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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매일 8시간 연습…'리어왕' 이순재 "리더는 군림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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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이순재의 리어왕’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은 삶의 비극과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뉴스1]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이순재의 리어왕’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은 삶의 비극과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뉴스1]

"리더는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겁니다.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죠."

노배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 연극 '리어왕'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참이었다.
데뷔 65주년을 맞은 이순재(86)씨에게 '리어왕'은 특별한 작품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고대해 왔던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그는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리어왕'"이라고 강조해왔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나이가 80이 됐으니, 할아버지 역밖에 없다. 그런데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할 수 있는 연극은 리어왕밖에 없지 않나"고 미소지었다.
공연시간은 200분. 3시간이 넘는다. 그는 원캐스팅으로 첫 무대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리어왕으로 선다. 매일 8시간(오후2시~10시) 연습하는 강행군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셰익스피어의 고전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 [자료 파크컴퍼니]

셰익스피어의 고전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 [자료 파크컴퍼니]

-왜 '리어왕'을 하게 됐나?
=나이가 80이 됐으니 역할에 한계가 있다. 사석에서 '리어왕'이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같은 역할이 재미있지 않을까 이야기했다가 추진하게 됐다. 또 다른 동기는 아쉬움이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학로에서 많이 올려졌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풀버전으로 하지 못하고 2시간 내외 분량으로 했다. 그래서 이번엔 원전 그대로 3시간 20분을 해보자고 했다. 미숙하더라도 의상이나 분장도 원형을 제대로 살려서 해보기로 했다. 관객들이 '아, 이런 연극도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실 수 있게 만들겠다.

-80이 넘은 나이에 원캐스트로 3시간 넘게 무대를 선다.
=사실은 만용이다. 역할이 욕심이 나서 해보고 싶은건데…제 입장에서는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구사다. 비유나 문학적 수식이 많아서 배우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안 된다. 연기의 기본은 사실 말이다.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있어야 해서 자기 전에 대사를 한 대목씩 연습해본다. 나이에 비해 역동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건 반복된 연습을 통해 익혀갈 수밖에 없다. 건강은 아직 괜찮지만 나이 먹은 사람은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다. 싱글 캐스트라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해서 집사람 보고 보약 준비하라고 했다.(웃음) 판을 벌이면 쟁이는 신이 난다. 잘 관리해서 제대로 완주해보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 [자료 파크컴퍼니]

셰익스피어의 고전 연극 '리어왕'에 출연하는 이순재 [자료 파크컴퍼니]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데뷔 65년만에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첫 주연이다.
=고전의 역할을 맡을 기회가 흔한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연기를 60여년 해봤지만, 셰익스피어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햄릿'도 그렇다. 최불암씨는 했는데, 난 못 해봤다. 1960년대 실험극장에서 ‘맥베스’를 한 적이 있다, 전부 더블캐스트였는데, 맥베스는 이낙훈·김순철, 덩컨왕은 김성원·최불암. 맬컴이 나와 이정길 등이었다. (맬컴이) 주연은 아니지 않나. 그때만 해도 일천해서 셰익스피어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시늉만 했는데 이 나이쯤 됐으니까 이 역할도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하는 능력이나 연령 조건이 맞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리어왕'이 현재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절대 권력자가 노후에 안락을 위해서 영토를 분할해줌으로써 결국 딸들에게 버림받고 쫓겨나는 내용이다. 최상에서 최악으로 떨어지는 것에 비극성이 있다. 리어왕이 폭풍우를 맞으며 '아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들이여. 이 모진 폭풍을 어떻게 견뎌왔는가. 내가 그들을 너무 몰랐구나'라고 말하는데, 중요한 대사다. 국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림하기만 하는 통치자의 모순과 실정을 자탄하는 모습이다. 모든 것을 잃고 나니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리더는 군림하는 게 아니라 밑바닥을 이해하고 어울리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가 마디마디에 있다.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이순재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함께 참석한 연출가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부회장)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리어왕'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정점으로 50%는 '맥베스', 50%는 '리어왕'을 꼽는다"라며 "'맥베스'는 2500행으로 콤팩트한 구성을 갖고 있다면, '리어왕'은 3500행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길지만, 군더더기가 없이 잘 짜인 구성을 갖고 있다. 버나드 쇼 등 유명 극작가들도 '이보다 더 위대한 비극을 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고너릴(첫째 딸)은 소유진·지주연, 리건(둘째 딸)은 오정연·서송희, 셋째 딸(코딜리아)은 이연희가 맡았다. 특히 이번 작품에선 코딜리아가 광대 역을 겸하는 색다른 방식을 취했다.
이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썼을 때는 영국에도 전염병이 만연된 상황이었다. '맥베스'와 '리어왕'은 그가 격리된 상황에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래서 이 작품에는 유난히 전염병에 대한 대사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도 우리 시대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모든 것을 가졌던 늙은 왕이 오만함 때문에 눈이 가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다가 두 딸에게 버림받고 미치광이 노인으로 치닫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폭넓고 입체적으로 펼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공연은 10월 30일~11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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