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당혹스런 영유아의 '성행동'…그냥 둘까, 제지할까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15:00

업데이트 2021.09.27 15:12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51)

어른의 성행동 문제가 매일 심각한 뉴스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유아 간 성행동으로 인해 부모 간에 갈등이 커지고 교사는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유아 간의 성행동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다뤄 오진 않았지만,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건강한 성 발달을 지원할 시점에 다다랐다.

만 1세 정도의 아동은 기저귀를 갈거나 몸을 씻을 때 자신의 성적 느낌을 탐색할 수 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성기를 보거나 만지기도 한다. 만 2~3세가 되면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고 다른 사람의 성별도 구분할 수 있으며 타인(가족)의 벗은 모습에 호기심을 보인다. 이때 자위행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4~5세가 되면 자신이 어른이 돼 아빠, 엄마가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엄마는 가슴이 튀어나왔는데 아빠는 안 나왔어?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 등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답변이 필요하다. 이때쯤에 소꿉놀이하며 엄마, 아빠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의사 놀이를 하면서 친구의 엉덩이를 보려 하기도 하고, 화장실을 엿보려 하기도 한다. 6~7세 때엔 이성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며 TV에서 본 대로 이성을 상대로 뽀뽀하거나 껴안기를 시도해 보려고도 한다. 이렇게 영유아는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관심과 탐색을 발전시켜 나간다.

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호기심 차원의 성행동이다. [사진 pxhere]

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호기심 차원의 성행동이다. [사진 pxhere]

영유아의 발달 과정에서 성행동은 가정환경, 사회 환경, 미디어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호기심 차원의 성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성행동이 지속적이고 우려할 수준의 문제라면 더 큰 성행동 문제로 나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속적인 관찰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반대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강압적으로 제지하면 숨어서 은밀하게 성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주의 깊은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는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남성, 여성의 성 역할을 구분하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과거 내가 임신했을 때를 생각해 보니 “배 모양을 보니 두리두리한 것이 아들인 것 같아요. 아이가 배 속에서 축구를 하지요?”라고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파란 옷을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라며 귀띔해 주었다. 그리고 딸만 낳은 ‘죄인’으로 살았던 친정엄마는 딸이 손자를 낳을 거라는 소식에 기뻐 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난 손자는 외가와 친가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혜택을 온전히 누리며 성장했다. 그 전폭적 지지와 혜택이 결과적으로 그 아이에게 어떤 득이 됐을까는 의심할 여지가 있다.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는 이런저런 액세서리로 몸치장하고, 조금 크면 공주처럼 예뻐 보이고 싶어 한다. 아이는 학교에서 상냥하거나 조신해야 하고, 옷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다. 아이는 크면 클수록 시대가 원하는 미적 기준에 맞추려 한다. 걸그룹과 같은 몸매를 갖기 위해 급식을 남기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화장법을 배워 화장도 하며, 같은 반의 화장하지 않은 친구 한두 명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좀 더 자라 여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는 자신의 비키니 몸매를 상상하며 제모를 생각한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늘 복부비만에 신경 쓰면서 뱃살을 움켜잡고 그것이 증발해 버리기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형제가 4명 있었고,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내아이들을 거칠게 다뤘다. 철봉에서 오랫동안 버텨야  했고, 배우기 싫은데도 태권도장에 다녀야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왔을 때는 어떻게 하면 맞지 않고 친구를 이길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또 “맞고 오면 아버지에게 혼날 거야”라는 소리도 듣는다. 아이가 속상해서 울 때 “뚝 그쳐”, “에이, 별일 아닌데, 왜 울어”라며 그의 감정에 공감해 주기는커녕 윽박지르거나 문제시했다. 아이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그저 분노에만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또 점점 자라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약골’, ‘샌님’이라고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정말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남자답게 살려고 노력했다. 같은 세상이지만 너무 다른 성장 배경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성고정관념은 성장하면서 더 깊이 뿌리내린다. 지배적 남성성은 작은 성별 고정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pxhere]

아이들의 성고정관념은 성장하면서 더 깊이 뿌리내린다. 지배적 남성성은 작은 성별 고정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pxhere]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삐삐 롱스타킹』이다. 왜 삐삐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삐삐처럼 멋지게 살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다. 삐삐는 어른들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바른말을 한다. 삐삐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는 법이 없다. 거꾸로 아이다. 나쁜 어른을 벌주고 당당하게 충고한다. 정말 통쾌하고 매력적이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삐삐의 모습에 아마 매료됐던 것 같다. 삐삐는 여자아이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틀에 자신을 한 번도 가두지 않았다. 그냥 삐삐답게 행복을 누리고 살았다.

남녀 차이에서 관찰되는 근본적 차이는 생식기능과 관련된 것뿐이다. 과연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삐삐가 그냥 자신의 모습일 때 자유롭고 행복했듯이 우리도 그 벽을 깨뜨려야 한다. 뿌리박힌 관습인 성별 이분법은 남성, 여성에게 모두 해롭기 그지없다.

배 속에서부터 평생에 걸쳐 남성성과 여성성을 학습하고 세뇌되면서 그것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성행동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아동 간에 우려가 되는 문제가 있는 성행동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아동 간의 성행동은 대부분 성 역할 모방 행동에서 시작된다. 아동이 3~4세만 돼도 인종, 성별, 피부 등에 씌워진 편견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유아기의 성행동을 관찰하고 적절하게 개입하기 위해서는 부모, 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무례함이 멋짐으로 포장되는 동화, 여자 장난감과 남자 장난감, 파란 세상과 분홍세상은 서랍 안에 아이를 가둔다. 이 아이들의 성 고정관념은 성장하면서 더 깊이 뿌리내릴 것이다. 지배적 남성성은 어릴 적의 작은 성별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우리 가족 인권선언’ 책 시리즈를 인용한다.

『딸 인권 선언』(노란돼지, 엘리자베스 브라미)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해도 될 권리, 넘어져 상처가 나도 마음껏 까불 수 있는 권리
-수학을 잘하고 국어는 뛰어나지 않아도 될 권리
-나무에 기어오르고, 오두막을 짓고,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권리
-트럭 만드는 사람, 판사, 공장장, 경찰, 대통령, 조각가, 외과의사 등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아주 짧은 머리를 할 수 있는 권리

『아들 인권 선언』(노란돼지, 엘리자베스 브라미)

-눈물이 날 땐 울고 위로받을 수 있는 권리
-인형 놀이, 소꿉장난, 엄마아빠 놀이, 고무줄 놀이, 돌차기 놀이를 할 수 있는 권리
-무언가를 만들지 못해도 되고 못 박을 줄 몰라도 될 권리, 손이 지저분해지는 일을 싫어해도 될 권리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마음에 드는 모든 색깔의 옷을 입을 권리
-발레를 배우거나 플루트나 하프 학원에 등록할 수 있는 권리
-‘계집아이 같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서 수줍음을 타고 겁을 낼 수 있는 권리,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근육질이 아니어도 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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