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지털 오피니언 나는 저격한다

박가분 “조선시대도 아닌데 웬 곳간 타령인가” 노정태 “자영업자 죽음 앞에서 자화자찬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2021.09.30 00:32

업데이트 2021.09.3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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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노정태 칼럼니스트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홍남기

홍남기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지출이 경제 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합리적 예산 조정 없이 무차별적인 선심성 지출 증가로 이어진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비판적입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며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재정을 더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가분 작가가 그렇습니다. 마침 노정태 작가는 도움이 꼭 필요한 자영업자는 외면하고 전 국민 돈 잔치에 불과한 재난지원금에 장단을 맞춘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저격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 두 칼럼을 한 지면에 소개합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조선시대도 아닌데 웬 곳간 타령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님.

올해 계획 이상의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부터 ‘출구 전략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평가를 듣고 걱정이 됩니다.

지난 8월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올해 본예산 대비 정부 총수입 증가율은 13.7%지만 정부지출 증가율은 8.3%에 그쳤습니다. 아직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해 빚으로 연명하는 소상공인은 지금의 재정 집행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청년들은 주거불안과 일자리 위기가 너무 심각합니다. 그런데 벼랑에 내몰린 이런 사람들의 살림살이보다 균형재정으로의 때 이른 복귀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최근 부총리님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과의 설전을 지켜보며 의아한 게 있었습니다. 지난 6일 고 의원은 “곳간에 왜 곡식을 쌓아 두느냐”며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이 말을 꺼낸 건 설전의 한쪽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 살림의 수장이라면 ‘나라 곳간’이라는 비유가 틀렸다는 것을 우선 지적하셨어야 합니다. 지금이 조선 시대라면 곳간에 곡식과 옷감을 쌓아두고 필요할 때 구휼을 했겠지만 오늘날 정부의 재정 여력은 쌀이나 귀금속 같은 현물자산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 이제 주류경제학계도 인정하는 사항입니다.

무엇보다 자국화폐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이를 소화할 화폐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의 재정 여력은 세입-세출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유력 경제지에서조차 나오는 실정입니다. 몇해 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서는 ‘선진국이라면 정부 부채 한계가 사실상 없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습니다. 특히 포브스엔 정부부채는 민간부문의 입장에서, 특히 청년세대에게 훌륭한 안전자산이라는 주장이 실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고려할 때 부총리님께서 지금 대한민국은 옛 현물경제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8%로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공기업 부채까지 끌어와도 부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7개국 중 우리나라는 두 번째로 낮은 수준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2025년엔 GDP 대비 58.5%로 예상되는데, 2019년 기준 선진국 평균(110%)보다 한참 낮습니다.

부총리님은 이를 근거로 재정 여력이 탄탄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건 안심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해야 할 일 아닐까요? 정부가 서민 가계 구제를 위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정부부채 비율은 높은 가계부채 비율과 동전의 양면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적 가계부채비율은 GDP의 97.9%로 39개국 중 1위였습니다.

정부가 덜 쓰면 민간부문이 더 허리띠를 졸라야 합니다. 실제 자금순환표를 보면 우리나라 정부는 금융부채보다 더 많은 금융자산을 쌓아두고 있는데 (이 점에서는 곳간에 곡식을 쌓아둔다는 고민정 의원 비유가 옳다고 봅니다) 이는 미국·EU·일본 등 다른 선진국과는 대조적입니다. 우리 정부가 재정을 오래 아낀 결과가 만성 수요부족, 일자리 위기, 부족한 사회안전망이라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청년들은 자산 대비 노동력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 그리고 미래의 주거불안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단기적 재정수지에 매몰되기보다 미래를 담보로 빚을 질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놓인 청년들에게 질 좋은 경제와 일자리 그리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략….

정부 재정의 한계는 민주적 정치과정과 국민 합의에 맡기면 안 될까요. 부디 국민의 봉사자로서 부총리께서는 그런 정치과정과는 거리를 두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관료들이 행한 정치 행위의 폐단들을 충분히 겪었습니다. 부총리께서도 그러한 정치 행위를 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박가분 작가

“자영업자 죽음 앞에서 자화자찬이라니”

추석 연휴 와중인 지난 19일 전남 순천의 한 야산 중턱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석 달가량 실종 상태였던 48세 A씨였다. 농자재 배달 사업을 하던 A씨는 빚에 쫓기다 파산 신고를 했고, 지난 6월 가족에게 “떠나고 싶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섰다가 석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사흘 후인 지난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의 올해 성장률을 지난 5월 전망치 3.8%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읽고 그만 평정을 잃었다. 홍 부총리는 “이번 전망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코로나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홍 부총리에게, 자영업과 자영업자란 과연 무엇인가? 자영업자를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기나 한 걸까? 모두 알다시피 홍 부총리는 문 정부의 핵심 관료다. 정권 출범 후 초대 국무조정실장이었고,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부총리로 재직하며 최장수 장관 기록까지 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동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보다 ‘늘공’(원래 공무원)인 홍 부총리가 청와대의 더 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신뢰를 받는 이유는 뭘까. 상식적이지 않은 정책 방향의 지시가 청와대에서 내려오면 ‘어공’ 출신 장관들은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이려 든다. 반면 ‘늘공’들은 현실의 제약을 고려해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거나, 절충점을 찾아 설득하고자 한다. 바로 여기에 홍남기의 롱런 비결이 숨어 있다. 그는 여느 ‘늘공’들과 다르다. 반발하는 시늉만 할뿐 청와대의 지시와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전 국민 재난지원금, 선심성 돈 풀기를 위한 추경 편성 등 청와대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사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 결국 정치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패턴을 반복한다. 오죽하면 ‘홍백기’(홍이 항복했다)나 ‘홍두사미’(용두사미를 빗댄 말) 같은 말이 오가겠는가.

‘늘공’답지 않은 홍남기의 권력 순응주의는 자영업자들에게 재앙의 서곡과도 같았다.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인상할 때 이미 자영업자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2018년에 16.4%, 2019년에 10.9%씩 껑충 뛰어오르면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거나 본인과 가족의 노동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홍 부총리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그 이론적 배경이 되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대해 반론을 펴기는커녕 오히려 소주성이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자영업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자영업자 보호는커녕 비합리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 죽이기에 나선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작 돈이 가야 할 곳은 외면하고 ‘온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푼돈을 뿌리며 매표에 혈안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총리가 할 일은 소득 상위 몇 %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냐는 식의 소모적 논쟁에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소득 배분이 아니라 실제 자영업자가 겪는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홍 부총리는 늘 그렇듯 미약한 반발의 목소리를 내다 이내 ‘홍백기’를 들어 올렸다.

공무원이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과 국익이지, 특정 정권과 권력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묻고 싶다. 최장수 ‘늘공’ 장관 홍 부총리의 충성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그가 지키는 건 국가인가, 아니면 정권인가. 그도 아니면 그저 일신의 영달일 뿐인가.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 그 말을 못하는 장관이 오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오늘도 대한민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말 그대로 생사를 건 투쟁을 해나가고 있다.

노정태 작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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