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열자마자 BTS 달려갔다…두번 놀란 80세 화가 그림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15:42

업데이트 2021.09.29 15:59

서승원, Simultaneity 21-211 , 2021, Acrylic on canvas 130 x 162 cm. [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Simultaneity 21-211 , 2021, Acrylic on canvas 130 x 162 cm. [사진 PKM갤러리]

'동시성-무한계' 전시에 걸린 서승원 작품. [사진 PKM갤러리]

'동시성-무한계' 전시에 걸린 서승원 작품. [사진 PKM갤러리]

한국 기하 추상의 선구자이자 단색화 거장인 서승원(80) 화백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최소한 두 번 놀란다. 누가 보아도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두드러지는 '젊은 그림'에 한 번 놀라고, 그가 표현한 아름다움의 근원이 가장 한국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란 사실을 알고 또 놀란다. 신선한 반전의 미학이다.

서승원'동시성-무한계'전시
전통미학을 현대적 감성으로
맑은 채색으로 표현한 침묵

서 화백의 작품전 '서승원: 동시성-무한계'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의 초기 작업부터 2021년 신작까지 회화, 드로잉, 판화 등 37점을 공개한다. 작가가 올해 완성한 신작도 참신하지만, 완성된 지 수 십년이 지난 드로잉과 판화 역시 나이 들지 않은 특유의 감각이 눈에 띈다.

전시가 개막하자 방탄소년단 리더인 RM이 일찍 달려가서 보고, 이후 그의 20~30대 팬들이 이 전시를 찾아가 열광하는 데엔 그 세련된 감성이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서 화백은 홍익대 출신으로 33년 동안 모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63년 오리진 그룹, 1967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했다. 일찍부터 한국의 전위 미술을 이끌어오며 지난 50년간 매달린 것은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통 미학과 정신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화폭 안에 네모의 형태로 서로 겹치고, 맑고 포근한 채색으로 담긴 추상은 그 오랜 탐구의 결실이다.

서승원, 판화, Wood-C, 1968 Woodcutㅡ 36 x 28 cm. 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판화, Wood-C, 1968 Woodcutㅡ 36 x 28 cm. 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판화, Simultaneity 69-K 1969 Woodcut, 60 x 44 cm. [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판화, Simultaneity 69-K 1969 Woodcut, 60 x 44 cm. [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Simultaneity 77-56, 1977 , Oil on canvas, 162 x 130.[사진 PKM갤러리]

서승원, Simultaneity 77-56, 1977 , Oil on canvas, 162 x 130.[사진 PKM갤러리]

"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다"는 그는 "기하학적인 문 창살, 창문에 발린 하얀 창호지, 고가구, 백자, 민화(책거리) 등을 매일 보면서 자랐다"고 했다. 화면에 담긴 기하학적 추상은 어디서 그냥 빌려온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어릴 적 보고 자란 것들, 그것에 대한 기억을 기하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창호지와 어머니가 다듬이질하던 하얀 빨래에 대한 그의 기억은 남다르다.

"어린 시절 창호지 색의 맛에 마음이 사로잡혔었다"는 그는 "방에서 달빛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창호지를 통해 은은하게 스며들던 달빛은 지금 그의 작품에서 포근하게 번진다. 거기에 강렬한 원색은 없다. 마치 어머니가 하얗게 삶은 빨래처럼 하얗게, 더 하얗게 걸러진 색들만 남겼다.

한국인의 정신 문화에 뿌리를 둔 현대 회화를 선보이는 서승원 화백의 개인전 전시장. [사진 PKM갤러리]

한국인의 정신 문화에 뿌리를 둔 현대 회화를 선보이는 서승원 화백의 개인전 전시장. [사진 PKM갤러리]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서승원 전시를 개막 초기에 일찍 찾았다.[방탄소년단 트위터 이미지]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서승원 전시를 개막 초기에 일찍 찾았다.[방탄소년단 트위터 이미지]

심은록 미술평론가(리좀-심은록 미술연구소 소장)는 서 화백 작업에는 "색채뿐만 아니라 형태에도 한옥이나 책거리의 공간 구조의 여운이 있다"면서 "그의 화면엔 기억 속 한옥 공간의 색과 형태 등이 걸러져 표현돼 있다"고 말했다. '걸러진' 색과 형태야말로 서 화백 작업의 독특한 테크닉이라는 설명한다.

서 화백은 "언뜻 보았을 때는 나의 작품이 와 닿지 않을 것"이라며 "가만히 들여다봐야 저 속에서 내 이야기가 드러난다. 거기에는 나의 역사, 전통, 생각 등이 전부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평생 자연스럽게 경험해온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억과 성찰이 오묘한 빛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미술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전위적이어야 한다. 늘 새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2000년대 이후 기하 추상에서부터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고 맑은 채색으로 부단한 변주를 선보이며 갈수록 자유로운 감성을 선보이고 있다.

작업실의 서승원 화백. [사진 PKM갤러리]

작업실의 서승원 화백. [사진 PKM갤러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요즘 산사에서 들리는 풍경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깊은 산속의 새소리, 자연의 각가지 소리 등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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