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준호의 사이언스&

누리호 첫 발사 성공할까, 스페이스X에 물어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전남 고흥군 봉래면. 고흥반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내나로도로, 다시 연도교를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외나로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나로우주센터. 발사장 동편 아래쪽 조립동에는 길이 47.2m, 무게 200t의 우주 발사체가 잠들어있다. 앞으로 20여 일 뒤인 10월 20일 오전 7시 조립동의 문이 열리면, 한국 우주탐사의 획을 그을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2010년부터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온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첫 시험발사를 위해 나서는 날이다. 누리호는 발사장까지 1.8㎞의 꼬부랑 산길을 한 시간여 동안 이동, 발사대에 오른다. 발사 예정 시각은 이튿날인 21일 오후 4시. 물론 기상조건 등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를 전제로 한 스케줄이다.

추력 75t 액체 로켓엔진 4개를 단 누리호는 이날 과연 불을 뿜고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2013년 발사에 성공했던 첫 한국형발사체(KSLV-1)는 말이 한국형이었지 핵심인 1단부는 러시아 로켓엔진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A부터 Z까지 설계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기업들이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낸 첫 작품이다.

국내 순수기술로 만든 첫 발사체
외국서도 첫 성공률 30% 밑돌아
스페이스X도 세 차례 실패 겪어
“실패 없으면 제대로 된 혁신 없어”

일요일인 지난 26일 밤 9시. 나로우주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고정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 본부장과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이 외나로도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고 본부장은 이튿날 아침 회의 주재를 위해 손수 승용차를 몰고 300㎞ 밤길을 헤쳐 막 도착한 즈음이었다. 옥 센터장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점검을 이미 마친 상태”라며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밖에 할 게 없다”라고 말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 중인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2단용 75t급 엔진. 1단에 쓰는 기존 75t 엔진과 구조는 같지만 고공의 진공상태에 맞도록 노즐 부분을 1m 연장해 높이가 4m에 달한다. 누리호 연구진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오는 10월 21일까지 전시된다. [뉴스1]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 중인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2단용 75t급 엔진. 1단에 쓰는 기존 75t 엔진과 구조는 같지만 고공의 진공상태에 맞도록 노즐 부분을 1m 연장해 높이가 4m에 달한다. 누리호 연구진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오는 10월 21일까지 전시된다. [뉴스1]

누리호는 10월 첫 발사를 시작으로 내년 5월 두 번째 발사, 이후로 2027년까지 다섯 번의 추가 발사가 예정돼 있다. 이렇게 총 여섯 차례의 발사를 통해 누리호의 안정성과 상업성을 검증받게 된다. 누리호에는 센서 1300개가 달려있어, 발사 후에 텔레메트리스라는 통신방식 통해 이상 여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여섯 번의 발사 과정이 모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경우에도 센서로 들어온 빅데이터가 이후 오류 개선의 중요한 정보가 된다.

누리호 첫 시험발사의 성공 여부는 점쟁이라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그간 발사된 우주발사체의 통계를 보면 첫 발사 성공률은 30%가 안 된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외나로도를 찾을까. 정권 치적 홍보 효과를 노린다면 확률 30%의 도박에 거는 것이니, 오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항우연 입장에서도 대통령의 방문은 짐이다. 가뜩이나 초긴장 상태인데, VIP까지 내려온다면 추가로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발사 성공 확률에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얘기다.

나로호 시절로 돌아가 본다. 2009년 8월 첫 발사에서 페어링 분리가 안 돼 위성 궤도 진입에 실패하고, 이듬해 6월 발사 137초 만에 1단 로켓이 폭발, 추락했다. 연이은 실패 소식에 당시 국산 위성발사체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결국 당시 이주진 항우연 원장이 두 차례 발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발사책임자이던 조광래 당시 나로호개발사업단장은 과기정통부 감사실로부터 횡령 등의 혐의까지 포함, 수차례 감사에 시달려야 했다. 결과는 무혐의였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우주산업에서 실패는 오히려 자산이다. 실패를 통해 한 발짝씩 전진했다. 우주발사체가 처음 세상에 나온 1950년대에는 총 48회 발사가 있었고, 그중 28차례(58%)가 실패였다. 이후 세월이 갈수록 실패율은 급격히 낮아져 2010년대에는 6.8%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0년대까지 발사체를 확보한 나라 가운데 새로 개발한 발사체의 첫 발사 성공률은 27.2%에 불과하다. 대표적 사례가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현재 세계 정상의 민간 우주기업이 됐지만, 2006년부터 시작한 팰컨1 로켓 발사를 연이어 세 차례 실패하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4차 발사에서 기적적으로 성공하면서 투자가 이어지고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다.

KSLV-2

KSLV-2

최근 화성·달 탐사선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스타십 로켓 또한 계속된 실패 속에서 성공률을 높여가고 있다. 이와 관련 일론 머스크는 “우리에겐 실패도 하나의 옵션이다. 실패가 없으면 제대로 된 혁신도 없다”(Failure is an option here. If things are not failing, you are not innovating enough)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KAIST 실패연구소장인 노준용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스페이스X는 실패에 의해 도전이 좌절되지 않고 도리어 그를 통해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결국은 남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혁신을 끌어내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우리도 이제는 성공만을 추구해 점진적인 성과에 만족하기보다, 실패의 인정을 기반으로 과감한 시도를 하게 하고 결국은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때가 됐다”고 말했다.

누리호 첫 발사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누리호 개발에는 나로호 때부터의 기술 축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두 차례의 뼈아픈 실패가 자산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가 열린 마음으로 10월 누리호 첫 시험발사의 성공을 기다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