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단이 물지게 지고 오르던 골목, 항구 목포로 떠나는 시간여행

중앙일보

입력 2021.09.30 05:01

업데이트 2021.09.30 13:48

전남 목포시 목원동 유달산 자락에 얹힌 달동네는 낡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집단 거주지의 흔적이 여태 남아있다. 이 낡은 골목 구석구석을 문화관광 탐방로 '옥단이길'이 헤집는다.

전남 목포시 목원동 유달산 자락에 얹힌 달동네는 낡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집단 거주지의 흔적이 여태 남아있다. 이 낡은 골목 구석구석을 문화관광 탐방로 '옥단이길'이 헤집는다.

전남 목포시가 문학 도시를 선언했다. 다음 달 국내 기초단체 최초로 문학 박람회를 개최한다. 자원은 풍부하다. 예부터 목포는 예향이었다. 예술 도시 목포의 바탕에 문학이 있었다. 근현대 문학사를 수놓은 숱한 거장이 목포에서 태어났거나 목포에서 성장했다. 그 문학 전통을 문화관광 콘텐트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게 김종식 목포시장의 포부다. 이미 목포는 문학을 다양한 방식의 관광 콘텐트로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목포에는 ‘옥단이’가 있다.

옥단이를 아시나요?

옥단이길 캐릭터. 물지게 진 옥단이를 형상화해 안내판 위에 설치했다. 옥단이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 목포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극작가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로 세상에 알려졌다.

옥단이길 캐릭터. 물지게 진 옥단이를 형상화해 안내판 위에 설치했다. 옥단이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 목포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극작가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로 세상에 알려졌다.

옥단이는 193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목포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가족도 없고 집도 없어 동네 허드렛일 도우며 살았다고 한다. 덜떨어진 구석이 있어 놀림감이 될 수 있었으나 성격이 좋아 옥단이가 물지게 지고 들어오면 집마다 반겼다고 한다. 이 실존 인물을 문학 캐릭터로 승화시킨 주인공이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이다.

‘옥단이는 날품팔이꾼이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허드렛일도 해주고 수돗물을 길어주고 애경사 때는 빠짐없이 드나들었다. 시간이 늦으면 골방이건 마루건 아무 데서나 새우잠을 자곤 했다. 옥단이는 성격이 낙천적인 데다가 몸집은 유달리 풍만했다. 곱지도 않은 얼굴에는 언제나 지분을 발랐고 붉은 댕기를 물려 쪽을 지고 값싼 옥비녀를 꽂아 멋을 부렸다. 지능의 발달이 약간 지진한 데다가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하는 친근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른이건 아이건 그를 부를 때 “옥단어!”라고 하대했다. “옥단어!”라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부르던 밉상스럽지 않은 그 성품은 만인의 친구이자 말벗이기도 했다.’-차범석, 『옥단어!』, 푸른사상, 2003, 322쪽.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흉상. 목포문학관에 차범석, 박화성, 김우진, 김현의 상설 전시관이 있다.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흉상. 목포문학관에 차범석, 박화성, 김우진, 김현의 상설 전시관이 있다.

차범석이 희곡 ‘옥단어!’를 쓴 건 팔순을 앞둔 2003년이었다. 배우 생활 40년을 기념할 작품을 써달라는 강부자의 부탁을 받고, 어릴 적 북교동 집에 물지게 지고 들락거렸던 옥단이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제목이 ‘옥단아!’가 아니라 ‘옥단어!’인 것은, 목포 특유의 정서와 관계가 있다. 목포에선 이름을 부를 때 뒤에 붙이는 조사 ‘아’를 ‘어’와 가깝게 발음한다. 실제 들어보니 ‘어’ 보다는 ‘아’와 ‘으’ 사이의 모음과 가까웠다. ‘옥단어!’는 목포를 배경으로 삼은 차범석의 후기 대표작으로, 요즘에도 꾸준히 무대에 오른다.

