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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재명 TV토론 무죄' 권순일, 5년전 익산시장엔 유죄

중앙일보

입력

권순일 전 대법관 [뉴스1]

권순일 전 대법관 [뉴스1]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법원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에서 “선거 TV토론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무죄 의견을 냈던 권순일 전 대법관(62·사법연수원 14기)이 2015년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전북 익산시장 사건에선 주심으로 당선무효형을 확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박경철 전북 익산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 TV토론에서 상대 후보에게 허위 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돼 권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확정받았다.

2015년 전북 익산시장 땐 “근거 박약한 의혹 제기로 유권자 선택 오도”

이날 중앙일보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2015년 10월 박경철 전북 익산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500만원을 확정했다. 박 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차례 방송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자가 ‘특정 건설사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쓰레기 소각장 사업자를 변경했다’라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대법원 3부는 이에 대해 “민주주의 정치제도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고, 그것이 선거 과정에서도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근거가 박약한 의혹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될 경우 비록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후보자의 명예가 훼손됨은 물론 임박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하는 중대한 결과가 야기되고 이는 오히려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TV 토론회에서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허위 사실이 유포될 경우 정당한 판단을 해야 할 유권자들의 선택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취지인 셈이다. 이 사건의 주심은 권순일 대법관이었다.

박경철 전 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차례 TV토론에서 상대 후보인 이한수 전 익산시장을 겨냥해 ‘취임하자마자 모종의 거래를 통해 쓰레기소각장 사업자를 내정했던 K건설에서 D건설로 바꿨다. 왜 바꿨는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박 시장은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벌금 500만원이 확정되면서 시장직을 잃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은 이는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에 해당하고 피고인도 그 발언이 허위라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의혹이 진실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허위사실공표죄의 허위의 증명, 허위성의 인식, 공직선거 방송토론에 있어서 허위사실공표죄 적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며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상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시 입장을 밝히며 지지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시 입장을 밝히며 지지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5년 뒤 이재명 “형 강제입원 시킨 적 없다”엔 “표현의 자유, 숨 쉴 공간”  

5년 뒤 2020년 7월 이재명 경기지사의 2018년 지방선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킨 적 없다”고 한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느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 판결은 TV 토론회에서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되더라도 모든 의사소통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하면 선거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선거 결과가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좌우돼 대의민주주의 원리가 훼손될 수 있다는 다수 대법관의 논리를 담았다. 이러한 판단에는 권순일 당시 대법관의 제시한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한다.

권 전 대법관은 전합 심리 과정에서 “이 지사의 TV토론회 발언은 유·무죄를 다툴일이 아니라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국민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의혹에 대해 TV토론 과정에서 부인한 것을 허위사실 공표로 볼 것인지, 본인을 비방하는 상대 후보자에 대한 방어로 볼 것인지는 유권자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선거 TV토론회에서의 발언을 사법부에서 하나하나 문제 삼는다면 선거가 결국 유권자의 선택이 아닌 검사·판사가 뽑는 게 될 것이란 취지의 주장도 했다고 한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이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토론은 질의응답이 반복돼 공표가 아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그 즉시 재질의 또는 추궁할 수 있다. 유권자가 판단하도록 해야지, 검사가 토론회 녹취록을 가지고 기소하는 건 과잉사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당시 2심 재판부가 “강제 입원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거나, 자신이 절차 진행을 막았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며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면서 지사직 및 피선거권 박탈 위기에 내몰렸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2년 분당보건소장 등에게 ‘강제입원 절차를 진행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것으로 드러난 탓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 지사는 피선거권 박탈 위기에서 벗어나 유력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화천대유 관련 법조계 인사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연합뉴스]

화천대유 관련 법조계 인사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연합뉴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9월 퇴임 이후 최근까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에서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고문을 맡아 변호사법 위반 및 사후수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등에 고발된 상태다.

권 전 대법관은 이에 대해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언론에 기사가 나기 전까지 해당 회사(화천대유)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현재도 당시 판결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어떤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문을 맡았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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