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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양 다리에 전기봉, 졸도했다" 해외수감 한국인 가혹행위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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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3월 중국 감옥에 갇혀 있던 A씨는 수감된 지 1년 만에 한국에 있는 부모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A씨 부모는 수화기 너머 A씨가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말을 하는 등 과거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이에 부모는 "A가 중국 교도소에서 전기고문, 폭행 등 인권 유린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현지 공관은 중국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인권 침해를 한 적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외교부는 "담당 영사가 A씨를 직접 만났지만 인권 침해를 당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며 사안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중국 교정 당국의 관리 하에 있는 A씨가 우리 측 영사를 만났다고 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을까.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외교부의 '재외국민 수감자 인권침해 내역'을 바탕으로 재구성)

태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씨처럼 해외 감옥에 갇혀 있는 한국 국민은 지난 6월 30일 기준으로 1156명(51개국)이었다. 해당 국가의 사법 당국이 내린 판단은 존중해야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수감 중 구타, 폭행 등을 당했다는 인권 침해 신고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감옥에서 전기봉으로 고문을 당했다" "공안이 체포ㆍ조사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등 심각한 증언이 잇따르지만, 중국 당국이 의혹을 부인하거나 조사를 거부해 제대로 된 영사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 관련 자료 사진. 2004년 10월 프랑스에서 마약운반범 누명을 쓰고 대서양 마르티니크에 수감됐던 한국인 주부 장미정 씨의 실화가 기반이다. 일간스포츠.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 관련 자료 사진. 2004년 10월 프랑스에서 마약운반범 누명을 쓰고 대서양 마르티니크에 수감됐던 한국인 주부 장미정 씨의 실화가 기반이다. 일간스포츠.

① 6년째 1000명대..마약 사범 1위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여파로 해외로 나가는 외국인 수가 크게 줄었는데도 해외 수감자 규모는 큰 변동 없이 1000명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외 여행객 수는 대폭 줄었지만 해외 사건ㆍ사고 수는 많이 감소하지 않았다"며 "현지에 계속 체류하는 인원도 고려하면, 해외 재소자 규모가 코로나19 전후로 크게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연도별 재외국민 수감자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연도별 재외국민 수감자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해외 수감 재외국민의 국가별 비율을 살펴보면 일본이 38%로 가장 많았고, 중국, 미국, 필리핀 순이었다. 6년째 같은 순서다. 범죄 유형별로는 재소자 4명 중 1명이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마약은 6년째 재소자 범죄 유형 1위를 기록했다.

국가별 재외국민 수감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가별 재외국민 수감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범죄 유형별 재외국민 수감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범죄 유형별 재외국민 수감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② "中 공안, 가혹 행위 후 잡아떼기" 정황도

해외 수감 중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해외 수감자의 호소도 이어진다.

특히 지난 2017년부터 이달 2일까지 중국에서는 교도관에게 폭행당했다는 신고가 23건 접수된 것으로 태 의원실은 파악했다. 공식화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8년 11월 중국 내 한국인 수감자 B씨는 "노동을 잘 못 했다는 이유로 교도관으로부터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교도관은 현지 한국 공관 직원과의 면담에서 "규율을 위반하는 수형자에 대해선 수갑, 가스총, 전기곤봉, 삼단봉을 사용하여 제압한다"면서도 "(B씨를) 구타한 사실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물리적 수단을 사용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규정에 따른 것이라 불법 구타는 아니라는 식이다.

같은 해 12월 또 다른 중국 내 한국인 수감자 C씨는 "중국인 수감자와 다퉜다가 교도관이 전기봉을 양쪽 다리에 사용해 졸도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현지 한국 공관은 "수감자가 처음에는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했으나, 변호사와 상의 후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며, (한국) 공관도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사안을 마무리했다.

이외에도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 초까지 약 한 달 동안 "체포 과정에서 중국 공안 수사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한국인 재소자의 증언이 최소 다섯 차례에 걸쳐 제기됐다. 하지만 중국 공안은 한국 측의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거부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공안 관련 자료 사진. AP.

중국 공안 관련 자료 사진. AP.

중국에선 과거에도 한국인 마약 사범을 사전 통보 없이 처형하거나 강도 높은 고문을 벌였다는 수감자의 사후 증언이 나와 파문이 일었다. 2012년에는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 씨가 중국에서 전기 고문 등을 당했다고 증언해 한ㆍ중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했다.
이에 외교부가 중국 내 한국인 재소자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였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뒷북 대응이란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중국 측은 끝까지 의혹을 부인했다.

외국인 수감자 처우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이런 비협조적 태도는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의 사례와도 비교된다. 미국에선 지난 2017년 6월과 지난해 7월 한국인 재소자에게 인종 차별 혹은 인격 모독 발언을 한 교도관이 한국 측의 요구에 따라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일본에선 교정 당국의 가혹 행위 관련 신고는 없었다. 다만 질병을 앓고 있는 재소자가 제때 치료나 약품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지적이 대부분을 이뤘다.

이와 관련, 중국 내 재소자에 대한 인권 침해 발생 후 현지 공관이 교정 당국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정부가 보다 고위급 외교 채널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고위급에서 관심을 갖고 챙겨보고 있다는 점을 중국 측에 알려야 중국 측도 한국인 재소자 처우에 보다 신경쓰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몇 달 간격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는 등 고위급 소통이 활발하지만, 재중 한국인 수감자 인권 문제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ㆍ중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③"매년 200명, 1년 넘게 영사 얼굴 못 봐"

한편 코로나19 여파가 영사 조력에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영사조력법에 따르면 재외국민 수감자는 연 1회 이상 한국 영사와 면회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하지만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약 200명의 수감자가 1년 동안 한 차례도 영사 면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본인이 면회를 거부하거나 조기 석방, 연말 수감 등 이유로 면회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등으로 물리적으로 면담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 1회 이상 면회'는 재외국민 수감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곤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지난 2009년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으로 1년 반동안 수감됐다 무죄로 풀려난 한지수 씨 사건, 2016년 멕시코에서 인신매매ㆍ성매매 알선 혐의로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양현정 씨 사건 등에서 현지 공관의 부실한 대응이 문제가 된 것도 처음부터 소극적이었던 영사 지원에서 비롯됐다.

태영호 의원은 "해외에 수감된 우리 국민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외교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외교부는 보다 적극적인 영사 서비스 구축과 제도적ㆍ외교적 노력을 더욱 절실히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우상조 기자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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