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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누가 맡겠나…노사 반발 속에 중대재해법 시행령 의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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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

직업성 중대재해 질환은 급성일 경우에만 인정된다. 대형 지하상가와 영업장에서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중대 시민재해로 규정해 관련자가 처벌된다.

급성 중독일 경우에만 중대재해 인정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로 한정한 것 #심혈관계, 과로, 근골격 질환 제외 #"사고성 재해 예방에 초점을 두고 분류" #대형 상가 등에서 사고 발생시 시민재해 규정 #노 "법 취지를 후퇴시켜 사실상 무력화" #사 "모호한 규정에 따른 현장 혼란 불가피" #일선 기업, 바지사장 내세우거나 CEO기피

이런 내용의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이 28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노사는 모두 반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시행령에 따르면 중대재해 판단기준을 급성중독 또는 급성중독에 준하는 질병으로 한정했다. 이에 해당하는 질환은 일산화탄소, 황화수소 같은 화학물질에 의한 급성중독 등 24가지다. 예컨대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환경에서 일하다 체온이 급격히 상승해 발생하는 열사병은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노동계가 요구한 과로, 난청, 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은 제외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급성'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로 인정하면 고혈압 환자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채용을 기피하는 등 노동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중대재해법은 사고성 재해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안전보건 관리를 위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도급이나 용역 때는 안전보건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적용해야 한다.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도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중대시민재해다. 중대시민재해의 적용을 받는 시설은 연면적 2000㎡이상 지하도 상가, 바닥면적 1000㎡ 영업장 등이다. 이런 시설은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어기거나 사고 사망 등이 발생하면 징역형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지난 7월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지난 7월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당초 정부가 입법예고한 제정안과 큰 차이가 없다. 열사병의 경우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하는 업무로 발생한 열사병'으로 규정돼 있던 것을 '고열작업 또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발생한 심부체온상승을 동반하는 열사병'으로 구체화했다. 안전보건 관리와 관련해선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고'를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 확인된 유해·위험요인의 개선'으로 변경한 정도다.

학계 등 전문가들은 "산업재해 예방보다 처벌에 방점을 둔 모법(중대재해법)을 시행령이 예방 쪽으로 궤도를 수정한 노력이 엿보인다"며 "시행령이 모법의 경직성과 적용상의 한계를 완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노사는 모두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시행령에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의무내용 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법률상 불명확성을 해소하기에 한계를 갖고 있다"며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모호성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이 참여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정부의 시행령안은 법 취지를 더 후퇴시켜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독소 조항과 규제 조항을 만들어 법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처벌 위주의 산업안전법 나올 때마다 안전사고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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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에선 최고경영자(CEO)를 기피하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등 엉뚱한 방향으로 중대재해법 대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협력업체 상당수가 기존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이 바지사장"이라고 말했다. 한 조선 협력업체 대표는 "아무리 예방을 해도 예기치 않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대표이사가 처벌되고, 회사는 그 길로 망한다"며 "회사와 근로자의 일터만을 살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대형건설사는 CEO나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영입하려 애를 쓰지만 채우기가 쉽지 않다. 당사자가 거절해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면 CEO 또는 CSO의 업무 상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무조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상을 벌금형을 내리는 데 누가 하려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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