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화의 창

미술시장에 ‘안목’은 살아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30 00:46

업데이트 2021.09.3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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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요즘 미술시장이 모처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봄·가을로 두 차례 열던 메이저 경매를 격월로 늘렸는데 매번 높은 낙찰률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매달 이비드(eBid), 프리미엄 경매가 열리고, 위클리 세일도 있어 연중 경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화랑미술제’도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3일부터 닷새간 코엑스에서 한국화랑협회 소속 100여 화랑들이 벌인 이 미술제는 관람객이 예년보다 30%가 많은 4만8000명이 다녀갔고 ‘빨간딱지’의 풍년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운 판매율을 보였다고 한다. 미술 관계자들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가져온 문화적 자극이 이런 미술 붐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한다.

모처럼 미술 붐 일며 경매도 활발
하지만 전통 회화는 침체 이어져
그래도 노련한 안목은 살아 있어
고전 명화의 가치, 변함 없을 것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게 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한가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미술 문화는 생활에 여유있는 사람들의 애호와 지지를 받으며 이를 토대로 창작된 미술 작품들이 만인의 문화적 향유로 돌아가는 법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미술 시장이 턱없이 빈약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들이 보여주는 규모의 4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이는 국민이 생활 속에서 미술을 즐기고 애호하는 문화 활동을 그만큼 안 한다는 얘기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술 시장의 활기가 G7 진입을 코앞에 둔 우리나라가 선진국 사회로 가는 징표라면 반갑기 그지없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정양사’. 종이에 수묵담채, 28x41㎝.

겸재 정선의 ‘금강산 정양사’. 종이에 수묵담채, 28x41㎝.

그런데 최근 미술 시장의 동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호가들의 취향이 너무 유행 사조에 몰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단색조의 추상미술이 꾸준히 상종가를 유지하고 있고, 캐릭터나 카툰 식의 가벼운 도상을 화려한 색채로 변형시킨 경쾌한 그림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에 전통적인 회화의 ‘그림 같은 그림’들은 오히려 깊은 침체에 빠져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화랑미술제야 최신의 경향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라 그렇다 하겠지만 옥션에서 우리 근현대 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사실적인 화풍의 구상회화와 수묵담채가 주조를 이루는 한국화의 대가들의 작품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까지 일어난다.

이는 전통을 사랑하고 거기에 익숙한 나이든 애호가들은 뒤로 물러가고 현대성을 추구하는 젊은 애호가들의 취향이 전통에서 멀어진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 등장한 애호가들의 취향이 자기 눈이 아니라 유행에 휩싸이면서 일어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현재가 내일엔 전통으로 된다. 유행의 열풍이 지나면 냉혹한 객관적 심판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근대 미술사 100년의 역사에는 ‘한국화 10대가’로 좁혀졌다. 그 ‘10대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6대가’로 좁혀졌고, 오늘날엔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을 쌍벽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런 청전과 소정의 그림 값이 젊은 인기 화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건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애호가들은 모름지기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고전에 대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비록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전통 회화의 세계이지만 노련한 안목들은 언제나 길목을 지키고 있어 가히 명화라 할 만한 작품이 나오면 시작가의 몇 배에 낙찰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옥션에서는 청전 이상범의 10폭 일지병풍으로 이루어진 폭 4.5미터의 ‘산수화’ 대작이 시작가 1억원에서 경매를 시작했는데 낙찰가는 4억2000만원이었다. 당대의 안목으로 불리는 분과 굴지의 사립미술관이 끝까지 경쟁하여 경매장을 긴장시키고 낙찰봉이 떨어지면서 장내엔 축하의 박수가 울렸다.

이달에 열린 마이아트 경매에서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정양사’라는 환상적인 진경산수가 시작가 1억 원에 출품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치열한 경쟁 끝에 전화 응찰자가 3억7000만원에 낙찰 받아갔다. 비록 조선 500년 역사에서 최고가는 화가로 화성(畵聖)이라 불리는 분의 작품 값 치고는 낮은 편이지만.

또 얼마 전 케이옥션에는 도상봉의 소품으로 ‘삼청공원’이라는 아주 고상한 풍경화가 출품되어 시작가 3500만원에 경매에 들어갔는데 여럿이 경쟁한 결과 84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일반인들은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마다 않고 경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듯하다. 그 이유는 예술적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만사가 그렇듯이 2등과 3등, 3등과 4등은 한 등급 차이이지만 1등과 2등 차이는 몇 등급 차이인지 모르는 것이다. 영어로 프라이스리스(priceless)라 한다.

결국 이런 작품들이 우리 미술사를 빛내주는 미래의 문화유산이다. 안목 있는 소장가들은 이런 명화를 애장하고 있다가 미술관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하고, 명품 도록에 소개하기도 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의 높이와 넓이를 확대시켜 주며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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