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정호의 시시각각

종전선언에 목매선 안 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09.2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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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종전선언을 이뤄내면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종전선언을 이뤄내면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뉴스1]

2007년 9월 시드니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 정상회의 때 열린 노무현-부시 간 한·미 정상회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투박한 장면이 펼쳐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표가 끝나자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체제와 종전선언을 빠뜨린 것 같으니 명확히 이야기해 달라"고 두 번이나 다그쳤던 것이다. 이에 부시는 "더 명확하게 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떴다. 덕담과 세련된 표현이 오가는 외교무대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미 모두 상대방 양보부터 원해
북한 위협 커진 상황에선 부적절
미래 위해 때아닌 논의 중단해야

종전선언은 한 달 후의 노무현-김정일 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졌다. 양측은 10·4 공동선언에서 "관련 3자·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도록 협력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노 대통령 곁에서 이런 과정을 지켜본 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 유엔 총회에서도 "종전선언을 이뤄내면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문재인 정권 모두 종전선언에 목을 맨 셈이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발언으로 볼 때 그는 종전선언이 평화협상을 끌어낼 요술방망이로 믿는 듯하다. 종전선언으로 안보를 보장해 줌으로써 북한을 평화협상에 불러내자는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 먼저 현 상황에선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철회부터, 미국은 의미 있는 비핵화부터 원하는 탓이다. 문 대통령의 유엔 발언 후 반응을 보라. 지난 2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편견적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 기준부터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25일 또다시 성명을 내고 "조선반도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 들지 말라"고 요구했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먼저 대북 제재를 풀고 비핵화를 포기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 반응은 정반대였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 있다"면서도 "다만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아닌 비핵화에 무게가 실려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평행선이 계속되는 한 종전선언은 성사될 리 없다.
둘째, 오만 양보를 해주고 종전선언을 이뤘다고 치자. 그렇다고 북한이 진정성 있게 대화에 응하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개성공단 재가동 같은 선물만 챙기고 '먹튀'할 위험도 적잖다.
셋째, 지금이 종전선언 운운할 때인지 의심스럽다. 북한은 최근 사거리 1500㎞에 달하는 준중거리 순항미사일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북한이 탄두 소형화 기술을 발전시켜 전술핵까지 개발했다고 본다. 이번에 시험한 중단거리 미사일에 전술핵을 얹으면 북한은 더 다양한 핵 공격을 구사할 능력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 운운하는 게 적절한가.
끝으로 우리로서는 종전선언을 해도 득 될 게 없다. 잃을 것만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한반도에선 대규모 충돌은 없었다. 사실상 종전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우리 안보의 큰 기둥인 유엔사령부의 존재 명분은 힘을 잃게 된다. 50년 안보리 결의로 출범한 유엔사는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는 게 목표였다.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한반도 평화가 이뤄졌다는데 유엔사가 왜 필요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국 방어를 위해 마련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미군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지금처럼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 견제 조치만 없애고 이뤄지는 종전선언은 해선 안 된다. 어떤 메시지라도 부적절한 시기에 계속 되풀이하면 호소력이 떨어진다. 훗날 제대로 쓰일 수 있게, 때아닌 종전선언 얘기는 당장 멈춰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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