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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병원도 이제 ‘ESG 경영’ 예외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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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구영 서울대 치과병원 원장

구영 서울대 치과병원 원장

지구촌 인류가 직면한 코로나19 팬데믹의 대응본부라 할 수 있는 세계보건기구(WHO)는 재작년 초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 요인으로 기후변화와 인플루엔자 확산을 경고했다. 지금 지구가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으니 그만큼 다급하게 울렸던 경종이었던 셈이다. 이제 전 지구 차원의 대처 없이는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구적 노력은 이미 지난 세기말 유엔 주도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만들어졌고 세부 지침이 구체화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회자하는 것이 ESG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조합인데, 주로 기업 부문에서 ESG 경영이 뜨거운 화두다.

친환경 제품 구입, 소외계층 고용
정보 공개로 투명 경영 실천해야

기업이 재무에만 충실하면 성공하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비(非)재무 부문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는 시대다. 즉, 사업 활동이 친환경이고, 임직원 처우를 제대로 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투명경영을 실천해야 ‘지속가능한 좋은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어야 투자할 만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다.

9조 달러(약 1경 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 회장은 “기업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하는가를 투자 결정에서 핵심 요소로 반영하겠다”고 천명했다. ESG를 중시하는 흐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말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대세다. 금융위원회는 2030년부터 상장기업의 ESG 항목을 의무 공시하도록 했고,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공시 항목에 ESG 관련 사항을 넣도록 할 방침이다.

이렇다 보니 ESG 경영은 기업을 넘어 공공기관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거스를 수 없는 생존전략이 됐다. 질병 퇴치라는 책무를 수행하는 서울대 치과병원 같은 의료기관도 이제 ESG 경영의 예외 지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의료기관들은 ESG 경영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먼저 환경(E) 부문을 보자. 자재 하나라도 저탄소 친환경 제품을 사는 방안, 병원 시스템에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종이 없는 업무 환경을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는 고령층과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안고 가는 사회(S) 부문의 노력이 연동돼야 할 것이다.

사회 부문에서는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고령화와 저출산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므로 의료비 부담과 건강 불평등에 대한 현미경적 대처가 필요하다. 특히 독거노인 등 의료 소외계층 문제는 면밀하게 검토할 대목이다. 사회 일반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바닥을 얕게 만들어야 사회 평균이 개선된다. 맞춤형 일자리를 고안하고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일도 의료기관에 어울리는 사회적 책임이다.

지배구조(G) 부문에서는 투명한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국민이 알고 싶은 정보를 공개하는 의료기관만큼 좋은 조직의 조건은 없을 것이다. 양성평등과 공정한 기회 보장이란 측면에서 누구나 신뢰하는 인사제도를 구축하는 방안도 빠질 수 없다.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감사 자문기구는 조직 건강과 효율성 양면에서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임무가 공공 이익의 추구이므로 ESG 경영 정신과 상통한다.

올 초 공공 의료기관 중에 처음으로 ESG 경영을 선언한 서울대 치과병원은 최근 총괄 추진기구인 ESG 위원회를 출범했다. 병원 부서별로 ESG 과제를 추려내고 공공의료 기관 일반에 적용할 만한 핵심 성과지표(KPI)를 작성하고 있다. 지표가 만들어지면 필요로 하는 의료 기관에 공유해줄 계획이다. 의료기관에도 ESG 경영이 확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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