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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원의 이코노믹스

불붙은 미·중 기술패권, 한국 산업경쟁력 도약대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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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코로나19가 빚은 기술혁신 황금시대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기적 재앙을 불러온 동시에 기술 혁신의 황금기를 가져오고 있다. 또다시 세상이 크게 변하는 형국이다. 뉴욕타임스가 2016년 “우리는 혁신 황금시대에 살고 있다”고 선언한(5월 15일 자) 적이 있으나, 코로나 범유행을 계기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기술혁신은 너비와 깊이 측면에서 예전의 혁신과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놀랍다. 제약·반도체·인공지능, 전기자동차·자율자동차, 조선·원자력·3D(3차원)·블록체인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융합과 복합을 통한 기술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국가 기술주의’ 촉발하고
전세계적 산업 융·복합 가속페달
현실·가상 경계 없는 세계 일상화
국가는 물론 개인의 미래 바꿔놔

백신 등 질병 치료기술 급진전

김동원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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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의 동향이 주목된다. 중국이 촉발한 국가 기술주의 경쟁과 벤처 투자 급증 등으로 기술생태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가속적인 기술혁신의 토대가 구축되는 중이다. 이 기술혁신의 황금시대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과 한국·중국·일본의 산업 경쟁 및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백신이 절실해짐에 따라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기술이 상용화했다. 나아가 파킨슨병·알츠하이머 등 기존의 만성질환에 대한 치료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 매켄지 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 인적 교류에서 디지털이 차지하는 비중을 3년 앞당겼으며, 상품과 서비스에서 디지털이 점유하는 비중 또한 7년 먼저 실현했다고 한다.

특히 비대면 위주의 경제활동은 클라우드 컴퓨팅·인공지능(AI)·반도체 수요를 급격하게 증가시켰다. 그 결과로 현재 세계 제조업이 반도체를 비롯하여 심각한 부품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S&P 500 정보기술 산업지수 추이

S&P 500 정보기술 산업지수 추이

더욱이 코로나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인력을 기술로 대체하는 혁신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개인의 일상 자체를 크게 제약하면서 스마트 가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메타버스(meta-verse) 시대로의 전환이 활발해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AR(가상현실)·VR(증강현실)·XR(확장 현실)·MR(혼합현실) 등의 신기술로 우리 생활을 현실과 가상 간의 경계가 없는 3차원 가상세계로 인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은 5년 안으로 메타버스 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을 선언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도 “미래 20년은 메타버스 기술로 공상과학과 다를 바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 50년간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왔던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배로 증가)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1개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 수로 성능을 평가하면, 7나노미터 반도체는 200억 개, 5나노미터 반도체는 300억 개, 2나노미터 반도체는 500억 개를 담을 수 있다. 즉 2나노 반도체를 먼저 양산할 경우, 5나노 반도체보다 성능이 1.7배 높은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다.

차세대 반도체·배터리 개발 점화

이같이 반도체 성능이 고도화함에 따라 동시다발적 연산·데이터를 이용한 자율학습·비정형 추론 등이 가능한 신경망 반도체(NPU)가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내 손안에 AI(On Device AI)’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 카’(자율주행 전기자동차)는 반도체·인공지능·5G(5세대)·2차 전지 차세대 기술의 총합체로, 이를 둘러싼 자동차 메이커들과 애플·구글·아마존 등의 경쟁이 한창 뜨거운 시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각한 이상기후 현상에 따라 세계적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2차 전지·수소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2차 전지의 경우, 한국·일본·중국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기업공개 전 유니콘 기업 수 추이

세계 기업공개 전 유니콘 기업 수 추이

조선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환경 규제 강화로 연료전지 등 친환경 선박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원자로는 소형 원자로 개발이 주목된다. 이외에도 양자컴퓨터·로봇·3D·사이버 보안 등의 기술혁신이 급속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금융과 지불·결제시스템의 블록체인 기술도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전 산업에 걸쳐 동시다발적이자 융·복합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기술 생태계의 급격한 호전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미국 S&P500 정보기술 산업지수는 2019년 말 대비 올해 8월 말 현재 71% 상승했다. 특히 벤처기술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1년 상반기 글로벌 벤처기업들은 공모전 출자방식으로 2880억 달러를 조달했으며, 이는 2020년 하반기 1790억 달러 대비 61%, 2020년 상반기 1480억 달러에 대비하여 95% 증가한 규모다.

빅 테크 투자로 기술생태계 변화

나아가 2021년 상반기에 250개의 신생 ‘유니콘’이 탄생했다. 2020년 161개에 비해 55%나 증가한 수치다. 기업공개 전 벤처기업들에 쏟아진 자금의 주된 공급처가 구글 벤처(GV)를 비롯한 기업 벤처 투자사들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풍부한 시장 유동성과 장기 저금리 및 주가 상승 등 금융 여건이 좋아지면서 세계적 ‘기술 공룡들(Big Tech)’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와 신기술 기업 인수 합병(M&A) 등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특히 글로벌 기술 패권과 안보를 배경으로 하는 국가 기술주의 경쟁이 뜨겁다. 세계 각국은 조세 감면과 재정지원 등으로 투자위험을 낮추면서 개별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에서 시작된 국가 기술주의는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을 부추겼다. 미국의 ‘혁신 경쟁법(USICA)’, 유럽의 ‘디지털 주권’, 일본의 ‘경제산업정책의 신기축’, 한국의 ‘K반도체 전략’과 ‘K배터리 전략’으로 확산됐다.

기술혁신의 황금시대는 국가와 기업과 개인에게 각각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과 중국은 이 시기를 통해 기술패권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며, 한·중·일 3국 간의 산업 경쟁력 우위 경쟁 또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족집게’라는 바이런 빈의 보고서(블랙스톤 인사이트)에 따르면, 많은 전문가는 지난 30년의 기술혁신보다 앞으로 30년의 파괴적 혁신이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기술기업 가운데 규모는 작지만 이 중 10여 개는 앞으로 15년 후 페이스북·아마존·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기술혁신의 황금기는 향후 세계 경제 판도를 결정하는 전략적 전환점에 해당한다. 기술혁신이 가져올 노동시장과 자산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개인의 미래도 크나큰 영향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우리 사회 전반의 면밀한 준비와 대책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국가혁신의 출발점은 교육·노동개혁

최근 삼성그룹은 향후 3년간 240조원(약 2200억 달러), 대만의 TSMC는 3년간 1000억 달러, 인텔은 235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은 경쟁력을 계속 높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 위험을 감수하든가, 아니면 기술경쟁을 포기하고 시장을 잃는 일종의 ‘치킨 게임’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 태동하여 일본을 거쳐 한국과 대만으로 중심을 이동해 온 세계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바로 이 ‘치킨 게임’의 결과를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2차 전지·조선·가전 등의 산업에서 세계 기술 패권을 경쟁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상장기업 시설투자 규모는 2020년 상반기 33건 2조7000억원에서 2021년 상반기 74건 6조9000억원으로 급증했으며, 신규 벤처 투자 규모는 2021년 상반기 3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기업 투자와 감세만으로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정부는 ‘K반도체’ ‘K배터리’ 전략을 발표했으나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인력난이다. 고용인원 3000명 이상 신설 제조업체 수가 2013년 41개에서 2018년 1개, 2019년 5개로 격감한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 전반 차원에서는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공급사슬과 역동성을 가진 산업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과 조직문화를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경제의 미래와 글로벌 기술경쟁의 성공 여부는 그 무엇보다 국가혁신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