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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P차로 좌파가 먼저 웃었다, '포스트 메르켈' 누가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후보 올라프 숄츠가 총선 승리를 기념하며 지지자들에게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후보 올라프 숄츠가 총선 승리를 기념하며 지지자들에게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소속된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기민·기사련)이 연방하원 선거에서 집권 16년 만에 제1당에서 물러났다. 초박빙 접전 탓에 연립정부(연정) 구성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포스트 메르켈’ 시대 개막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27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299개 선거구 개표 결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25.7%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민·기사련(24.1%)을 1.6%포인트 차로 제친 신승이다. 녹색당이 3위(14.8%)에 올랐고, 자유민주당(자민당, 11.5%), 독일을위한대안(AfD, 10.3%), 좌파당(4.9%)이 뒤를 이었다.

선거보다 더 복잡한 합종연횡, ‘연정’이 관건  

선거는 끝났지만 ‘포스트 메르켈’은 아직 안개 속이다. 독일은 선거에서 이긴 다수당이 곧바로 집권당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의석 과반을 획득해야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초박빙 승부 탓에 1위인 사민당마저도 단독 정부를 구성할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메르켈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 역시 연정 구성에 성공한 정당의 후보의 몫이다. 연정 협상이 마무리되고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메르켈 총리가 직을 유지한다.

사민당이 총선 승리로 얻은 건 ‘연정 구성 우선권’이다. 올라프 숄츠(63) 사민당 총리 후보는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명백하다. 독일을 위해 훌륭하고 유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사민당에게 부여된 임무”라면서 연정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민·기사 연합의 아르민 라셰트(60) 총리 후보 역시 “연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사민당이 1당 자격으로 먼저 연정 협상을 주도하다 실패할 경우, 2위인 기민·기사련이 연정 구성 권한을 넘겨받는다. 일단 양측 모두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진 연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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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 도이치벨레 등에 따르면 두 당의 구애 대상은 동일하다.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내건 녹색당, 친 기업 성향의 자민당이다. 전통적으로 녹색당은 사민당과, 자민당은 기민·기사 연합과 협력해왔지만 이들 모두 이번 연정 국면에서는 어느 당이든 협상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당의 상징 색깔에 따라 사민당(빨강)과 녹색당(초록)·자민당(노랑)의 연정이 성사되면 ‘신호등 연정’, 기민련(검정)과 녹색당·자민당이 손을 잡으면 자메이카 국기색을 빗댄 ‘자메이카 연정’이 이뤄진다. 독일 전후 역사상 정당 3곳의 연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사민당과 기민련이 손을 잡는 대연정도 가능하다. 대연정은 402석, 신호등 연정은 416석, 자메이카 연정은 406석으로, 어떤 조합이든 전체 의석(735석)의 과반을 채울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신호등 연정’과 ‘올라프 숄츠의 차기 총리 등극’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가능한 연합정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가능한 연합정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독일 연방의회 선거 득표율·의석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독일 연방의회 선거 득표율·의석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좌파 정당의 정권 탈환, 독일 좌경화되나

차기 정부는 메르켈이 이끈 현 정부에 비해 ‘좌클릭’할 것이라는 게 외신들 전망이다. 신호등 연정에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이 포함되더라도, 중도 좌파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대만으로도 국정 어젠다를 ‘좌’로 전환하기에는 충분한 힘을 얻게 된다고 CNN은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 총선 대비 51석을 추가하는 등 역대 최다 의석(118석)에 최고 득표율을 올린 녹색당이 연정에 든다면 기후 변화 대응 정책이 가속화될 것으로 봤다. 녹색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70% 줄이는 목표를 제시해 현 독일 정부의 목표(65%)보다 높게 잡았다. 또 현 정부는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계획했지만 녹색당은 2030년 이전까지 이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거시연구 글로벌부문장은 “녹색과 진보 진영의 연정으로 독일 정부 사상 가장 새로운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증세 기조의 확대 재정 속에 부채 증가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독일 녹색당 대표 베어보크. 향후 연정 정국에서 녹색당의 역할과 아젠다가 중요한 이유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녹색당 대표 베어보크. 향후 연정 정국에서 녹색당의 역할과 아젠다가 중요한 이유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에서 대중국, 대러시아 외교 기조를 이어갈지도 주목된다. 그간 메르켈 총리는 외교에서 실리를 최우선에 두는 사업가적 면모를 보였다. 미국이 인권 문제 등을 앞세워 대중국 강경 기조를 압박하고 있지만, 메르켈은 핵심 대외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실용주의 노선을 지켜왔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실용주의를 견지했다. 녹색당을 포함해 국내외의 비판이 빗발쳤지만 경제적 이익과 에너지 효율을 내세워 러시아에서 독일까지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추진한 게 대표적이다. 가스관의 승인과 수송단계 점검 절차 등은 차기 총리가 맡게 된다.

'엄마 총리' 다음은 '로봇'…사민당 일등공신 숄츠 

차기 총리 1순위인 숄츠는 메르켈 등장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은 사민당을 살려낸 일등 공신이다. 현 정부의 경제부총리로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맞아 선방하면서 노련하고 신뢰할만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 출신인 그는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함부르크 제1시장을 역임했고 메르켈 정부 1기와 4기에서 각각 노동 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다.

차기 총리 1순위로 떠오른 사민당의 총리후보 올라프 숄츠. 무뚝뚝하고 성실해 별명이 '기계' '로봇'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차기 총리 1순위로 떠오른 사민당의 총리후보 올라프 숄츠. 무뚝뚝하고 성실해 별명이 '기계' '로봇'으로 불린다. 연합뉴스

숄츠는 사민당 출신이지만 당 내에서도 중도에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기계’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무뚝뚝하고 재미없다는 평이 많지만 동시에 성실한 재정관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메르켈 정부에 대연정으로 참여해 재정 긴축을 옹호했다. 사민당 총리 후보로 선거를 치르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메르켈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도입했던 정부 지출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숄츠는 지난해 세계 최저법인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코로나19 이후 긴급 구호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내부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라이벌 정당이지만 국민적 신뢰가 두터운 메르켈 총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애초 메르켈 후임으로 주목 받았던 기민련의 아르민 라셰트 총리 후보는 지난 7월 독일 서부 대홍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언론에 실리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난 4월 30% 초반대였지만 이달까지 10% 안팎으로 쪼그라들었고 정당 지지율도 동반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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