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병상의 코멘터리

메르켈 정치..한국서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22:28

업데이트 2021.09.27 22:44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메르켈의 정치적 위상과 단호함을 보여주는 사진. 2018년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 팔짱 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탁자 누른 메르켈 독일 총리. G7 정상들이 메르켈 좌우에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켈의 정치적 위상과 단호함을 보여주는 사진. 2018년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 팔짱 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탁자 누른 메르켈 독일 총리. G7 정상들이 메르켈 좌우에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나찌 반성, 독일 정치성숙의 밑거름

거짓과 선동 한국정치, 파시즘 닮아

1. 독일 총선결과가 나왔습니다. 26일 밤 개표결과 중도좌파 사민당이 25.7% 득표로 1위, 중도우파 기민연합(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24.1%로 2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메르켈 총리가 이끌던 기민당의 패배입니다. 16년 집권해온 메르켈의 퇴진이 공식화됐습니다.

2. 그런데 메르켈에 대한 지지여론은 아직도 75%나 됩니다. (공영방송 ARD의 8월 조사결과)

메르켈은 2017년 총선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메르켈은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최초 총리’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5번째‘최초’기록입니다. 2005년 집권 당시 최연소(51세), 최초 여성, 최초 동독출신, 최초 과학자 출신 총리라는 4가지 ‘최초’기록을 세웠습니다.

3. 기록만 봐도 짐작이 됩니다. 메르켈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지..전세계가 칭송하는 몇가지.

첫째, 개인적으로 메르켈은 청렴, 그 자체입니다. 총리 되기전 살던 아파트에 계속 살면서 직접 장 보러 다닙니다. 평생 불미스러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가족과 친지조차도..자식은 없습니다. 기자가 ‘항상 같은 옷만 입나’고 물었을 때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이란 답변이 화제가 됐습니다.
둘째, 말보다 행동입니다. 빈말을 싫어합니다. 언행일치 없이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언론과 한번도 인터뷰한 적이 없습니다. 내각제이기에 의회에선 늘 소통합니다만..절대로 튀지 않습니다.

셋째, 휴머니즘 철학이 분명합니다. 난민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2015년 내전으로 시리아 국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타인의 존엄성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 대한 관용은 없다’며 100만명을 받아들입니다.

넷째, 정치적 포용력이 대단합니다. 메르켈은 2005년 취임사에서 전임 슈뢰더 정권의 개혁정책을 ‘승계하겠다’고 밝힙니다. 실제로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루면서 주요 부처 장관 자리를 내줍니다. 사민당의 좌파 정책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지확대하면서 모병제를 도입했습니다.

다섯째, 글로벌 리더로서 비전이 확고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09년 그리스 구제금융 당시 EU차원의 금융지원을 떠맡으면서 회원국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입니다. ‘유로화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며 설득했습니다. 이후 독일은 EU 맹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4. 우리 정치인들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정치인만 욕할 수는 없습니다. 성숙한 유권자, 안정된 정치제도와 같은 정치문화적 배경도 작용하니까요..

독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치문화를 선보일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은..아이러니컬하게도 ‘나찌 경험’이 꼽힙니다. 히틀러의 거짓선동이 반면교사가 됐다고 합니다. 메르켈은 유대인 대학살을 흔히 일컫는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영어 대신 ‘쇼아(shoa)’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유태인들은‘번제물’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란 단어를 꺼린다고 합니다.

6. 문재인 정권의 ‘내부고발자’라 할 수 있는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무법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권경애는 책에서 문재인 정권과 문빠의 행태를 ‘파시즘의 징표’로 해석했습니다. 정권을 잡고서도 자신들이 희생자라는 피해의식, 정치적 상상 속의 적(검찰과 언론 등)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폭력을 찬미하는..광기가 닮았다는 지적입니다.

7. 이런 폭력적인 정치를 겪어내는 것이 성숙한 정치문화로 나아가는 성장통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성장통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기위해..권력욕의 화신들이 사생결단하는 도박판 같은 현 정치구조, 그러니까 5년 동안 맘대로 해먹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이걸 안바꾸면..메르켈이 와도 문재인이 되고 말 겁니다.
〈칼럼니스트〉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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