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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려면 무조건, 씻을 물 얻는데도 성관계" WHO 충격 성학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WHO 직원의 성착취가 확인된 보고서에 대해 "끔찍한 일"이라며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WHO 직원의 성착취가 확인된 보고서에 대해 "끔찍한 일"이라며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에볼라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구호활동을 벌였던 세계보건기구(WHO) 직원들이 지난 몇년간 수십명의 현지 여성과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착취한 사실을 확인한 보고서가 발간됐다. 현재 가해 사실이 확인된 WHO 직원 4명은 해고됐다.

에볼라 퇴치 WHO 직원들 콩고서 만행

WHO 직원, DR콩고서 13세 소녀까지 강간

28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가디언 등에 따르면, WHO독립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35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2018~2020년 DR콩고에서 현지 여성에게 성학대를 저지른 구호요원 83명 중 21명이 WHO 직원이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연령은 13~43세로, 대다수가 구직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받았다. 성관계를 거부하면 고용을 해지하겠다는 협박도 이어졌다.

DR콩고 동부 베니지역의 WHO 베이스캠프에서 기록보관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 나디라는 “일을 하려면 무조건 성관계를 해야 하고,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씻을 물과 대야를 달라고 했을 때도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13세 소녀 졸리안느는 WHO의 운전기사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자신을 차에 태운 뒤 호텔로 데려가 강간했다고 진술했다.

구호단체 직원들이 현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사실은 지난해 구호활동 보도전문기구 뉴 휴머니테리언과 톰슨 로이터재단이 지역 여성 51명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WHO와 유니세프·월드비전·옥스팜·국경없는의사회 등 여러 구호단체 직원이 현지 여성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에 WHO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훨씬 많은 피해자가 드러났다. 피해 여성 쿨리발리는 “가해자들이 피임법을 사용하지 않아 일부 여성은 임신을 했고, 남성들이 낙태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WHO 직원에게 성착취를 당한 피해여성 쉐키나. 연합뉴스

WHO 직원에게 성착취를 당한 피해여성 쉐키나. 연합뉴스

불투명한 현지 직원 모집과정에서 성착취

WHO독립위원회는 “이 같은 성적 착취와 학대가 벌어진 원인은 신입 직원 채용 과정이 불투명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현지 근로자가 필요한데, 채용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DR콩고의 북키부주에 근무하는 WHO 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지 노동자는 경쟁 없이 모집됐다. 이 과정에서 성적 착취와 학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AP통신은 지난 2019년 WHO의 고위 관계자 중 일부가 이러한 성적 학대 사실을 인지했지만, 제지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WHO는 피해 여성들에게 배상금을 주고 친자 관계 확인 및 여성의 권리 주장 등을 위해 유전자 검사 지원을 권고했다.

피해여성 아니파는 성적 피해에 대한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 WHO 직원인 부바카르 디알로(Boubacar Diallo)의 사진을 조사원에게 보여줬다. 연합뉴스

피해여성 아니파는 성적 피해에 대한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 WHO 직원인 부바카르 디알로(Boubacar Diallo)의 사진을 조사원에게 보여줬다. 연합뉴스

WHO 사무총장 "끔찍한 일에 대해 사과" 

구호기구나 원조단체 직원들이 현지에서 성폭행을 저지르는 일은 수년 전부터 국제적 문제로 꼽혔다. 2011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옥스팜 직원이 임시 숙소에 현지 여성을 불러들여 성매매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고, 그 전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코트디부아르·아이티·남수단 등에서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로고.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 WHO의 로고. 연합뉴스

이번 WHO의 보고서에 대해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현지인을 보살피고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현지인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들이 면죄부를 받지 않고 책임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DR콩고의 여성단체인 콩고여성미디어연합의 줄리 론도는 “에볼라 유행 당시 WHO 직원의 아이를 낳은 12명의 소녀가 있다”며 “WHO는 강간으로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 강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소녀들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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