더했다. 그는 "작곡가 '23'과 박민주 작곡가를 섭외헤 극 전체의 음악이 지루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사진 정재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음악을 만든 정재일 감독은 직접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를 이용해 만든 테마로 '오징어 게임'의 유년기 느낌을 더했다. 그는 "작곡가 '23'과 박민주 작곡가를 섭외헤 극 전체의 음악이 지루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사진 정재일

“일단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징어게임' 정재일 음악감독

지난 17일 공개 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음악 작업을 맡은 정재일(39) 음악감독은 30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오징어 게임’ 작업 후기를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분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징어게임’은 9개 에피소드, 총 485분 분량이다. 지난 17일 발매한 OST 앨범에 담긴 곡도 20곡이나 된다. 정 감독은 “두 시간 영화에 쏟을 만한 에너지를 9개 에피소드로 늘리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았다”면서도 “너무 반응이 커서 어안이 벙벙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코리안 시골 웨스턴" 3‧3‧7 리코더도 직접 불었다

28일 대전 유성구 남선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이 오징어게임 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1

28일 대전 유성구 남선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이 오징어게임 놀이를 하고 있다. 뉴스1

‘오징어게임’은 ‘우리 동네에서는 그 놀이를 오징어라고 불렀다’라고 조용히 내뱉는 이정재의 목소리와 함께 강렬한 북소리, 리코더 소리로 시작한다. ‘오징어 게임’의 첫 인상을 강렬하게 새긴 이 곡(Way back then)에 쓰인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는 정 감독이 직접 연주했다.

정 감독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연습하던 리코더나 소고, 캐스터네츠 같은 악기로 결투의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3‧3‧7 박수를 기초로, 유치한 ‘코리안 시골 웨스턴(마카로니 웨스턴을 농담처럼 변주한 것)’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리코더가 살짝 ‘삑사리’가 나는 건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고, 실패한 연주를 그냥 그대로 쓴 것”이라며 ”황동혁 감독님이 ‘이게 뭐냐?’고 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들려드렸는데, 좋아해주셔서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휭홍휭홍' 분홍옷 가면 무서운 소리는 '광화문연가' 감독 작품 

작곡가 '23'의 'Pink Soldiers'는 '오징어게임'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테마다. 사진 넷플릭스

작곡가 '23'의 'Pink Soldiers'는 '오징어게임'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테마다. 사진 넷플릭스

묘한 소리가 반복되면서, 분홍색 옷을 입고 가면을 쓴 진행요원들의 무서움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테마 'Pink Soldiers'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의 음악감독을 지낸 '23'의 작품이다. 극 중에서 가장 자주 쓰인 테마곡이기도 하다.

주로 혼자 작업을 해오던 정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23 작곡가와 박민주 작곡가의 곡을 함께 배치했다. 정 감독은 "길고 유기적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극을 채우려면 저와 다른 결의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부탁했다"며 "전형적인 스릴러의 느낌이 아닌, 기묘하고 불편한 느낌을 더해 '오징어 게임'의 유니크함을 더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박민주 감독은 달고나 게임 막바지의 ‘웃픈’ 느낌을 멜로디언으로 표현해냈고, 타악기를 기반으로 한 ‘Murder without violence’로 극 후반부의 긴장감을 채웠다.

경쾌한 재즈가 '살육과 죽음의 테마'로

극중 '살육의 테마'로 쓰이는 'Fly me to the moon'은 황동혁감독이 처음부터 생각해둔 선곡이고, 정재일 감독도 "다른 참신한 곡들을 고려해봐도 결국 되돌아오더라"고 설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극중 '살육의 테마'로 쓰이는 'Fly me to the moon'은 황동혁감독이 처음부터 생각해둔 선곡이고, 정재일 감독도 "다른 참신한 곡들을 고려해봐도 결국 되돌아오더라"고 설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정 감독이 처음 ‘오징어 게임’ 작업을 제안받은 건 2018년 겨울이다. 정 감독은 ”몇 개월 뒤 아주 두꺼운 스크립트를 전달받았고, 별도의 컨셉이나 디렉션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스크립트와 편집본을 보는 순간 ‘이 안에 다 나와있구나’ 싶었다"며 "살육과 죽음의 테마로 두 번 쓰이는" 재즈곡 'Fly me to the moon', 참가자들의 숙소에서 기상 안내송 '하이든 트럼펫 콘체르토', 게임을 끝내고 지친 사람들 뒤로 깔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등은 황동혁 감독이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곡을 썼다고 설명했다. 80년대생들이 익숙한 '장학퀴즈'의 오프닝 곡, 경양식집에서 흔히 들리던 곡들이다.

정 감독은 "더 색다르고 특이한 대안을 찾아봤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며 "죽음의 게임장으로 향하는 길, 살아 나온 사람들의 무력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누구나 들으면 '아 이 곡!' 할 만큼 쉬운 곡들을 썼다"고 밝혔다.

'옥자' '기생충' 이어 세번째 글로벌 히트

영화 기생충 포스터

영화 기생충 포스터

정재일 감독은 1999년 프로젝트 그룹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한 22년차 작곡가다. 영화, 대중음악, 공연음악 등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데다 내놓는 음악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혹은 ‘장르를 창조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새로운 면을 선보여, 윤상·봉준호 등 뮤지션과 감독들이 극찬하는 ‘천재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옥자’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은 세 번째 글로벌 작품이다.

'감독과 같은 궤도에 선 느낌이 드는 순간 질주한다'는 스타일의 ‘천재’ 작곡가는, 새로운 음악을 쏟아내는 아웃풋에 비해 ‘인풋’은 소소하다. 그는 ”특별히 영감을 채우려 노력하진 않고, 그냥 매일매일 삶을 살다보면 그게 뭔가 되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쉴 때는 “고양이 릴스(짧은 동영상)를 보는” 정도가 그가 언급한 전부다. “음악은 모두의 친구이고 에스페란토(만국 공용어)”라는 그는 “다양한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가고 싶다”며 "가장 사랑하는 악기는 '목소리'인데, 훌륭한 목소리를 만난다면 백의종군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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