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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참 우울한 대통령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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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매운 음식 싫은데 메뉴엔 불닭볶음면, 열라면, 틈새라면, 진라면 매운맛, 신라면뿐이다.” 인터넷의 한 댓글 대로 마음에 쏙 와닿는 후보가 잘 보이지 않는 게 이번 대통령 선거의 독특한 흐름인 듯싶다. 5개월여 남은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새 양상의 이유는 뭘까.

대선 당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였던 후보는 역설적으로 박근혜였다. 보수 정당을 참패에서 구해낸 ‘선거의 여왕’답게 민주당의 허를 찌른 ‘경제민주화’와 ‘연 27조원의 추가 복지’로(결국 비극으로 끝났지만) 중도를 잠식했었다. 박정희의 ‘근대화’ DNA 기대까지 받으며 역대 최고의 득표, 득표율인 1577만 표, 51.55%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무현(48.91%), 이명박(48.67%), 문재인(41.08%)을 넘어선 직선제의 첫 과반이었다. 지금 양자대결 조사의 승자인 40.9%(윤석열, 알앤서치)에서 43.7%(이재명, 한국리서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두터움이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당시 박근혜의 득표를 극복할 카리스마를 과시할 후보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주자들 개인 카리스마 부족에
비호감이 월등한 구인난 대선
‘정권교체·유지’ 박빙 구도 속
미래 정책비전의 승부 펼쳐야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5명이 지역 순회 경선인 전북 합동유세가 열리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 우석대학교 체육관에서 행사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5명이 지역 순회 경선인 전북 합동유세가 열리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 우석대학교 체육관에서 행사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번 대선의 새 양상은 정치가 만인 대 만인의 갈등으로 바뀌어 가는 시대상과도 궤를 같이한다. 옛날의 여촌야도(與村野都)를 지나 직선제 이후엔 지역구도 대결인 ‘동서 투표’와 이념 대결인 ‘남북 투표’가 근간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고 유권자의 욕구는 한층 다양하고 까다로워졌다. 세대, 연령, 남녀, 빈부, 계층, 학력, 수도권과 비수도권, 미세한 이념 성향 차이 등에 따른 진화와 분화가 현격해졌다. 첨예한 모순들에 모두를 사로잡을 묘수란 쉽지 않다. 이대남(20대 남자)을 잡을라치면 이대녀가 무섭다. 끌어모을 지지율의 천장이 낮아진 후보들도 죽을 맛인 시대다.

이재명, 윤석열 등 1, 2등을 다투는 후보들의 상대적인 카리스마 부족도 요인이다. 중앙정치 무대에의 노출과 경험, 검증이 짧다. 더구나 이 후보는 가족사, 여배우 스캔들과 대장동 개발 화천대유 특혜 의혹 공세에 직면했다. 윤 후보 역시 다양한 정책의 경험 부족, 부인·장모와 고발 사주 관련 의혹 공세, 박근혜 탄핵의 명분 등이 극복 대상이다. 상위 네 후보의 호감도(이재명 34%, 윤석열 30%, 홍준표 28%, 이낙연 24%)보다 비호감도(이낙연 66%, 홍준표 64%, 윤석열 60%, 이재명 58%-한국갤럽 9월)가 훨씬 높다. 국민 과반수가 다 마음에 안 든다니 네 후보 모두 애초에 실격(失格)일 수 있는 기이한 선거다.

네거티브 공세야 물론 선거의 필요악이다. 지지도에 비례한 강도의 사실 검증에 도덕성이나 공적 책임의 치명적 흠결이 드러나면 그만큼의 피해는 인과응보다. 문제는 이회창 아들 병역, BBK, 다스, 최태민 등 네거티브 변수가 대세를 현격하게 뒤집은 사례가 현실적으론 쉽지 않았다는 역사다. 이회창의 1.6% 차 패인 역시 아들 병역 의혹보다는 탈당한 이인제의 497만 표 잠식과 DJP 연합이 결정타였다. TV 대선토론 역시 초대형 실수가 아니라면 대세를 뒤바꾼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게 통설이다. “제가 갑철수입니까”로 실점이 컸던 안철수는 TV토론 이전에도 약세였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DDMC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3차 방송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DDMC 채널A 스튜디오에서 열린 3차 방송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번 대선을 지배할 가장 유효한 변수는 현재로는 “정권교체냐, 정권유지냐”가 될 것 같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의 다수 의견이다. 한국갤럽 9월 조사에선 교체(55.3%)가 유지(37.6%)보다 높다. 8월의 49% 대 37%보다 벌어졌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의 강고한 응집력, 169석 의회의 권력과 전국 지자체와 의회를 장악한 현장 조직력, 40% 안팎의 여전한 대통령 지지도, 접전인 최근의 양자 대결 추이 등을 대입하면 치열한 박빙이 될 것이란 전망이 현실적이다.

대선 승리의 법칙 역시 양측 모두 ‘정권교체’라는 죽비(竹篦)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 보는 데서 출발하겠다. 우선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40.0%)가 정권교체 심리(55.3%)에 한참을 못미친다. 미덥지 않다는 얘기다. 최대의 적은 바로 그 당 자신. 곽상도 의원 아들 사건처럼 ‘기득권’이미지와 계파 분열로는 패망이다. 여당 정책을 비난만 하는 반사이익의 한계 역시 명확하다. 뭘 해보자는 쪽과 "결사반대” 선거의 승자는 늘 해보자는 쪽이었다. IMF 재협상을 내건 김대중, 행정수도 이전의 노무현, 청계천 복원의 이명박, 경제민주화의 박근혜…. 반대에만 몰입해 자기 목소리가 사라진 후보들은 다 스러졌다. 성장·통합 등 보수의 영혼을 기반삼되 불평등의 완화 등 시대에 맞는 유연한 정책 메시지로 중산층을 확장해 나가야 승부가 이뤄질 터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정권교체 심리가 강한 변수인 만큼 누가 되든 ‘문재인 시즌 2’가 되지 않겠다는 새로운 차별화의 길이어야만 승부가 성립한다. 문재인 정부의 각종 실정에 대한 당 스스로의 솔직한 인식과 고해가 먼저다. 당내 경선 1등(누적 53.01%)을 질주 중인 이재명 후보 역시 무상, 포퓰리즘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기본소득 등 본인 정책의 현실성과 진정성을 중도층에게 어떻게 잘 설득해 내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대선 중반전인 10월의 찬바람이 불어 온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비전 대결로 우울한 대선에 활력과 신바람을 불어넣어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