옥단이길에 있는 물지게 체험 공간. 사진 왼쪽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지게를 질 수 있다. 가운데 옥단이 조형물에 눈길이 간다. 옥단이는 실제로 몸집이 있었고 얼굴에 분을 발랐고 붉은 댕기를 물리고 다녔다고 한다.

옥단이길에 있는 물지게 체험 공간. 사진 왼쪽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지게를 질 수 있다. 가운데 옥단이 조형물에 눈길이 간다. 옥단이는 실제로 몸집이 있었고 얼굴에 분을 발랐고 붉은 댕기를 물리고 다녔다고 한다.

차범석의 희곡 작품을 인용한 이유는, 목포에 옥단이 이름을 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유달산 기슭 목포 원도심이라 불리는 목원동 일대 문화관광 탐방로 이름이 ‘옥단이길’이다. 목포역에서 시작해 유달산 중턱까지 골목 구석구석을 헤집는 4.6㎞ 길이의 탐방로다. 안내판에 새겼거나 그려 넣은 물지게 진 여성 캐릭터가 옥단이다. 이 길 하나에서 문학 도시 목포의 클래스가 드러난다. 옥단이길은 문학 캐릭터가 탐방로에 등장한 매우 드문 사례다.

옥단이길

목포 북교동 예술인 골목 지도. 예술인 골목에 사는 화가 정태관씨 작품이다. 골목에 설치돼 있다. 북교동은 목원동의 옛 이름이다. 옥단이길이 이 골목도 지난다.

목포 북교동 예술인 골목 지도. 예술인 골목에 사는 화가 정태관씨 작품이다. 골목에 설치돼 있다. 북교동은 목원동의 옛 이름이다. 옥단이길이 이 골목도 지난다.

유달산은 낮은 산이다. 해발 228m에 불과하다. 하나 무안반도 끄트머리에 선 유달산은 높이보다 우뚝하고 우람해 보인다. 기암괴석이 유난히 많은데, 유달산 자락이 하나의 거대한 암반지대다. 돌산은 물을 품지 못하는 법. 일제 강점기 유달산 자락에 얹혀살던 조선인은 늘 식수난에 허덕였다. 하여 유달산 자락에선 마을 공동 수도에서 물 길어주는 지게꾼이 있었다. 옥단이는 바로 그 척박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목포 사람은 지금의 목원동 일대를 북교동이라 부른다. 옛날 ‘쌍교’라 불렸던 다리의 북쪽 마을이 북교동이었고, 남쪽 마을이 남교동이었다. 북교동은 목원동으로 편입돼 사라졌으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이를테면 전남 최초의 초등학교 북교초등학교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차범석,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 문학평론가 김현, 가수 남진, 최초의 근대극작가 김우진 등이 북교초등학교 출신이다. 김우진 생가터에 들어선 북교동 성당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옥단이길 골목. 좁은 골목 담벼락에 정겨운 벽화가 그려져 있다. 유달산에 가까워질수록 골목이 가팔라진다.

옥단이길 골목. 좁은 골목 담벼락에 정겨운 벽화가 그려져 있다. 유달산에 가까워질수록 골목이 가팔라진다.

북교동, 지금의 목원동이 중요한 이유는 이 일대가 조선인 집단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은 목포역에서 유달산 사이 기슭에 모여 살았다. “목포역에서 유달산까지 골목만 11개”라는 김춘정 골목길 해설사의 설명처럼, 좁고 가파른 골목을 따라 판잣집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목포역 왼쪽 평지에 조성된 일본인 마을은 반듯하고 화려한 신도시였다.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알려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옛 일본 영사관)도,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의 투기 의혹이 일었던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도 일본인 거리에 있다. 옥단이길은 일본인 거리의 관광 콘텐트에 대항하는 조선인 마을의 대표 콘텐트다.

옥단이길에 있는 극작가 김우진 조형물. 김우진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옥단이길은 김우진 생가를 비롯해, 차범석, 김현, 박화성 생가를 두루 들른다.

