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났는데 곁엔 할머니뿐…‘코로나 고아’ 110만명이 운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8 05:00

“하루하루가 살기 위한 투쟁입니다.”

브라질의 마리아 엘리스 젠틸은 불과 몇 달 만에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딸 크리스타나(45)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싱글맘이었던 딸은 14살과 9살 손자, 그리고 올해 태어난 손녀를 남겼다. 이미 친손주 둘을 돌보고 있던 젠틸은 그렇게 다섯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가 됐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64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16일 인도 뉴델리의 한 폐쇄된 상점 앞에서 아이들이 쉬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16일 인도 뉴델리의 한 폐쇄된 상점 앞에서 아이들이 쉬고 있다. [AFP=연합뉴스]

2년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상처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 이른바 ‘코로나 고아’의 상처는 더욱 그렇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코로나 고아 110만 명…전 세계 문제로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랜싯에는 코로나19로 인해 30~40대 젊은 부모세대의 사망률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 세계 사망자의 77%를 차지하는 21개국에서 코로나19로 주 양육자를 잃은 아이들은 최소 110만 명으로 추산됐다. 주로 백신 접종률이 낮은 중남미에서 피해가 심각했는데, 페루에서만 1000명당 10.2명의 어린이가 보호자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5.1명), 멕시코(3.5명), 브라질(2.4명), 콜롬비아(2.3명)가 뒤를 이었다.

아이 1000명당 1명 이상 '코로나 고아'가 발생한 국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이 1000명당 1명 이상 '코로나 고아'가 발생한 국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구에 참여한 미국 CDC의 안드레스 빌라베시 박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면 경제적·정신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코로나 고아는 전 세계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장기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리로 내몰리고, 정서적 불안에 떠는 아이들

그로부터 두 달, WSJ에 따르면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이들의 눈앞에 가장 먼저 닥친 위기는 가난이었다.

지난 봄, 아르헨티나의 한 19세 소녀는 한 달 사이 두 부모를 모두 잃었다. 셋째 동생을 임신했던 엄마는 7개월째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제왕절개로 아이는 살렸지만, 엄마는 한 달 만에 사망했다. 그 사이 아빠도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은 네 자매를 거리로 내몰았다. 65세 할머니가 유일한 가족이다.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과 신발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다섯 식구의 생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미숙아로 태어난 막내 동생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인도 잠무 외곽 한 마을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인도 잠무 외곽 한 마을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부모를 잃은 충격에 정서적 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브라질에 사는 루안 루카토(11)는 최근 들어 자주 말을 더듬고, 눈을 계속 깜박인다. 앞서 발달 장애 진단을 받았던 루안은 2주 간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으면서 증상이 악화했다.

다행히 이모 엘렌 크리스티나 드 수자(37)의 가족이 루안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드 수자는 조카를 위해 거주지까지 옮겼지만, 루안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결국 그는 일까지 관두고 조카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드 수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지만, 회복이 쉽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3대가 모두 감염…뿔뿔이 흩어진 가족 

다세대 가족 문화와 열악한 의료 환경은 코로나 아동의 피해를 더욱 키웠다. 3대가 함께 살면서 가족 간 전파가 이어지면서다. 여기에 병상 부족으로 가정 치료가 늘면서, 아이들은 부모들이 눈을 감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페루의 줄리아나 펠리세스(8)도 그랬다. 다섯 남매 중 넷째인 줄리아나는 엄마 마리켈(34),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지난해 할아버지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추가 감염 없이 안정을 찾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에서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로 분장한 군인이 아이들의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에서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로 분장한 군인이 아이들의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올해 델타 변이는 피하지 못했다. 마리켈이 먼저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같은 방을 쓰던 할머니와 17살 큰언니까지 의심증상을 보였다. 엄마와 할머니는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했지만, 병실이 없어 집에서 치료하다가 이틀 간격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할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났고, 15살 오빠는 집을 나갔다. 줄리아나는 두 언니, 그리고 네 살배기 동생 소피아와 함께 고모 집에 맡겨졌다.

줄리아나는 공부하는 언니들을 대신해 소피아를 돌본다. 소피아가 매일 밤 울면서 엄마를 찾을 때 가장 힘들다. 줄리아나는 그때마다 소피아를 엄마 옷으로 감싼다고 한다. 그는 “엄마는 밤마다 소피아를 품에 안아 재웠다”며“소피아는 불안하겠지만,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당장 설명할 수 없다. 소피아는 너무 어리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가 너무나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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