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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모란이 우리에게 안부를 묻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84)

내딛는 발걸음에 꽃이 피어났다. 차르르 펼쳐지는 비단 물결마냥 피어나는 꽃은 다름 아닌 모란이다. 그런가 하면 어디서 꽃향기도 은은하게 퍼져온다. 아! 이건 꿈이 아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녕! 모란’전의 문을 열면 누구나 경험 가능한 현실이다.

〈모바일로 화면위에 피어난 모란〉, 2021, 갤럭시탭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모바일로 화면위에 피어난 모란〉, 2021, 갤럭시탭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일상서 마주했던 우리의 모란

어린 시절, 아름다운 모란과의 만남은 우습게도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다름 아닌 작고 붉은 화투짝 위에서였다. 6월의 햇살같이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처녀 같은 꽃은 모란(목단)이라고 했다.

푸짐하게 꽃잎을 펼치고 행운을 줄 것 같은 모양으로 피어있던 붉은 꽃! 나와 처음 만난 모란이다. 생각해보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당 가장자리에 화려하게 당당하게 꽃을 피우던 모란도 있었다. 또 생각나는 건 작은방. 안방 할 것 없이 벽에 그려진 모란이다. 예전 벽지는 대부분이 모란을 단순화한 디자인이 유독 많았던 까닭이다. 하기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었다고 하니 왜 아니었겠는가, 더구나 아름답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 나이 되도록 모란과 작약 구분이 힘들긴 하지만 그 향기와 위엄 있는 아름다움은 감히 최고라 하겠다.

안녕,모란 展이 열리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사진 홍미옥]

안녕,모란 展이 열리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사진 홍미옥]

초가을의 고궁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가 싸리비로 빗질하듯 나뭇잎을 후두두 흔들어댄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아름다운 전시가 피어나고 있다. 모란꽃으로 조선 왕실의 문화를 살펴보는 ‘안녕, 모란’전시가 그것이다.

주최 측은 이렇게 전시를 소개하고 있다.

'제목처럼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고,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모란무늬처럼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모란 그 크고 화려한 꽃송이에, 그 화사한 향기 속에 여러분의 안부를 물어 봅니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 봅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증강현실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가 전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사진 홍미옥]

증강현실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가 전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사진 홍미옥]

입구부터 관람객은 꽃의 바다에, 모란의 정취에 풍덩 빠지고 만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더니 와락 달려드는 증강현실(AR)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향기는 지난봄 낙선재에 핀 꽃을 포집해 만든 모란 향이다. 꽃향기가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모란이 활짝 핀 가상정원이 관객을 맞이한다. 구중궁궐 고궁에서 최첨단 미디어아트가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꽃향기 그리고 피어나는 꽃송이를 체험하면서 전시는 시작된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모란도 병풍을 비롯해 가구, 의복, 그릇 등 생활용품과 의례 용품 등 유물 120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모란덕후 허련의 모란도, 모란이 그려진 가마, 순조의 딸 복온공주의 혼례복과 방석에 새겨진 모란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한바탕 꽃밭에서 정신없이 노닐다 보면 흥미로운 체험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박물관 카페에서 체험가능한 낙화 그리기. [사진 홍미옥]

박물관 카페에서 체험가능한 낙화 그리기. [사진 홍미옥]

바로 낙화체험이다. 센스 넘치게 박물관 카페는 전시메뉴도 모란차로 눈길을 끌더니 낙화 그림체험의 기회까지 준다. 알다시피 낙화는 인두로 지져낸 그림을 말한다. 물론 이곳에서의 낙화는 디지털로 표현하는 낙화다. 화려한 모란의 향연을 즐기고 난 후 은은하지만 뜨거운 예술의 하나인 낙화까지 만나고 나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10월, 모두가 모란에 푹 빠질 기회다.

모두에게 안부를 묻는 모란, 우리도 사랑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展 . [사진 홍미옥]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展 . [사진 홍미옥]

중년의 카톡 소개 사진을 장악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꽃! 겨울을 벗어나는 시기엔 이쁘기 그지없는 튤립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벚꽃이 끼어들고, 여름이면 탐스러운 수국이 비집고 들어온다. 우스갯말로 개인 프로필 사진만으로도 나이 가름이 된다고 한다. 물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렇게 이쁜 꽃도 꽃보다 더 이쁜 손자·손녀 사진이 차지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나는 잘 지내고, 이렇게 지내고 있노라는 안부를 꽃으로 대신하는 셈이다.

유례없는 코로나로 어려운 요즘이다. 꽃들이, 모란이 우리에게 건네는 안부를 가을 고궁 마당에서 들어보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모란은 10월 내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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