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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도발로 부를 텐가' 김여정의 질문, 한·미 답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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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국과 미국에 “우리의 자위권 행사를 또 ‘도발’로 부를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이 한ㆍ미 간에 묘하게 차이가 났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6시40분쯤 북한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쪽으로 단거리 미사일 한 발을 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잇따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긍정적 신호를 발신한 직후 무력도발에 나선 것이다.

‘도발’ 표현에 유독 발끈한 김여정

이는 김여정이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이중기준 및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내건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여정은 24일 담화에서 한국을 향해 “남조선이 때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이중자대를 가지고 억지를 부리며 사사건건 걸고들면서 트집을 잡던 과거를 멀리하고 앞으로의 언동에서 매사 숙고하며 적대적이지만 않다면”이라고 했다.

25일 담화에서도 “우리를 향해 함부로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며 북남간 설전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특히 김여정은 ‘도발’이란 표현 자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앞서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실험을 참관한 뒤 “우리의 미사일 전력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자 즉각 비난했다. 김여정은 “대통령이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라는 말을 망탕 따라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시한다”며 ‘북남관계의 완전 파괴’까지 거론했다.

결국 이날 미사일 발사는 이런 김여정의 ‘경고’에도 한ㆍ미가 이를 도발로 규정할 것인지 지켜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번개같이 NSC 소집 “유감” 표명만

이와 관련, 정부는 이날 오전 8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NSC 상임위원들은 한반도의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뤄진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NSC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최근 북한의 담화와 미사일 발사 상황을 종합적이며 면밀히 분석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역시 NSC와 똑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도발이란 표현 자체를 쓰지 않았고, 유감을 표명한 게 전부였다. 문 대통령은 분석과 대응 마련을 지시했을 뿐 미사일 발사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 자체도 하지 않았다.

美 “규탄” “北 불법 무기” 온도차

이날 NSC 회의가 미사일 발사 불과 1시간 20분 만에 신속히 소집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지난 15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오후 12시 34분, 오후 12시 39분)을 쐈을 때 NSC 소집(오후 5시 30분)까지 다섯 시간 정도 걸린 것과 비교된다. 미국이 강한 비판에 나설 경우 ‘이중조건 철폐’를 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을 의식, 미국과 빠르게 입장 조율을 할 필요가 있어 서둘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이번 발사가 미국 인사들이나 영토, 우리 동맹들에 즉각적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북한의 불법적 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안정을 깨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고 밝혔다.

곧이어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condemn). 이는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며, 북한의 이웃 국가와 국제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은 이날 오전 6시40분쯤 북한 자강로 무평리 일대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동해상을 향해 쐈다. 뉴스1

8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북한은 이날 오전 6시40분쯤 북한 자강로 무평리 일대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동해상을 향해 쐈다. 뉴스1

콕 짚어 도발이라고 명명하진 않았지만 “규탄한다”는 표현이나 북한 무기 프로그램의 불법성, 제재 위반 등을 강조한 것 자체가 이를 도발로 규정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美ㆍ日은 탄도미사일에 무게?  

특히 국무부가 이번 발사를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한 점이 눈길을 끈다. 안보리 결의가 금지하고 있는 것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을 탄도미사일로 보고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이를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는 발사체”로 표현했다고 일본 NHK방송이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포착된 제원, 비행거리, 속도 등이 기존과 달라 분석이 필요하다”며 ‘단거리 미사일’로만 표현했다. “포착한 제원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북한은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9월 15일 새벽 중부산악지대로 기동해 800km 계선의 표적지역을 타격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 훈련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은 "철도기동미사일연대는 9월 15일 새벽 중부산악지대로 기동해 800km 계선의 표적지역을 타격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 훈련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처럼 한ㆍ미 간에 결이 다른 입장이 나온 데 대해 묻자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한ㆍ미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발사체의 기술적 사안에 대해서는 한ㆍ미 유관당국이 분석 중”이라고만 답했다.

이와 관련,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후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유선 협의를 갖고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 논의했다. 노 본부장은 오는 30일 인도네시아를 방문, 김 대표와 대면 협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北, 뉴욕선 “합동훈련 영구 중단” 요구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뉴욕에서는 이중기준 및 적대시정책 철폐의 실질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27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역대 미 행정부들은 대조선 적대시 의도가 없다고 구두와 서면으로 의사 표명을 거듭해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를 겨냥한 합동 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남조선에는 3만명의 미군이 수많은 군사기지에 주둔하며 언제든지 우리 공화국에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항시적인 전쟁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총회 기조연설에 나선 김 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 A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총회 기조연설에 나선 김 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 AP=연합뉴스

연합 훈련, 첨단무기 도입부터 주한미군까지 한ㆍ미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 뻔한 요구들을 전면에 내세운 데는 반응 떠보기를 넘어 ‘동맹 갈라치기’의 의도도 엿보인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국면을 자력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국가 부담으로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영양식품을 무상으로 정상 공급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한ㆍ미가 제안한 인도적 지원에는 관심이 없고, 결국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게 북한의 목표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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