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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훼손” vs “허가났다” 법정 간 김포 왕릉 아파트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23일 경기도 김포시 장릉에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골조 공사를 마친 해당 아파트는 내년 입주를 앞두고 있다. [뉴스1]

23일 경기도 김포시 장릉에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골조 공사를 마친 해당 아파트는 내년 입주를 앞두고 있다. [뉴스1]

지난 24일 오후 1시쯤 경기도 김포시 장릉산. 산 중턱에 오르자 나란히 놓인 봉분(封墳) 2개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가 안장된 김포 장릉(章陵)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0여곳 중 하나다.

하지만 여느 왕릉과는 달리 장릉에서는 탁 트인 경관을 보기 어려웠다. 장릉 맞은편에 20층이 넘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이 시야를 가려서다. 내년 입주를 앞둔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다. 장릉 남단에서 아파트까지는 직선거리로 450m가량 떨어져 있다. 주민 정모(59)씨는 “예전엔 계양산까지 보였는데 이젠 아파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인근에 건립 중인 고층 아파트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아파트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착공했는지를 두고 문화재청과 관할 지자체 등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것”이란 청와대 국민청원과 “죽은 왕보다 산 사람이 먼저 아니냐”는 아파트 입주 예정자 등의 갈등도 첨예하다.

최근 문화재청은 검단신도시에 아파트를 짓고 있는 3개 건설사를 문화재 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짓고 있는 아파트 44개 동 중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속한 19개 동에 공사중지 명령도 내렸다. 건설사들이 김포 장릉 반경 500m인 문화재 보존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아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게 문화재청의 판단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7년 1월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고 고시했다.

반면 건설사들은 아파트 용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이미 2014년 김포시청으로부터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상변경은 공사 등 행위가 문화재의 현재 상태를 변경한다고 판단될 경우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 허가받는 조치다. 관할 지자체인 인천 서구청 관계자도 “택지개발 촉진법 11조에 따라 시행자가 실시계획을 작성하거나 승인받았을 때 주택법 제15조에 따른 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택지개발과 주택사업은 승계되므로 절차에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문화재청은 “택지개발사업 당시 현상변경 허가신청 승인이 주택건설사업으로 승계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택지개발사업과 주택건설사업의 사업시행자가 다르고 사업의 목적 및 사업 기간이 차이 나는 점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건설사들은 법원에 공사 중지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신청을 했으나 보류 결정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11일까지 개선대책을 제출받은 뒤 심의를 거쳐 어떤 조치를 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20층이 넘는 꼭대기 층까지 골조 공사를 마친 상태에서 철거까지 거론되자 수분양자 사이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입주 예정자 임모(44)씨는 “내년 9월 입주할 예정인데 걱정”이라며 “2017년 고시로 강화된 기준을 추후 적용하는 건 과도한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화재와 연관된 개발은 지자체와 건설사 등이 세심하게 접근했어야 했다”며 “관할 지자체가 정확한 유권해석 등을 내려줘야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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