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의 민간사업자 선정(2015년) 심사에 참여했던 성남도시개발공사 간부 출신 정모 변호사가 지난해 설립한 ‘유원홀딩스’라는 회사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 변호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회사에 대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동업 관계”라고 말하면서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개발 사업 진행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를 지내는 등 사업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정 변호사는 회사의 이름 ‘유원’이 유 전 본부장을 지칭한 것이라고도 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이었던 두 사람이 동업을 위한 회사를 설립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것이다. 정 변호사는 대장동 개발로 1000억 원대 배당금을 받은 ‘천하동인 4호’의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의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민관 합동 개발이었던 사업의 ‘민’(남 변호사)과 ‘관’(유 전 본부장)을 잇는 연결고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동 사업 키맨들이 만든 ‘유원홀딩스’
정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10일 자본금 1억원으로 ‘주식회사 유원오가닉’을 설립해 대표이사로 등재됐다. 부인 강모씨는 감사다. 정 변호사는 같은 해 5월 업무 태만 등의 이유로 공사에서 해임 처분을 받았다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구제 명령에 따라 6개월 뒤(지난해 11월) 공사에 복직했고 올해 2월 퇴사했다. 해임과 구제 과정에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정 변호사가 ‘동업 관계’라고 한 유 전 본부장은 당시 경기관광공사 사장(2018년 10월~2020년 12월)이었다.
이 회사의 설립 당시 등기부에 기재된 사업 목적은 50여 개다. 콘텐트 판권 유통업, 전자상거래업, 항공기 취급·사용 사업, 여행상품 판매업, 영화 및 드라마 수입 제작 및 배급판매업 등이다. 올해 1월 20일 ‘주식회사 유원홀딩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부동산 개발·공급·매매·임대업 등이 추가됐다. 현재 설립 목적은 67개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는 “(회사 설립 목적을) 수천 가지를 써도 상관은 없지만, 다량의 설립 목적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진할 계획이 있으니 넣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업 목적에 영화제작, 경기관광공사 관련?
부동산 전문가였던 이들이 만든 회사의 설립 목적에 영화제작이 포함된 것에 대해 지역 정가에서는 유 전 본부장과의 관련성을 추정하는 해석이 나온다. 그가 영화제작에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 전 본부장은 2018년 10월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공사의 신규 사업으로 ‘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영화 제작에 참여해 경기도에 한류 관광 콘텐트를 보유, 관광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경기관광공사는 19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5년에 걸쳐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상업영화에 직·간접·혼합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업 타당성 용역을 경기연구원에 맡겼다. 2019년 10월 발간된 ‘영화산업 투자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용역’ 보고서엔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비교적 정책적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결론이 담겨 있다. 유 전 본부장(경기관광공사 사장)은 경기도에 적극적으로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유동규, “프로젝트 예산 못 따자 사퇴 결심”
경기관광공사는 지난해 10월쯤 영화제작 예산 190억원이 포함된 ‘2021년 예산안’을 경기도에 제출했다. 그러나 경기도는 “위험 부담이 크다”며 해당 사업 예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사장은 12월 31일 경기도에 사의를 표했다. 경기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영화제작 사업 예산이 올해 예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크게 실망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 전 본부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기관광공사에서 주력했던 프로젝트 예산을 따내지 못했다. 그게 지난해 12월 초다. 그때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이를 자신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측근이 아닌 이유로 들기도 했다. 경기관광공사 관계자들은 그 실패한 프로젝트를 영화제작 사업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유원홀딩스 사업 추진 배경 조사해야”
유 전 본부장이 경기관광공사 사장 때 강력하게 추진했던 영화제작 사업이 유원홀딩스의 사업 목적에 있는 것에 대해 지역 정가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원홀딩스가 경기관광공사가 추진하는 영화제작 사업에 맞춰서 설립됐거나 관광공사에서 추진하던 사업이 막히자 유원홀딩스에서 이어가려 했다는 등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영화제작과 항공업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새로운 사업의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 계획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기인 성남시의원(국민의힘)은 “준공무원 신분이었던 이들이 재직 기간에 확보한 내부 정보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