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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장희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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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사극 속 숙종은 여성 문제로 국정을 혼란하게 한 인물로 그려진다. ‘장희빈’(KBS) 등에서 그는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 사이에서 애정이 끓었다 식었다 반복했고, 그때마다 집권 세력도 바뀌었다. 실제로는 고도의 정치술이었다. 숙종은 왕비 문제를 이용해 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숙청하며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다.

출신이 비루했다고 잘못 알려진 희빈 장씨는 조상 대대로 역관을 배출한 중인 출신이다. 그녀의 집안은 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갑부였고 이런 경제력으로 종실 및 남인 세력과 결탁했다. 남인은 이들의 뒤를 봐주고, 이들은 남인에게 정치자금을 대는 관계였던 셈이다. 희빈 장씨가 원자(경종)를 출산하고 왕비로 오르자, 정권 재창출을 눈앞에 둔 남인은 환호했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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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인 권력의 비대화를 우려한 숙종은 왕후가 된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켰고, 남인에 대한 숙청(갑술환국)을 단행했다. 이후 희빈 장씨와 오빠(장희재)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 모두 처형됐다. 남인도 이후엔 여당이 되지 못했다.

숙종의 통치 방식은 각 당파가 왕비나 후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비정상적인 폐단을 만들었다. 일단 후궁의 가치가 올랐다. 조선 초기엔 여종이나 기생 등이 비간택 후궁이 됐는데, 후기엔 중인 가문이나 양반의 서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간택 후궁은 정식 절차를 통해 들어온 ‘간택 후궁’과 달리 국왕과 동침해 후궁이 된 경우다. 노론은 왕비 배출을 독점해 권력을 장악했고 세도정치로 이어졌다. 숙종만 이득을 본 정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