옥단이길에 있는 극작가 김우진 조형물. 김우진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옥단이길은 김우진 생가를 비롯해, 차범석, 김현, 박화성 생가를 두루 들른다.

옥단이길은 스스로 문학 콘텐트라 할 수 있다. 차범석 생가를 비롯해,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과의 동반자살사건으로 더 유명한 극작가 김우진(1897∼1926), 197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평론가 김현(1942∼1990), 한국 여성문학의 선구자 박화성(1903∼1988)의 생가를 옥단이길이 들른다. 목포시는 이들 네 명을 대표 문인으로 꼽는다. 목포문학관에 이들의 상설 전시관이 있다. 하나 목포의 문학 자원은 훨씬 풍부하다. 김진섭, 최인훈, 최하림, 천승세, 김지하, 황현산 등 기라성 같은 대가도 목포에서 태어났거나 목포에서 활동했다. 박화성의 세 아들과 며느리 모두 문인이었는데, 둘째 아들이 소설가 천승세(1939∼2020)다.

옥단어 놀자야  

북교동 예술인 골목에 그려진 벽화. 왼쪽부터 화가 남농 허건,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평론가 김현, 극작가 차범석. 정태관 화가의 작품이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에 그려진 벽화. 왼쪽부터 화가 남농 허건,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평론가 김현, 극작가 차범석. 정태관 화가의 작품이다.

목포 문학박람회는 10월 7∼10일 용해동 목포문학관과 목원동 일대에서 열린다.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목포시가 예산 15억원을 들여 준비한 문화관광 콘텐트다. 축제가 열리는 나흘간 모두 109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메인 행사장은 목포문학관 일대다. 목포문학관과 주제존·전시존 등 야외 전시관의 전체 면적이 3만8329㎥다. 축구장 약 5배 면적이다. 이 넓은 전시관에 동시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6388명으로 제한된다. 야외 전시관은 모두 8개 방역구역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홍미희 목포시 학예연구사는 “현재 목포에 적용된 거리두기 3단계 방역지침에 따라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목포문학관 일대에선 정통 문학 행사가 주로 열린다. 시민 시낭송대회(8일 오후 2시), 은희경·공선옥·정지아 등 호남 출신 여성문학인이 출연하는 여성문학인대회(9일 오후 2시), 목포 지역 극단 ‘예창작다함’이 공연하는 연극 ‘옥단어 놀자야’(7일 오후 4시 등 세 차례 공연)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오디오북으로 문학작품을 감상하며 숲길을 걷는 ‘문학트레킹’, 노래가 된 문학작품을 공연하는 ‘문학에 스며든 음악’ , 문학 작품을 소재로 만든 마임 공연 같은 이색 프로그램도 있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에 있는 '화가의 집'. 민가를 개조한 이 집을 정태관 화가가 문화공간이자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옛날 김대중 대통령이 이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었다고 한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에 있는 '화가의 집'. 민가를 개조한 이 집을 정태관 화가가 문화공간이자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옛날 김대중 대통령이 이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었다고 한다.

‘골목길 문학관’으로 명명된 목원동 일대에선 문학인 거장 그리기, 문학작품 포스터 그리기, 문학인 옷 입기 같은 참여형 문학 행사가 주로 열린다. 골목에 옥단어 조형물 포토존이 설치되고, 축제 기간 내내 골목길 공연이 진행된다. 목포 주민이 공연하는 연극 ‘이영녀’(10일 오후 3시), 안치환&정호승 콘서트(10일 오후 5시)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목포 사투리에 ‘귄있다’는 표현이 있다. ‘예쁘진 않지만, 정이 간다’는 뜻 정도 되겠다. 옥단이가 귄있고, 옥단이가 물지게 지고 오르내렸던 목원동 골목길이 귄있다. 그 아팠던 시절을 잊지 않는 목포가 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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