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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86, 리어왕 이해할 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씨는 28일 간담회에서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씨는 28일 간담회에서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리더는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겁니다.”

노배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 이 연극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참이었다.

데뷔 65주년을 맞은 이순재(86)씨는 데뷔 후 처음으로 고대해 왔던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리어왕’”이라고 그간 강조해왔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80이 됐으니, 할아버지 역밖에 없다. 그런데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할 수 있는 연극은 리어왕밖에 없지 않나”며 미소 지었다.

공연시간은 200분. 그는 원 캐스팅으로 첫 무대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리어왕으로 선다. 매일 8시간(오후 2시~10시) 연습하는 강행군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씨는 28일 간담회에서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씨는 28일 간담회에서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왜 ‘리어왕’을 하게 됐나.
“나이가 80이 됐으니 역할에 한계가 있다. 사석에서 ‘리어왕’이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같은 역할이 재미있지 않을까 이야기했다가 추진하게 됐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학로에서 많이 올려졌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2시간 내외 분량으로 했다. 그래서 이번엔 원전 그대로 3시간 20분을 해보자고 했다. 관객들이 ‘아, 이런 연극도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실 수 있게 만들겠다.”
80 넘은 나이에 원 캐스팅으로 3시간 넘게 무대에 선다.
“사실은 만용이다.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구사다. 비유나 문학적 수식이 많아서 배우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안 된다.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여야 해서 자기 전에 대사를 한 대목씩 연습해본다. 싱글 캐스트라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해서 집사람 보고 보약 준비하라고 했다.(웃음)”
데뷔 65년만에 셰익스피어 작품 첫 주연이다.
“연기를 60여년 해봤지만, 셰익스피어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햄릿’도 그렇다. 최불암씨는 했는데, 난 못 해봤다. 1960년대 실험극장에서 ‘맥베스’를 조연으로 한 적이 있다. 시늉만 했는데 이 나이쯤 됐으니까 이 역할도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하는 능력이나 연령 조건이 맞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리어왕’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절대 권력자가 노후에 안락을 위해서 영토를 분할해줬다가 결국 딸들에게 버림받고 쫓겨나는 내용이다. 리어왕이 폭풍우를 맞으며 ‘아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들이여. 이 모진 폭풍을 어떻게 견뎌왔는가. 내가 그들을 너무 몰랐구나’라고 말하는데, 중요한 대사다. 국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림하기만 하는 통치자의 모순과 실정을 자탄하는 모습이다.”

한편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연출가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부회장)는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썼을 때는 영국에도 전염병이 만연된 상황이어서, 유난히 전염병에 대한 대사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도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폭넓고 입체적으로 펼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고너릴(첫째 딸)은 소유진·지주연, 리건(둘째 딸)은 오정연·서송희, 코딜리아(셋째 딸)은 이연희가 맡았다. 공연은 10월 30일~11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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