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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패스 도입에 앞서 살펴볼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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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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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콧바람 쐬러 춘천SF영화제를 갈까 해서 일정을 타진하니 영화제 측이 조심스레 “백신 접종 완료했느냐” 되묻는다. 춘천은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지만 방역 관리 차원에서 일반 관객이 아닌 밀접 취재기자, 게스트 등에게 백신 접종 혹은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화를 검토 중이란다. 10월 6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먼저 이 같은 방침을 밝혀 본받기로 했단다. 아직 ‘조심해야 할 단계’란 걸 새삼 깨닫고 나들이를 접었다.

이들이 시도하는 건 일종의 ‘그린패스’다. 그린패스란 백신 접종자와 코로나19 감염 후 회복자, PCR 검사 음성 확인자에게 발행하는 일종의 면역 증명서다. ‘백신접종 선진국’이라 할 이스라엘에선 공공장소 출입이나 대중 행사 참여 때 필수다. 이탈리아의 경우 내달 15일부터 모든 근로자에 대해 그린패스 소지를 의무화했다. 독일·프랑스·덴마크 등도 일부 적용하고 있다. 엊그제 방역당국이 백신패스 도입을 시사하면서 한국도 공론화 단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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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초창기에 공공장소 내 마스크 착용을 강제한 한국과 달리 해외에선 마스크 쓰기를 두고 일대 격론이 있었다. 그랬던 나라들이 백신패스 시비가 없을 리 없다. 뉴욕에서 먼저 시행한 가운데 미국에선 확산 여부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이미 의무화한 프랑스에선 폭력 시위까지 벌어졌다. 영국도 저울질하다 “가을이나 겨울 필요한 때 도입하겠다”며 물러선 상태다.

한국에서 백신패스가 거론되는 건, 현재보다 완화된 방역 상태 즉 ‘위드 코로나’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경우 별도의 패스 없이 마스크 의무화를 유지하면서 사적 모임의 인원·시간 제한을 조정하는 쪽으로 연착륙 중이다. 사실 해외의 백신패스는 저조한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책 성격이 크다. 반면 한국은 그간 백신이 모자라서 못 맞았지 접종 속도 자체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란 게 전문가들 견해다. 오히려 백신접종 완료에 지나친 가산점을 부여하면 마스크 착용 의무에 소홀해질 수 있다.

“이르면 1년 안에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화이자 등 백신 제약사 CEO들 입에서 이런 말이 잇따른다. 다만 조건이 “백신을 매년 맞는다면”이란다. 백신을 매년 맞은 사람만 일상이 가능하다면 그게 일상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악의 고비는 넘겼단 소리 같다. 이제 우리가 희망하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려가야 할 때다. 마스크 수칙을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지켜온 한국 나름의 노하우에 비추어 백신패스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춘천·부산영화제 등의 자발적 선례도 눈여겨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