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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국영화 수입 논란에 비친 ‘어리석고 슬픈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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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전 주일 대사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전 주일 대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필자 보기엔 ‘슬프기보다 어리석은 전쟁’이다. 어리석고 슬픈 전쟁에 영광스러운 것이 있는가. 6·25전쟁의 전체 윤곽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냉전이 해체되면서다. 그전에는 각기 이념적인 편향 때문에 명성 높은 지식인들도 명백한 사실조차 가짜뉴스 수준으로 취급하곤 했다. 비록 부정적인 이유 때문일지라도 6·25전쟁은 한국이 역사상 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 의제로 등장한 첫 사건이었다.

그 전쟁의 기원을 따지자면 서양의 근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필자는 2019년 『세계와 한국전쟁』에서 우화를 빌려 ‘자유’와 ‘평등’의 갈등과 이민 역사가 하필 한반도 북위 38도 선에서 대치하게 된 역사로 설명했다. 더 현실적인 설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초강대국의 지정학적 팽창의 결과라는 것이다.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한 세기 넘게 팽창을 추구해 왔지만, 미국은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세력을 확대해왔다. 두 거인은 한반도에서 만난다. 두 초강대국 입장에서 한반도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이것이 다른 쪽의 차지가 된다면 그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충돌한 6·25 비극
전쟁 교훈 스스로 다시 돌아봐야

흔히 이 전쟁의 기원을 김일성의 간청에 스탈린이 마지못해 허락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다. 전쟁의 가장 큰 주역은 역시 스탈린이었다. 김일성이 여러 차례 간청했지만 1949년 말까지 스탈린은 허락하지 않았다. 별 중요하지 않은 한반도를 놓고 미국과 대결할 이유는 없었다. 스탈린이 생각을 바꾼 계기는 중국에서 공산 혁명이 성공하면서다. 스탈린은 중국이 계속 내전 상태에 있기를 바랐고 그런 쪽으로 계속 국민당과 공산당 양측을 적절히 지지 또는 지원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중국공산당이 승리하자 스탈린의 최대 관심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약체 국민당 정부로부터 확보한 소련의 이권이었다. 그리고 통일 중국이 소련의 공산 진영 패권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중국의 새 지도부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결과가 6·25전쟁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자. 김일성은 전쟁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싶어 몸이 달아 있었다. 전쟁을 시작하면 스탈린에게는 전략적 이득이 많았다. 먼저 중국의 통일(대만 평정)은 물 건너간다. 김일성이 성공하면 자신의 영향력은 한반도 전역에 미치고 이 지역에서 일본을 포함한 미국의 전략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한반도에서 지상전을 벌일 준비가 없는 미국이 참전한다면 고전할 것이니 좋은 일이다. 미국이 개입하면 중국도 참전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중국의 통일은 물 건너갈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발전은커녕 국내외적으로 한동안 정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 스탈린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럽에서 자신의 기획을 추진할 수 있다.

이처럼 스탈린이 전 세계를 장기판 삼아 큰 게임을 했다면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각자의 작은 장기판에서 논 셈이다. ‘슈퍼-K’로 불리는 미국의 천재 전략가 헨리 키신저조차 냉전 해체 이후에서야 복잡한 스탈린의 전략 전모를 파악하고 놀라워했다.

지난 세기 수많은 혁명과 전쟁의 교훈은 무엇인가. 큰 권력들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비극 아닌가.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국군 1701명이 전사한 1953년 금성전투를 중국의 관점에서 영웅담으로 그린 중국 영화 ‘1953 금성 대전투’ 수입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결국 등급 분류가 취하됐지만, 돈벌이를 위해 이런 영화를 수입한 업자나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내준 영상물등급위원회나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슬프고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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