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중비전포럼

“중국에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지켜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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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중 상호 부정 인식, 원인과 대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며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며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국과 중국이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공자(孔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을 언급했다. 수교 3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30년 계획을 잘 세우자는 취지였다. 한데 현실은 이런 바람과는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중이 수교 이래 지금처럼 마음이 멀어진 때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중 간 ‘역사전쟁’ ‘문화충돌’ 등과 같은 말이 나오며 서로에 대한 인식은 계속 나빠지는 추세다. 한중비전포럼은 지난 27일 11차 모임을 갖고 ‘한중 상호 부정 인식의 현황과 원인, 해소 방안’을 주제로 관계 발전 방안을 살폈다. 포럼은 현장 및 화상을 이용한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더욱 멀어진 한중 간 마음의 거리
젊은 세대일수록 부정적 인식 커
내년 수교 30년, 실리적 접근 필요
정부 개입보다 지식인 대화부터
이동률

이동률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정치외교 분야 발제)=현재 한중 간 상호 인식은 수교 이래 가장 나쁘다. 배경엔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다. 우선 국력 변화다. 중국은 자신의 국력이 G2 수준으로 커졌지만 한국이 여전히 중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본다. 두 번째는 북핵과 대만 문제 등 주요 전략적 이슈에서 상호 입장의 불일치다. 끝으로 체제와 가치의 이질성이다. 촛불혁명으로 더욱 민주화한 한국은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권위주의 체제에 강한 반발감을 느낀다. 이런 구조적 흐름 속에 사드(THAAD) 갈등과 김치 분쟁 등 개별 악재가 터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까. 우선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웃 증후군에서 벗어나 상호 공부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은 체제와 가치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한 수교 당시의 인식을 상기하는 것이다. 경제 협력 및 인적 교류란 두 가지 축에서 실리적으로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 또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은 한국 정부가 단임제의 짧은 시간 안에 큰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생기는 악순환임을 인식해야 한다. 내년에 한국은 대선, 중국은 당 대회 등 지도부 교체 행사가 예정돼 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다. 양국 모두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욱연

이욱연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사회문화 분야 발제)=한중 상호 혐오는 양국의 MZ 세대, 특히 10대로 갈수록 높다. 한중 미래를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다. 왜 젊을수록 반감이 높나. 중국 청년 세대는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국이 부당하게 압박을 받고 있기에 내가 지켜야 한다는 애국주의가 문화 보수주의로 나타난다. 반면 우리 젊은 세대는 코로나19, 문화 기원 논쟁 등을 거치며 반중 정서가 확대됐다. 최근 한국을 남조선, 중국을 중공(中共)이라고 호칭에서 서로 낮춰 부르는 게 유행 중이다.

이런 상호 혐오는 근본적 치유가 어려워 관리를 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양국 언론 및 전문가 그룹의 정확한 사실 지적이 필요하다. 네티즌의 오해를 막아야 한다. 여기서 중국 여론 조성에 키를 쥐고 있는 중국 정부와 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한중의 청년 교류를 단순 ‘인적 교류’ 위주에서 취업과 창업 등 양국 청년의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안 교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국 내 한류 팬만 타깃으로 하는 우리 홍보전략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의 중국 혐오가 무조건적 혐오로 흐르는 걸 방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혐오놀이로 전락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

