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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공포에 미국 국채금리 급등…한국 증시까지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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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그는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미리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공급 병목 현상과 구인난 등이 지속하며 물가상승 위협을 가한다”고 언급했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그는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미리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공급 병목 현상과 구인난 등이 지속하며 물가상승 위협을 가한다”고 언급했다. [AP=연합뉴스]

인플레이션 공포가 주식시장을 뒤흔들었다. 통화정책 긴축 우려에 미국 국채금리가 뛰며 미국 증시가 주저앉자 바다 건너 한국 증시도 함께 휘청했다. 29일 장중 한때 코스피는 3050선, 코스닥 지수는 1000선이 무너졌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22%(37.65포인트) 하락한 3060.27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1.14%)에 이어 이틀 연속 1% 넘게 떨어졌다. 기관(3125억원)과 외국인(6591억원)이 쏟아낸 매물을 개인(9615억원)이 모두 받아냈다.

이날 주가 하락 압력이 커진 건 반도체 업황 불안 때문이다.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내년 1분기 매출액 예상치를 기존 시장 전망치(85억 달러)보다 10% 낮은 수준(74억5000만~78억5000만 달러)으로 제시했다. 그 여파로 삼성전자(-2.88%)와 SK하이닉스(-2.9%) 주가가 내려갔다. 이날 두 종목의 시가총액만 15조6815억원이 증발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1.09%(11.05포인트) 하락한 1001.46에 마감하며 가까스로 1000선을 지켰다. 코스닥 하락은 기관이 주도했다. 기관이 판 1284억원어치를 개인(730억원)과 외국인(778억원)이 샀다.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뉴욕증시가 급락하자 29일 코스피도 전일보다 1%대 급락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종가 3060.27이 표시돼 있다. [뉴스1]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뉴욕증시가 급락하자 29일 코스피도 전일보다 1%대 급락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종가 3060.27이 표시돼 있다. [뉴스1]

이틀 연속 주가 급락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로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한 여파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1.56%까지 치솟았다. 6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투자자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연 1.5%를 훌쩍 넘어서자 시장의 불안감은 커졌다.

시장이 긴장하는 분위기를 보인 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언급하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미리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물가상승률이 Fed의 목표치(2%)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물가상승은 일시적”이라는 기존 입장과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다.

지난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5.4%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간 물가상승률로는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파월 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가 회복하는 가운데 공급 병목 현상과 구인난 등이 지속하며 물가상승 위협을 가한다”며 “고물가가 이어지면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화정책 긴축을 시사하는 파월의 이런 발언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 28일 뉴욕증시는 일제히 내렸다. 나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2.83% 급락했고, 다우지수(-1.63%)와 S&P500 지수(-2.04%)도 하락했다.

코스피 주가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스피 주가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로이터통신은 “국제 유가가 3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파월 의장은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확대를 둘러싼 정치권의 줄다리기도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국 상원이 30일까지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다음 달 1일 ‘셧다운’(일시적 업무중단)에 들어간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인한 금리 인상 이슈가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전력난 등으로 인한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증시에도 주도주가 없는 만큼 당분간은 박스권 장세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2월 미국의 긴축 우려로 코스피가 10% 정도 조정받았다. 현재는 고점 대비 6.3% 정도 하락한 상황이라 조정의 폭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 미국의 물가상승은 경기 호황으로 인한 것이 아닌 공급 병목 현상으로 인한 ‘나쁜’ 인플레이션인 만큼 Fed가 긴축을 강행할 것이란 시장의 우려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원화값은 상승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2.6원 오른(환율은 내린) 달러당 1181.8원에 마감했다. 원화값은 장중 한때 달러당 1188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오후 들어 중국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그룹이 일부 자산 매각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원화값이 반등했다.

지난 27일 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던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28일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0.47% 하락한 배럴당 78.35달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0.21% 하락한 배럴당 75.2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도이체방크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금리 인상 속도를 가속할지, 에너지 수요에 충격을 주며 (금리 인상 압력을) 완화할지는 분명치 않지만 통화정책 대응이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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