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0’ 위해 만든 기관 13곳도 친여 낙하산

중앙일보

입력 2021.09.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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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세워진 공기업 자회사가 낙하산 인사의 창구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자회사를 설립한 23개 공기업의 임원을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이들 공기업은 34개의 자회사를 신설해 총 51개의 임원직(상근)을 신설했다. 이 가운데 모회사에서 내려온 인사가 33명, 친정권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15명(13개 회사)이었다. 공모를 통해 채용된 외부 인사는 단 3명이었다.

‘모회사 낙하산’은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만들어 퇴직자의 재취업 창구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기 식구 밥그릇 챙기기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이나 권력 실세의 측근, 또는 그 언저리에서 맴돌던 인사의 보상 차원에서 이뤄지는 ‘캠코더 낙하산’이다. 해당 업종의 전문성·경험과는 거리가 먼 인사도 많다. 친정권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선임되면서 기관 내부 갈등을 조장하고, 조직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 알박기 지적 많자, 자회사에 ‘스텔스 낙하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회사인 엘에이치주거복지정보㈜의 이재영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변호사였던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을 지냈다.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인 항공보안파트너스㈜ 신용욱 대표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 경호실 경호처 차장 출신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자회사 알이비파트너스㈜의 박영기 대표는 문경작물보호협동조합 이사장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을 지냈다.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노항래 대표는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국장과 옛 열린우리당 원내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이사 외의 임원직에도 친정권 인사가 포진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 항공보안파트너스㈜의 조상기 상임이사는 한국노총 공공연맹 사무처장을 지냈고, KAC공항서비스㈜의 김종익 상임이사는 진보 성향의 역사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노항래 대표의 연봉이 1억7000만원에 달하는 등 이들 중 상당수는 1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대표에게는 비서와 운전기사·차량·사택 등 다른 혜택까지 제공된다.

공기업 자회사의 임원으로 선임된 주요 친여 정치권 인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기업 자회사의 임원으로 선임된 주요 친여 정치권 인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을 넘어야 하는 ‘공시족’(공무원·공공기관 시험 준비생)과의 공정성·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공약 실행을 위해 공공기관이 신설한 자회사가 정부·여당·모회사 인사의 스펙 쌓기용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커지고 있다.

추경호 의원은 “이들 자회사가 낙하산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창구이자 전관예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야당·언론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게 공기업의 자회사나 산하 기관의 숨은 요직으로 임명되는 그림자 낙하산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주요 공기업은 채용 내용 등을 공시하고 있으나, 자회사는 관련 법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보니 관련 정보 누락이 심하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친여 인사가 한국예탁결제원의 자회사 대표로 임명되고, 문 대통령의 팬카페 리더가 한국철도공사 자회사의 비상임이사로 선임되는 등 그간 비전문가 낙하산의 폐해가 누적된 배경으로 꼽힌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자회사의 주요 인사, 핵심 경영 정보 등은 외부에서 볼 수 있게 공시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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