▶신정승 전 주중 대사(사회)=한중 국민 간 우호는 양국 발전의 건강한 기초다. 한데 수교 30년이 가까운 지금 두 나라 국민 간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중 관계는 이제까지 안보 측면에서의 안정적인 한반도 상황 관리와 경제적인 차원의 협력을 두 축으로 해서 발전해 왔는데 이젠 한계에 봉착한 모양새다. 새로운 한중 관계 30년을 위한 지혜를 모아보자.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중 간 부정적인 인식은 구조와 국면의 성격을 띠고 있어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정태적인 안정에 초점을 맞춰 한중 관계를 관리해왔다.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누르는 것이다. 미봉책에 해당한다. 한중 관계를 동태적인 안정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개입보다 한중 지식인이 함께 대화하고 현인(賢人) 클럽 등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면서 대안을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 같은 집단지성을 통한 관계 관리가 필요하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중국 내 혐한(嫌韓) 정서의 가장 큰 요인은 문화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내 혐한 사건은 대략 60여 건인데 이중 문화 관련이 54%를 차지한다. 중국 네티즌은 주로 한국이 중국의 문화 기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이들은 과거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빼앗아갔다며 ‘문화 도둑’이라 했다. 한데 사드 사태 이후엔 한국이 중국의 ‘문화 속국’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관복을 명나라가 하사했으니 조공체계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는 국제질서와 관련된 문제다. 미·중 대립 국면에서 미국을 선택하지 말고 중국을 선택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한중비전포럼이 27일 서울 HSBC 빌딩에서 ‘한중 상호 부정인식의 원인과 해소 방안’을 주제로 열렸다. 오른쪽 뒤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진호 단국대 교수,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이욱연 서강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이희옥 성대 교수,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조문영 연세대 교수,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우상조 기자

한중비전포럼이 27일 서울 HSBC 빌딩에서 ‘한중 상호 부정인식의 원인과 해소 방안’을 주제로 열렸다. 오른쪽 뒤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진호 단국대 교수,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이욱연 서강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이희옥 성대 교수,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조문영 연세대 교수,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우상조 기자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우리 국내에 청년 세대와 기득권을 어느 정도 갖게 된 586세대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한중 관계의 복합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국 청년 세대는 민주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민주를 ‘K브랜드’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권 교육을 받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도 높은 이 세대에게 홍콩 사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성장한 586세대가 자기의 파이를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586세대의 과거 반미운동이나 친중적인 성향에 적대감을 갖고 있다. 청년 내부의 젠더, 세대 갈등 같은 것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도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융합인재대학 교수=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한한령(限韓令)이 한중 관계의 변곡점이 됐다. 지금도 ‘XX 공정’이라 이름 붙이기를 하는 걸 보면 그 충격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중이 갈등만 하는 건 아니다. 한중 모두 서로의 콘텐트에 대한 수요가 상존한다.

한중 간 문화 콘텐트 수출입은 증가 추세다. 출판과 방송 등 이데올로기 집약형 콘텐트의 대중 수출은 타격을 받았지만, 그 외 음악과 게임, 영화 콘텐트의 대중 수출은 다 늘었다. 우리 청년 세대도 중국의 웹 소설을 많이 읽는다.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의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점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의 청년 세대가 중국을 싫어하는 현상을 꼭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 이런 상황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청년 세대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잘못됐으니 이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발상이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싶다. 기성세대의 의견으로 청년 세대를 바꿔 놓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한중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 양국의 젊은 세대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는 세계시민성을 갖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법이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한국인의 대중 인식은 2013~2015년을 제외하면 2004년 고구려사 분쟁 이후 지속해서 악화했고 사드 사태를 통해 굳어지고 있다. 국력의 차이는 2000년대 들어 확실해졌다. 중요한 건 2010년 이후 한국이 중국에 보인 외교적 행태다. 한국이 중국에 너무 쉬운 나라, 밀면 밀리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인식은 양극화되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대중 부정 인식이 높다. 반면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 국가에선 중국에 대한 긍정 인식이 크다. 세계는 사실상 신냉전에 가깝다. 이런 모든 점은 2021년 한국에 매우 중요한 정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하는 외교정책은 민의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한중 갈등에 기름을 부은 건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굴욕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다. 젊은 민주화 세대는 물론 기성세대 역시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중 갈등은 관리돼야 하고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일이 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한미 동맹관계, 한중 동반자관계라는 확실한 닻을 내린 상태에서 중국에 대해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은 꼭 지켜나가는 것이다. 저자세 대중 외교의 밑바닥엔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선한 의지가 깔려있지만 그럼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 청년 세대는 민주화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중국과 미국, 일본 등에 대한 콤플렉스가 적다. 이는 우리의 강점이다.

◆한중비전포럼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전문가 18명이 결성한 포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신정승 전 주중대사(동서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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